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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오마이뉴스 기획연재 3]311호 법정, 그 뻔한 드라마에 우린 '소품'이었다
번호 21 분류   조회/추천 2395  /  302
글쓴이 준비위    
작성일 2009년 10월 14일 20시 08분 56초

311호 법정, 그 뻔한 드라마에 우린 '소품'이었다

[용산 국민법정 3] 이 시대 '치욕의 재판'을 고발한다

 

- 윤예영(작가선언 6.9. 시인)

 

 

 

  
지난 9월 1일 오후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리는 용산철거민 참사 공판에서 재판부는 방청객 소동이 우려된다며 방청객 수를 선착순 126명으로 제한했다. 유가족을 비롯한 방청객들이 번호표를 받은 뒤 검색대앞에 길게 줄을 서 있다.
ⓒ 권우성
용산철거민참사

 

냉철하고 이지적인 검사와 돈을 위해서는 어떠한 사건이라도 마다 않는 변호사, 그리고 냉정하면서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인간미를 보여주는 판사. 이들이 펼치는 스릴 넘치는 두뇌게임, 이것이 법정드라마가 우리에게 심어준 법정에 대한 환상이다. 그러나 환상은 환상일 뿐.

 

서울중앙지법 311호실. 매주 두 번씩 이곳에서 용산참사에 관련된 재판이 진행된다. 다른 재판과는 달리 방청인원이 언제나 80명으로 제한되고, 그마저도 번호표를 받아야만 들어갈 수 있다. 이것은 물론 이 재판이 법정드라마를 방불케 할 만큼 흥미진진하기 때문이 아니며, 용산참사에 대한 세간의 뜨거운 관심과 호응 때문도 아니다.

 

고작 피고의 가족과 이웃들이 방청객 전부인 재판이다. 그들 모두를 합쳐도 80여명이 될까말까. 그런데 방청인원을 재판 첫날엔 120명으로, 그리고 다음 번 재판에는 다시 80명으로 제한했다. 다만 법원직원의 말을 그대로 옮기자면 "전두환 노태우 재판 때도 이렇게 번호표를 나눠줬다"는 게 이유란다.

 

그러거나 말거나 방청객들은 기꺼이 줄을 서서 번호표를 배부 받고, 묵묵히 몸 수색과 소지품 검사를 참아낸다. 일단 몸 수색하는 곳을 지나서부턴 창문이 없다. 금방이라도 꺼질듯한 어두운 실내등은 우중충한 계단과 좁은 복도를 비추고, 그 길 끝에서 311호실 형사법정이 나온다.

 

육중한 문을 밀고 재판정에 들어서면 갑자기 시야가 밝아진다. 창문은 없지만 실내조명은 재판정 구석구석을 고르게 비추고 있고, 재판정은 청결하고 가지런하게 정돈되어 있다. 근 한 달간 재판정 정면에서 방청객들을 겨누던 채증카메라는 10월에야 슬그머니 자취를 감췄다. 방청객 모두를 잠재적인 범죄자 취급을 하던 지난 일에 대해서는 아무런 설명도 사과도 없이.

 

피고입장, 용산부조리극의 절정

 

  
지난 1월 20일 새벽 서울 용산구 신용산역 부근 재개발 지역내 5층 건물 옥상에 설치된 철거민 농성용 가건물을 경찰특공대가 강제진압 하는 과정에서 불길에 휩싸인 가건물이 무너지고 있다.
ⓒ 권우성
용산 재개발지역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청객들은 오늘도 꾸역꾸역 재판정으로 모여든다. 바로 이 연극의 하이라이트, 피고입장 때문이다.

 

누런 죄수복을 입은 일곱 명 그리고 검은 상복을 입은 고 이상림씨의 아들 이충연씨까지 모두 여덟 명이 등장한다. 이들은 재판정 왼쪽에서 들어와서 재판정을 가로질러 오른쪽 피고석으로 이동한다. 이충연씨는 사건 당시 때 골절된 다리가 아직도 불편한지 목발을 짚은 채로 절뚝거리며 지나간다.

 

이들은 매번 짧은 순간이지만 방청석에 앉아 있는 가족들과 눈을 마주친다. 그리고 보일 듯 말 듯 미소를 짓는다. 잘 지내고 있지? 밥은 잘 먹어? 난 괜찮아. 잘 버티고 있어. 이들은 이렇게 눈빛을 주고 받는다. 그 순간만큼은 이들은 죄인이 아니다. 다만 오랫동안 가족들을 떠나 있는 가장일 뿐.

 

1월 20일, 구정을 앞둔 차가운 새벽 용산 한강로의 일명 남일당 건물에서 철거민 다섯 명과 경찰 한 명이 죽었다. 죽은 경찰 한 명은 피해자, 그리고 나머지 망루 안에 있던 산자와 죽은자 모두가 가해자가 되었다. 단 경찰들은 제외.

 

이 아홉 명이 법정에 선 까닭은? 단지 살아남았기 때문. 죽은 다섯 명이 법정에 서지 않은 까닭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시신이 되어 냉동고에 갇힌 까닭. 그렇게 8개월이 흘렀고, 그동안 이들은 수의도, 상복도, 도심 테러리스트란 오명도 벗지 못했다. 이들이 피고인석에 서는 이 순간이야 말로 용산 부조리극의 절정이다. 그리고 방청석에 앉아 이 모든 것을 지켜봐야 하는 방청객들의 고통이 이 연극에서 가장 슬픈 대목이다. 그리고 이제 남은 것은 검찰이 연출하는 길고 지루한 연극뿐. 양심도, 상식도, 상상력도 결여된 삼류 드라마일 뿐이다.

 

살아남은 죄 그리고 공무집행방해치사 죄

 

상식의 관점에서 바라본 그들의 죄목은 '살아남은 죄', 그러나 검찰이 그들에게 붙인 죄목은 '공무집행방해치사 죄'다.

 

변호인단이 묻는다. 불을 내서 누군가를 죽게 만들었다면, 정확하게 불을 낸 사람을 잡아내거나, 불을 낸 행동을 찾아내야 하는데 현재로서는 누가 불을 냈는지, 왜 불이 났는지도 밝혀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저들은 왜 기소된 것인가? 검찰이 답한다.

 

"피고인들의 1박 2일 행동이 모두가 범죄의 구성요소입니다."

 

방청객에서 탄식이 흘러나온다. 2009년 1월 19일부터 1월 20일 새벽, 24시간도 채 못 되는 그 사이에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은 검찰의 칼날에 의해 정확히 반으로 쪼개진다. 원인도 규명되지 않은 화재의 원인은 철거민들의 몫으로, 그리고 그 나머지는 경찰의 정당한 공무집행으로.

 

변호인단이 묻는다. 그렇다면 돌아가신 철거민 다섯 분의 법적 지위는 무엇인가? 그들의 죽음은 누구의 책임인가? 그들은 스스로 죽자고 망루에 올랐는가? 그들은 이 재판정에서 유령인가?

 

"다섯 분은 피고인들과 공범입니다. 돌아가셨기 때문에 기소하지 못했을 뿐입니다."

 

방청객에서 또 다시 탄식이 흘러나온다.

 

그렇다면 수사기록 3000쪽 공개는 왜 안하는가? 국가기밀? 개인의 사생활 침해를 이유로 공개하지 않는데, 도대체 3000쪽과 관련된 개인의 사생활이란 무엇인가? 수사기록을 공개하라는 법원의 명령을 거부하는 것은 피고의 방어권을 침해하는 것은 아닌가?

 

"그 문제에 대해서는 대답하지 않겠습니다."

 

방청석에선 한숨조차 흘러나오지 않는다.

 

검찰의 프레임, 그 빈곤한 상상력

 

  
12일 오전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7부 한양석 부장판사가 철거민참사가 발생한 서울 용산구 남일당 건물을 현장검증 하는 가운데 사태 해결을 촉구하는 현수막이 입구에 내걸려 있다.
ⓒ 권우성
용산철거민참사

 

 

본격적인 재판이 시작된다. 수많은 입이 말을 한다. 그러나 그 말들은 갈곳을 잃고 허공에서 떠돈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정보계 형사, 소방관, 특공대원의 증언. 정확한 발화 원인을 찾을 수 없다는 전문가의 증언, 사실은 발화시점에 화염병을 던지는 것을 보지 못했다는 특공대원의 증언도 제대로 된 교섭이 이뤄지기도 전에 강경진압에 들어갔다는 전직 경찰의 증언 모두 일반인들에게는 새로운 사실들이다.

 

그러나 현장에서 살아남은 피고인, 그리고 유족과 철거민들에겐 전혀 새롭지 않다. 이미 수 개월 동안 철거민과 유족들이 주장했던 내용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저들이 그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고, 그 입을 막으려 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찰과 재판부는 사뭇 진지하다. 왜 유독 화재 시점에 채증카메라에 영상이 끊겨 있느냐, 소리는 지워졌느냐, 망루에서 무엇을 보았느냐, 화염병은 보았느냐, 특공대를 본 것은 언제냐, 남일당 건물 안엔 누가 있었냐, 증거영상에 나온 저 장면은 무엇이냐, 심지어는 증거영상의 몇 분 몇 초의 차이까지 셈하는 정성을 보인다.

 

그러나 피고와 방청객의 시선은 흔들림이 없다. 피고의 무죄를 입증할 증언이 나오더라도, 반대로 뻔히 아는 사실을 잡아떼는 거짓말이 나오더라도 다만 굳게 다문 입을 더욱 앙다물 뿐이다. 이 재판의 결과와 가장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이들의 얼굴에 절망도, 희망도 비치지 않는다. 왜일까?

 

적어도 그들만큼은 3000쪽의 수사기록 없이 진행되는 이 재판이 얼마나 말이 안 되는 연극인지 알기 때문이다. 검사가 연출한 각본을 열심히 공격하는 변호인, 재판부는 그 사이에서 미간을 찌푸리며 성대한 말잔치 속에서 진실을 찾아내는데 골몰한다. 그 동안 피고와 방청객은 온 힘을 다해 "임금님은 벌거숭이!"라고 외치고 있지만, 그 소리는 방청석과 재판정 사이를 가르고 있는 높은 벽에 부딪힌다. 그러니 어찌할 것인가? 알맹이는 쏙 빠진 재판에서 짐짓 진지한 표정을 짓고 앉아 연기법을 배우지 못한 그들은 어찌할 것인가?

 

사법의 치욕, 이 시대의 치욕

 

  
12일 오전 용산참사 화재현장에서 검찰과 변호인단이 참석한 가운데 현장검증을 하고 있는 재판부 한양석 부장판사.
ⓒ 사진공동취재단
용산철거민참사

 

철거민들이 건물을 점거한 것도 불법이고, 인화물질을 소지한 것도 불법이다. 그러니 화재가 발생한 것도, 그로 인해 사람이 죽은 것도 모두 그들의 책임이다. 심지어 그들의 존재 자체도 불법이다. 그들은 일상적인 시민들과는 구별되는 도심의 테러리스트이다. 여기까지가 검찰의 스토리다. 일단 그렇다 치자.

 

그렇다면, 왜 유독 김석기 서울경찰청장과 용산경찰서장, 경찰특공대장과 간부, 경찰특공대원들의 진술서류가 포함된 수사기록 3000쪽을 공개하지 않는가? 둘째, 전투경찰도 아닌 특공대원을 투입할 만큼 지대한 공무집행이 왜 8개월만에 중앙정부가 관여할 수 없는 민사간의 일로 둔갑되었는가? 셋째, 공무집행 와중에 민간을 살상한 책임에 대해서는 도대체 어디에 물어야 하는가? 넷째, '떼'를 쓰지 않고는 아무도 자신들의 비명에 귀기울여주지 않는 사람들이 우아하고 합법적인 방법으로 생존권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은 대체 무엇인가?

 

이 모든 질문들을 고려한다면, 검찰이 만들어낸 저 빈곤한 스토리는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그랬다면 아마도 311호실의 재판정의 피고석엔 다른 얼굴들이 앉아 있을지 모른다. 재판의 이슈도 <공무집행방해치사>죄가 아닌 <업무상과실치사>죄일지 모른다. 재판부의 양심과 권위가 검찰의 무소불위보다 높았더라면, 3000쪽 공개에 대한 헌법소원판결까지 재판을 연기했더라면!

 

그렇다면 우린 이 연극에 좀더 몰입할 수 있었을 것이다. 망루 안에서 화염병을 던지는 것을 보지 못했다는 특공대원의 증언에 탄성을 지르고, 현장에 대해 아무것도 지시하지 않았다는 경찰 지휘부의 뻔한 거짓말에 야유를 퍼부었을지도 모른다. 이 뻔한 드라마가 어떤 결말로 치달을지 두 눈을 똑바로 뜨고 지켜보겠다는 오기 대신에, 보다 건강한 희망을 품었을지도 모른다. 진실은 결국엔 승리한다는 희망을.

 

그러나 이 모든 핵심적인 질문들만을 고의적으로 빠뜨린 채 진행되는 재판에는 도저히 몰입할 수가 없다. 공무집행 방해 치사는 있었지만, 적법한 공무 수행은 없었던 패러독스, 죄인이란 증거는 없지만 죄인이라고 지목했기 때문에 죄인이 된 아이러니. 도대체 이 난해하고 부조리한 연극에 어떻게 집중할 수 있는가? 도대체 무엇을 기대해야 하는가?

9월 1일 이전 변호인단이 총괄사임을 하면서 이런 말을 남겼다. 변호인으로서 이러한 재판에 피고들을 응하게 만드는 것은, 3000쪽의 수사기록 없이 진행되는 이 재판은 "사법의 치욕"이며, "이 시대의 치욕"이라고.

 

나는 고발한다, 이 치욕의 시대를

 

 

치욕을 면할 길은 이뿐이다. 변호인단은 최선의 노력으로 공소기각을 위해 싸우고, 재판부는 시대적 양심과 법원청사의 기둥처럼 우뚝하고 올곧은 법의 정신으로 판결을 내려야 한다. 그것만이 311호실의 사법 주체들이 치욕을 면할 길이다. 검찰은 충분히 욕을 볼만큼 봤고, 안타깝게도 이를 면할 길은 없을 듯하다.

 

사법 주체들이 당면한 치욕은 그렇다치고, 이 시대의 치욕은 어찌할 것인가? 시대의 치욕은 우리 중 그 누구도 면할 수 없다. 이러한 사건이 일어났다는 것이 치욕이고, 그것이 이처럼 오랫동안 해결되지 않았다는 것이 치욕이고, 검찰의 꼭두각시놀음에 놀아나야 한다는 것이 치욕이다. 점점 무뎌진다. 체념하게 된다. 사법의 합리성과 민주주의의 힘보다는 현장에서 매일 바치는 미사와 예배가 더 희망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정녕 그것이 우리의 유일한 희망인가? 그래도 되는 것일까?

 

검찰의 허접하고 몰상식한 스토리는 이제 질렸다. 검찰이 기소권을 독점하는 한, 그들은 영원히 피고석에, 우리는 영원히 눈과 입과 귀를 막은 채로 방청석에 앉아야 한다. 그들의 연극에서 우리는 조연도 아닌 한갓 소품에 불과하다.

 

이제 곧 <용산 국민법정>이 열린다. 좁고 어두운 통로도 없고, 경찰의 채증카메라도 없다. 우리 중 누군가가 판사가 되고, 누군가는 검찰과 변호사가 될 것이다. 우리 손으로 진짜 죄인에 대해 기소장을 쓸 것이고, 우리가 배심원이 될 것이다. 우리에겐 법전이 없지만, 상식과 양심, 그리고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이 있다. 10월 18일 <용산 국민법정>에서 나는 고발할 것이다. 이 치욕의 시대를, 용산참사의 진짜 죄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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