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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그 입 다물라2]악어의 눈물, 김석기 전 서울경찰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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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준비위    
작성일 2009년 09월 23일 12시 19분 21초

[그 입 다물라]

악어의 눈물, 김석기 전 서울경찰청장

 

김석기 전 서울경찰청장께.

                                                                                                                               -배여진(천주교인권위원회)

수신인을 쓰고 나니, 이런 생각이 드네요. 김석기 전 서울경찰청장이라고 써야 할지, 아니면 김석기 전 경찰청장 내정자에게 라고 써야 할지 말입니다. 아마도 한 평생의 꿈이었을 경찰청장이 될 수도 있었던 순간에 용산참사가 발생하여 '도의적 책임'을 지고 사퇴하셨으니 본인으로서는 몇 날 밤을 잠을 못 이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먼저, 저희 외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신 이야기를 한 번 드리고 싶네요. 얼마 전, 외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습니다. 당신께서 가실 날이라는 걸 아셨는지, 떠나시기 3일 전부터 몸속의 것들을 다 비워내시고, 한국에 있는 자식들을 불러 모으셨지요. 그리고 주무시기 전 '얼굴 봤으니 됐다. 방 문 열고 나가라' 하셨다고 합니다. 우리 할아버지, 방의 문은 칼같이 닫고 주무시는 분이었는데 말입니다. 그리고 다음 날 이른 새벽, 느낌이 이상해 깬 엄마는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신 걸 알았습니다. 아직 가슴에는 온기가 남아있었더랬습니다. 아마 할아버지는 열려진 방문을 나와 자고 있는 자식들의 얼굴을 찬찬히 살피시며 빛을 따라 마지막 길을 걸어가셨겠지요. 남겨진 우리 가족들은 장례를 치르며 슬퍼하고 할아버지를 보내드렸습니다.

저는 외할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면서 아직 먼저 간 가족의 장례도 치르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떠올라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한 순간에 가족을 잃고 슬퍼할 시간조차도 빼앗은 당신들의 만행에 화가 치밀어 오르덥디다. 손에 경찰 방패를 들었던 사람의 영정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슬퍼하던 김석기씨, 손에 화염병을 들고 있던 사람들의 죽음에는 한 치의 슬픔도 느끼지 못했는지 늘 묻고 싶었습니다. '도의적 책임'이 아니라 그저 인간으로서 조금의 슬픔도 없었는지요. 차를 타고 도로를 달리다가 차에 치어 죽은 동물들의 사체를 보고도 슬픔과 연민을 느끼는 게 사람의 마음입니다. 그 동물이 고양이었든지 강아지였든지 사슴이었든지 간에 상관없이 말입니다. 화염병을 들고 있던 사람들은 슬퍼할 가치도 없는 사람이었던가요?

저는 할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면서 죽음의 문턱에 있는 사람들을 뉴스로 보았습니다. 쌍용자동차 공장안에 있던 노동자들 말입니다. 세 네 명의 경찰이 한 명의 노동자에게 달려들어 방패로 마구 찍더군요. '아, 저러다 사람 죽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마도 저 순간만큼은 저 사람에게 죽음의 문턱이었을 것 같았습니다. 그러면서 저렇게 죽어간 사람들이 떠올랐습니다. 죽음의 문턱에서 다시 이승으로 발길이 돌려진 사람들이 아니라,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발길이 떠난 사람들 말입니다. 설마 벌써 김석기씨의 기억에서 잊혀지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요. 1월 20일 추운 겨울 그 날 말입니다. 김석기씨 당신이 무전기를 꺼놓았다는 그 날 말입니다. 김석기씨 말대로라면 용산 남일당 건물 앞에 화염병과 벽돌, 염산병이 무차별로 투척되고 건물이 불타고 도로가 마비됐었다는 그 날 말입니다. 김석기씨는 사퇴하는 날까지도 용산참사 희생자들을 '테러범'으로 몰더군요. 성경에 '일곱번씩 일흔번이라도 용서해라'라는 구절이 있는데, 나는 김석기씨의 말을 들을 때마다 '일곱번씩 일흔번이라도 입을 다물라'라고 말해주고 싶었습니다. 누가 누구를 죽인 것입니까. 경찰특공대가 투입되지 않았더라면 그들은 그렇게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니, 세입자 철거민들에 대한 제대로 된 적절한 보상이 이루어졌더라면 망루에 올라가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아니, 철거민들을 양산해내는 재개발 정책들이 아니었다면 이런 일도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다시 한 번 묻습니다. 누가 누구를 죽인 것입니까.

저희 엄마가 외할아버지의 마지막 온기를 느꼈던 것처럼 아직도 상복을 벗지 못하고 있는 유족들도 먼저 간 가족의 마지막 온기를 느끼고 싶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제대로 슬퍼하지도, 그 슬픔을 준비하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그 슬픔 억누르고 진상규명을 위해 싸우고, 다시 거리로 나갑니다. 그러나 여전히 유족들이 가는 길목에는 경찰이 서있고, 갈 길을 막습니다. 이게 바로 김석기씨가 말했던 '엄정한 법집행'인가요?

아, 젠장. 가진 게 몸뚱아리밖에 없어 몸으로 맞서 싸우는 방법밖에는 모르겠습니다. 멍드는 것쯤이야 시간이 지나면 없어지는 거고, 뼈가 부러진다면 완벽히는 아니겠지만 다시 붙긴 하겠지요. 머리털이 쥐어 뜯기면 다시 자라날 테고, 살갗이 찢어지면 까짓거 꼬매버리지요. 안경이 부서지는 것쯤이야 그 정도는 늘 대비해서 싼 값의 안경을 구입하니 괜찮습니다. 김석기씨, 우리의 이런 저항마저도 '불법테러'로 매도하는 건 아니겠죠?

 

참으로 추웠던 날로 기억되는데 봄이 지나고, 또 한 여름이 지나고 쌀쌀한 바람이 불어오는 것이 다시 추웠던 그 날이 오는 것 같습니다. 그 동안 변한 건 참 많은 것 같은데 용산의 그 곳은 전혀 변한 것이 없습니다. 날이 더워져서 상복을 얇은 것으로 바꿔 입었었는데 다시 두꺼운 상복으로 갈아입을 날이 다가오는 것 같네요. 이 기나긴 시간 장례도 못 치르고, 싸우고 있는 유족들을 진심으로 생각해보십시오. 아직도 경찰특공대의 투입이 잘 한 짓인지, 그 짓들이 정당한 법집행이었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혹여나 김석기씨가 또 용산참사 희생자들을 '테러범'으로 몰려고 하거들랑, 그냥 그 입, 다물어 주십시오. 아- 제가 너무 예의 바른가요? 저는 경찰들에게 예의를 대우받은 적이 없는데… 이럴 때 사용하라고 이런 유행어가 나돌았던 모양입니다.

 

'우 쥬 플리즈 닥쳐줄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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