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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용산과 나의 집2] 집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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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준비위    
작성일 2009년 09월 23일 12시 32분 43초

집을 찾아서

                                                                                                  이동현 <홈리스행동(준), 상임활동가>

 

집주인에게서 전화가 왔다, 전세금을 올려야 한다고. 이천 만원은 올려야 하는데, 가능하겠냐고. 이천 만원? 당연한 말씀!

지금 살고 있는 언덕 꼭대기 열 평 남짓한 우리 집 전세값의 절반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요즘 우리 부부는 열심히 집을 구하고 있다.

 

2년 전, 결혼에 임박해 새 살림집을 구해야했다. 천삼백만 원짜리 전세 옥탑방에 살던 나는 국민주택기금에서 영세민 전세자금 대출을 받고(해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만만한 일은 아니다), 주변 사람한테도 빌리고 해서 내겐 기적과도 같은 금액인 사천 만원을 만들었다. 그러나 부동산에서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요 몇 달 새에 전셋값이 일, 이천 씩은 올라서 어렵다는 거다. 그렇게 한 달 남짓 발품을 팔아 운 좋게 지금 사는 집에 들어올 수 있었다. 요즘엔 다시 다리품을 판다. 그러나 부동산을 통해 듣는 얘기는 똑같다.

“요즘 몇 달 새 이천 씩은 다 올라서...”

 

신문지상에서는 연일 전세대란이란다. 그래도 “잘 만 찾으면” 하는 기대로 여기저기 전화를 걸고 다녀도 보지만 기사가 사실임을 확인할 뿐이다. 부동산 중개업소에 걸린 지적도에는 여기 저기 빨간 칠이다. “OOO 재개발 구역”. 가는 동네마다 개발 구역이 없는 곳이 없다. 이따금씩 금액에 맞는 집이 나온다싶으면 대부분 개발구역에 속해 있는 곳이다. 부동산에서는 요즘 다 이사비를 주는데 상관있냐고 한다.

글쎄... 개발지역으로 이사를 간다?

 

지난 달, 서울 고등법원에서 개발지역 내 세입자 주거이전비 지급 기준일을 ‘사업시행인가일’로 해야 한다는 판결이 났다. 기존 재개발조합은 개발구역으로 정해진 날짜(구역지정일)를 기준일 삼아 주거이전비를 지급했는데, 기준일을 사업시행인가일로 하게 되면 보상대책에 포함되는 세입자가 늘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럴까? 개발조합들은 구역지정일 이전에 거주하던 이들에게조차 주거이전비 지급을 하지 않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아예 서울시는 한 구역을 개발하면서, 주거이전비와 임대주택 입주권을 맞교환하라는 불법(법상에는 둘 다 가능)을 공공연히 자행하기까지 하였다. 혹자는 그런다. 주거이전비를 노리고 개발지역에 들어가는 일이 있지 않겠냐고. 그러나 자신의 삶터가 언제 파헤쳐질 지 전혀 예상할 수 없는 개발지역에 과감히, 자발적으로 들어간다고? 세입자들의 의사와는 전혀 무관하게 사업시행인가일이 지정되고, 관리처분이 떨어지고, 보따리 싸 이사할 집 찾느라 부동산 문턱 닳도록 헤매기를 자처한다고? 법률이 정한 주거대책조차 자신의 삶터를 걸고 싸워야 얻어질까 말까한 현실에서? 그런다한들 이미 다른 곳 전셋값은 주거이전비보다 높은 금액으로 멋대로 오르는 데?

 

어제 사무실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거리 생활을 하다 작년부터 여관에 달세를 내며 살았는데, 오늘 동사무소에 가봤더니 올 해 4월부로 주민등록이 말소되었다는 거다. 확인해보니 그 여관은 쪽방 형태로 운영되는 곳이었고, 개발 구역으로 지정되면서 집 주인이 손을 쓴 것이었다. 훗날 개발로 인해 여관 세입자들을 내 보낼 때 주거이전비, 이사비를 주지 않아도 되도록 주민등록을 말소시킨 것이다. 애초 임대차계약서는 써 주지도 않았다. 그러면서도 철거되는 그날까지 영업을 하며 가난한 이들의 월세를 받아먹겠지?

진상이다. 심술보 가득한 여관 주인이 아닌, 개발의 진상이다. 지주, 자본에게 착취의 기술을 극대화하고 세입자들을 발가벗겨 그들 밖 공간으로 내쳐버리는.

 

용산 참사 이전, 개발이 있었다. 개발이라는 폭력 자본이 용역깡패를 사고, 경찰을 사고, 검찰을 사고, 용산구청을 사고, 서울시를 사고, 정부를 샀다. 이들을 무기로 용산 철거민들에게 할 수 있는 모든 폭력을 저질렀다.

 

개발이 저지되지 않는 한 용산은 어디나 존재한다. 쪽방에서조차 쫓겨나는 가난한 중년에게도, 전셋집 구하러 서울시내 곳곳을 배회하는 젊은 부부에게도, 환상에 젖어 그나마 있던 여남은 평 집주고 세입자로 전락하는 가옥주에게도 개발이 낳은 크고 작은 용산은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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