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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용산은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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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용산    
작성일 2010년 03월 17일 17시 01분 07초

“용산은 끝나지 않았다”

 

시사인 [130호] 2010년 03월 17일 (수)

 

요즘 용산 참사 유족 정영신씨의 휴대폰 컬러링은 언터쳐블의 ‘가슴에 살아’이다. 전화 통화를 시도하다 들린 ‘그대 때문에 숨을 쉴 수 있어요. 그대 때문에 웃을 수가 있어요. 참 이상하게 웃어도 눈물이 흘러요’라는 가사가 그녀와 겹쳤다. 정씨의 남편은 이충연 용산철거대책위원회 위원장. 이씨는 지난해 10월 징역 6년을 선고받았다. 경찰관을 숨지거나 다치게 한 혐의였다.

용산은 끝났지만 끝나지 않았다. 용산 장례식 이후 남일당을 떠났지만 그녀의 일상은 큰 변화가 없었다. 매일 남편 면회를 간다. 하루 10분 면회를 마치면 그녀는 또 다른 용산을 찾아 다녔다. 자신과 처지가 비슷한 사람들에게 작은 힘이나마 되기 위해서였다.

   
1월9일 355일만에 용산참사 희생자들의 장례식은 치러졌지만, 산 자들은 여전히 감옥에 갇혀있다.
법원이 미공개 수사기록을 직권으로 공개하자 검찰이 재판부 기피 신청을 내면서 지난 1월14일부터 중단된 공판이 15일 다시 시작됐다. 이날 서울 고등법원에서 만난 그녀는 “너무 기대하지 않는다. 지난번에도 기대가 큰 만큼 절망이 너무 컸다”라고 덤덤하게 말했다. 아침에 만나고 온 남편도 같은 말을 했다. “다른 건 안 바라고 과잉진압이라는 부분만 인정을 해줬으면 좋겠다. 미공개 수사 기록이 공개됐으니 그것만큼은 인정 해줘야 하지 않나”

이날 법정 방청 인원은 60여 명으로 제한됐다. 인사이동으로 항소심 재판장이 바뀐 후 첫 공판이었다. 2009년 1월20일 사건 당시 작전을 수행했던 특공대원과 용산경찰서 경비과장, 서울경찰청 경비과장이 증인석에 섰다.

변호인단은 사건 당시 경찰과 용역 사이 공조 의혹을 제기했다. 김형태 변호사는 “망루를 짓던 1월19일부터 경찰이 철거민을 괴롭히던 용역들의 행동을 저지하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다”라며 당시 수집한 동영상 자료를 제시했다. 김 변호사는  “용산경찰서의 정보 보고서에 보면 사건 당일인 1월20일 ‘철거반원이 (3~4층 사이) 장애물 해결을 진행 중이다’라고 말한 무전 내용이 나온다. 옥상으로 가려면 장애물을 뚫어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용역업체의 협조를 받았다는 증거다. 용역과 주민이 대치한다면 중립적인 입장에서 충돌을 막아야 하는 것이 경찰의 임무인데 적극적으로 도움을 받은 건 문제가 있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원범 용산경찰서 경비과장은 “철거반원의 도움을 받지 않았다. 보고가 잘못된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뒤이어 “용역업체에게 건물에서 나오라고 몇 차례 조합을 통해 얘기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건물에 가까이 가기만 해도 철거민들이 화염병 등을 던지는 상황에서 접근이 쉽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세 번째 증인으로 참석한 이송범 서울지방경찰청 경비과장은 “가급적 철거반(용역)이 먼저 장애물을 제거하고 안 되면 용산서에서라도 진행하라고 무전기를 통해 말했다”라는 사실을 인정했다. ‘무전기를 통해 전달됐으니 지시 사항이 아니었는가’라는 변호인단의 신문에 “지시가 아니라 단지 본인 생각이었고 결국 그대로 실행이 안 되었다”라고 해명했다.

검찰은 “공무 집행 할 때 집 주인에게 문 열어달라고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용역 업체가 3~4층 사이 장애물을 뜯어냈다고 해도 그런 차원으로 이해할 수 있다”라고 반박했다.

   
ⓒ시사IN 장일호
남편(이충연)이 1심에서 유죄를 받자 눈물을 흘리는 정영신씨(오른쪽)
이날 공판 내내 법정은 비교적 조용했지만 경찰 관계자들의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유족들은 어이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특히 용산경찰서 경비과장이 사건발생 이전에 용역업체와 주민들 간의 갈등 관계를 잘 몰랐다고 진술하는 부분에서는 “말도 안 된다”라며 혀를 차는 사람들로 재판장이 술렁였다.

김형태 변호사는 “이번에는 경찰이 용역업체에 협조한 부분을 인식시키는 데 주력했다. 다음 심리 때는 화재 원인 부분을 비롯해 더 윗선의 책임자들을 증인으로 불러 과잉진압을 시인하게 하는 데 주력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날 정씨는 수감 중인 남편 이충연씨를 법정에서 잠시 만날 수 있었다. 여느 때처럼 피고석에 앉은 이씨를 본 정씨는 “사람들 모두 용산 참사가 끝난 줄 안다. 어머니들이 너무 힘들어 하셔서 장례만 지낸 것뿐이고 해결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라고 끝내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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