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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나는 기소한다2]넘치는 사랑 속에서 투쟁하기에 힘이 납니다. -용산 4상공 철대위장 박창숙 님
번호 10 분류   조회/추천 3142  /  478
글쓴이 준비위    
작성일 2009년 09월 23일 12시 16분 16초

[나는 기소한다]

넘치는 사랑 속에서 투쟁하기에 힘이 납니다.

용산 4상공 철대위장 박창숙 님

 

- 민선(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

 

  (용산 4상공 철대위장 박창숙 님)

신부님들이 천막기도로 용산과 함께 울고 웃은 지 100일이 되던 날, 그 특별한 날에 함께 하기 위해 가을비가 종일 내렸던 9월 21일 미사에는 평소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했다. 이 특별한 자리에 함께 하기 위해 용산4가 철거민대책위원장 박창숙 님도 하루 종일 서울시청 앞에서 농성을 하다가 미사에 참여했다. 지난 15일과 19일에 폭력적으로 철거된 만장을 다시 세운 기쁨을 나누면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함께 부르며 앞으로의 투쟁에 대한 마음을 다잡으면서 100일 미사가 끝났다. 다시 서울시청으로 돌아가 밤샘농성을 할 준비를 하는 박창숙 위원장을 만났다.

 

넘치는 사랑에 제가 얻는 것이 너무 많아요

 

남일당 현장을 지켜온 8개월의 시간, 그 고단함의 무게를 감히 예상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박창숙 위원장은 8개월의 시간에 대해 “넘치는 사랑 속에서 따뜻하게 투쟁할 수 있어 행복하다”고 말했다.

“처음에 참사 일어났을 땐 너무 막막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어요. 마냥 당하고 있으면 안되겠다 싶어서 앞장서 열심히 싸우자, 그래서 이명박 사과도 받고 오세훈한테 세입자 대책도 요구하자 생각했어요. 어려운 싸움이라 막막했었죠. 그러다 3월 28일 문정현 신부님이 오셔서 미사를 시작하면서 사랑을 듬뿍 받게 되었는데 이강서 신부님도 오셔서 힘을 더욱 받고 있어요.”

 

매일 아침 6시 기상으로 전철연 식구들의 남일당 생활이 시작된다. 팀을 나눠서 아침식사와 분향소 청소를 한 뒤 다같이 모여 전날에 대한 평가와 함께 하루 일과를 점검하는 미팅 시간을 갖는다. 그리고 농성 당번은 8시 반 시청으로 출발해 다음 날 오전 9시까지 선전전과 노숙농성을 한다. 나머지 사람들은 분향소를 지키고, 연대투쟁을 간다. 빠듯한 일정의 하루하루가 어느덧 8개월. “어디든 갈등이 없지는 않죠. 그러나 싸울 때는 정말 하나가 되어 싸워요. 유가족, 신부님, 수녀님, 전철연 동지들 이렇게 모든 식구들이 같이 한다는 것이 힘인 것 같아요. 너무너무 자랑스럽죠.”

 

전철연 식구가 되기까지

 

“2005년에 용산4가에서 장사를 시작했어요. 집은 신림동이라서 여기 이웃들을 거의 몰랐죠. 개발에 대해서 아는 것도 없었어요. 좀 알아보자 싶어서 2007년 2월 철대위에 노크를 하게 되었어요. 그냥 보상금 받고 나가야 하나 생각도 했었는데, 이충연 위원장님이 ‘당신은 힘이 있어 보인다. 잘못된 개발 정책을 같이 한 번 바꿔보자’ 하면서 다섯 번이나 찾아왔어요. 나중에 이충연 위원장님 얘기가 우리 철대위 식구들 중에 가장 많은 공을 들인 회원이 저라고 하더라구요. ‘역시 사람 볼 줄 아시네’ 자화자찬을 했었죠.(웃음) 이렇게 나를 믿어주고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너무 힘이 되고 좋았어요.”

 

“남편 없이 혼자 아이들을 키우며 살았지만 아이들이 잘 커줘서 제가 낙천적이에요. 그래도 가장이라 의지하고 싶은 부분이 있는데, 양회성 열사님이 저를 너무 예뻐하시고 늘 함께 해줬어요. 밤에 규찰서고 나면 손수 라면을 끓여주기도 하고, 신림동 가는 버스가 올 때까지 기다려주면서 ‘무섭게 생각하지 말고 오빠 뒤만 따라와라’ 말해줬었죠. 1월 17일 형부가 돌아가셔서 광주에 내려갔었는데, 비상이 걸렸다고 연락이 왔어요. 19일에 장례를 치르고 밤 12시가 넘어 올라왔어요. 경찰들이 잔뜩 와있고, 이상한 장비 같은 것이 와서 초조해하며 보고 있는데 갑자기 불이 나더니 그게 마지막이 될 줄 몰랐어요. 윤용헌씨는 저랑 동갑인데, 너무 좋았던 사람이에요. 연대 오셔서 그렇게 된 것이 너무 죄송해요.”

용산4가 철대위 식구들, 그리고 전철연 식구들에 대한 기억을 얘기하던 박창숙 위원장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철대위 활동을 자식이 앞장서 하고 남편도 같이 했던 전재숙 님을 보면 가슴이 얼마나 미워질까 싶어 마음이 아팠어요. 그런데 결과가 이렇게 되어 너무 안타까워요.”

 

“유족들을 보면 하루라도 빨리 장례를 치룰 수 있도록 해서 한을 풀어드리고 싶고, 상복을 벗을 수 있게 하고 싶어요. 그런데 우리에게 힘이 없다는 것이 너무 마음이 아파요. 여기저기 막개발로 인해 희생자들이 많은데, 저희들의 싸움이 마지막이 되어 다음 세대에는 이런 일이 없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나중에 눈물을 흘리면서 우리 이랬었다 얘기하면서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어요. 언제 끝날지 모르는 싸움이지만 꼭 승리하는 그 날까지 모두들 건강해서 똑같이 그 기쁨을 나누고 싶어요.”

 

이명박을 기소한다

 

“전 이명박을 기소했어요. 모든 것이 그 사람 지시 때문에 발생했다고 봐요. 지시가 없었다면 이렇게까지 안했을 거고 사고도 일어나지 않았을 거에요. 지금 귀 막고 눈 가리고 있지만, 그 사람만 사과한다면 모든 게 해결될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하루 빨리 해결해서 유족들의 상복을 벗겨드리고, 생활전선에 뛰어들고, 용산에서 받은 사랑을 나누기 위해 봉사를 하고 싶다는 박창숙 위원장. “투쟁을 하면서 5킬로가 늘었어요. 예전에는 정장으로 갖춰 입지 않으면 밖에 나가지도 않았었는데, 이제 츄리닝에 슬리퍼가 제일 편해요. 그래서 살이 자꾸 찌나봐요. 어제 명동성당에 갔었는데 박래군 집행위원장님이 여기를 슬리퍼를 신고 왔냐고 묻더라구요. 그랬더니 남경남 의장님이 멀었다고, 더 변해야지 승리한다고, 조금이라도 화장기가 없어야 한다고 하더라구요. 얼마나 웃음이 나오던지 새벽 2시에 그 앞에서 많이 웃었어요. 근데 맨얼굴로 다니기는 뭐해서 화장을 안할 수가 없어요.(웃음)”

 

박창숙 위원장의 말을 들은 다른 식구가 ‘손주랑 있어도 엄마로 보이는 사람이 그런다’고 말은 던졌다. “아들이 결혼을 빨리 해서 제가 손주가 둘이나 있는 할머니에요. 그래서 신부님들이 젊은 할머니라며 놀려요. 며느리가 살림살이 다 해주면서 저에 대해 이해를 너무 많이 해줘서 참 감사하죠. 손주들이 너무 예뻐서 같이 놀아주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어서 미안해요.”

 

“투쟁을 하면서 평생을 함께 하고 싶은 사람들을 만나고 넘치는 사랑을 받아서 앞으로 이를 나누면서 살고 싶어요. 저보다 아픈 사람이 있으면 먼저 달려가 위로해주고 싶고 힘이 되주고 싶어요.” 박창숙 위원장의 말에 선을 행하라는 사제단 천막 앞에 걸린 만장이 떠오른다. 어느덧 밤 10시, 농성 짝꿍이 기다리고 있다며 이불 등을 챙긴 박창숙 위원장의 발걸음이 서울시청을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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