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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요모조모따져보기2] 진심의 대책
번호 12 분류   조회/추천 2370  /  457
글쓴이 준비위    
작성일 2009년 09월 23일 12시 28분 17초

진심의 대책

김연정(인권운동사랑방 자원활동가)

 

 

 

적절한 보상과 공공임대주택.

강제 퇴거에 맞선 철거민들의 요구다. 너무 과한가? 필요한 건 알겠지만 국가가 자선사업 단체도 아닌데 다 해줄 수는 없는 일인 건가? 그런데도 계속 요구하는 건 그야말로 떼잡이들의 땡깡인가? 하지만 해외 정책을 검토하면서 많은 국가들이 철거민의 요구를 땡깡이 아닌 권리의 주장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 정부가 과하다고 생각하는 그 이상을 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배부른 선진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남아공은 헌법에 주거권을 명시하고 있고 필리핀의 퇴거절차 규정은 우리나라의 ‘합법적 강제퇴거’를 부끄럽게 만든다. 국가는 국민의 ‘주거환경개선’을 위해 개발을 결정했다. 그런데 그 결과 국민이 주거 자체를 잃거나 더 열악한 곳으로 이주할 수밖에 없다면 당연히 정부는 적절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 주거환경개선을 위해 갈 곳이 없어도 집을 나가라는 요구. 이거야 말로 과한 것이기 때문이다.

 

1. 집 값 보상? Wow! 주거권 보장? Olleh!

몇 년 전 한 드라마에서 이런 대사를 들은 적이 있다. ‘꺼지라구요? 제가 무슨 연기인가요? 꺼져버리게’ 바로 철거민들이 정부에 하고 싶은 말일 것이다. 사람은 연기처럼 꺼져버릴 수 없다. 사람은 누구나 살 곳이 필요하다. 해외의 주거 대책에 있어 눈에 띄는 것은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재정착 지원이 '모든' 거주민을 대상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반면 우리나라 주거 대책을 보며 궁금해지는 것은 대책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 수많은 ‘미해당자’들의 뒷이야기이다. 그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연기처럼 사라졌을까?

영국의 경우 1973년 토지보상법에 ‘모든 사람들’의 재정착을 의무화 했다. 일본은 세입자를 포함한 원거주민의 재정착을 위해 6가지의 주거 대책을 마련하고 있으며 민간개발사업의 경우에도 거주민과의 적절한 보상협의가 진행되지 않은 한 사업추진 자체가 힘들게 되어있다. 미국은 공공개발 과정에서 이주하는 모든 가구들에 대체주택을 제공하기 위해 1970년 ‘단일이주지원과 부동산획득법(Uniform Relocation Assistance and Real Property Act)'을 제정하였다. 우리나라는 공공개발의 경우 거주민뿐만 아니라 세입자에게도 이주대책을 적용하고 있으나 공람공고일 3개월 전부터 거주한 세입자로 제한하고 있으며 여기에 가구원 수, 세대주의 나이, 소득, 건물 용도 등 세부적인 기준에 더해져 이주대책을 보장받지 못하는 세입자가 많다. 게다가 민간개발의 경우에는 세입자에 대한 보상과 이주대책에 대한 규정이 아예 없어 세입자에 대한 사회적 보호장치가 전무한 상태이다.

재정착을 위한 외국의 지원 내용을 살펴보면 크게 대체주택의 제공과 보조금 지급으로 나뉜다. 영국의 경우 이주 가구에 대해 사회주택(council housing)을 제공하고 있으며 이주자가 사회주택을 원하지 않아 정부가 법적 보상을 하는 경우 시장가치를 기준으로 보상액이 결정된다. 이러한 시장가치는 토지의 용도가 변했을 경우 기대 가치까지 반영하는 것이다. 또한 일정 소득 이하의 모든 국민에게 주거비보조를 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도 모든 이주자들을 위한 대체주택 마련을 의무화하고 있으며 저소득층을 위한 다양한 입주지원 정책을 도입하여 대체주택으로의 입주가 현실적으로 가능하도록 노력하고 있다. 일본은 공공개발뿐만 아니라 민간개발에서도 공영주택을 공급하는데 공영주택의 임대료 체계가 소득수준에 따라 차별화되어있고 급격한 임대료 인상 문제를 완화하는 제도도 마련해놓고 있다. 또한 인상적인 것은 공영주택을 지을 때 세대구성, 근린관계 등 주거요소를 충분히 고려하여 사업 완료 후에 다시 마을 공동체가 형성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임대주택 입주권이 제공되기는 하지만 보증금이나 임대료가 너무 비싸 철거지역 세입자나 가난한 집주인에게 현실적 대책이 되지 못하고 있으며 이렇게 입주가 불가능한 경우에 대해 임시주거제공이나 보조금 지급 등의 지원도 전혀 없는 상태이다.

 

2. 강제퇴거는 최후의 카드

유엔 인권위원회는 ‘강제퇴거에 대한 결의’를 통해 강제퇴거가 명백한 인권침해임을 선언하였다. 또한 사회권규약 ‘일반논평 7’은 강제퇴거와 관련한 8가지의 보호규정 나열하며 당사국이 강제퇴거를 피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대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강제퇴거 문제, 특히 집주인이 세입자를 내쫓는 강제퇴거 문제의 핵심은 ‘정부가 강제퇴거를 막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하였는지 여부’이다. 집주인의 소유권과 세입자의 주거권이 대립하는 상황에서 정부의 역할은 한 권리가 다른 권리를 전적으로 무시, 배제하는 상황을 막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하는 것이다. 특히 주거권이 필연적으로 생존권과 연관됨을 고려할 때 ‘최선의 노력’인지 여부는 사회권 규약을 기준으로 엄격히 가려져야 마땅할 것이다. 하지만 이 점에 있어 우리나라 정부는 직무유기를 넘어 고의적, 일방적으로 집주인의 소유권을 편드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우리 정부의 태도를 볼 때 외국의 여러 정책과 법률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 남아공 법원은 퇴거 대상자가 퇴거로 인해 노숙인이 될 가능성이 있다면 정부는 미리 적절한 대안 주거를 제공할 의무가 있다고 판결했다. 또한 영국은 소수의 주민들이 끝까지 퇴거를 거부한다 해도 강제퇴거 절차를 밟지 않는다. 사업의 효율성보다 주민의 인권에 보다 큰 가치를 두기 때문이다. 영국은 이외에도 다양한 방법으로 퇴거대상자의 대항력을 보장하고 있는데 집주인이 세입자의 퇴거를 위해 여러 가지 수단을 동원해 괴롭히는 것이 법으로 금지되어 있으며 명도신청을 하기 위해 집주인은 세입자가 퇴거되어야 하는 근거를 제시해야한다. 집주인의 명도신청은 세입자에게 통지되고 세입자는 법원에 자신을 변호할 기회를 갖는다. 또한 세입자는 법원의 명도 명령 후에도 다른 거처를 찾기 위해 퇴거를 연기할 수 있고 부당한 행위로 인한 피해에 대해 쉽게 보상받을 수 있다. 퇴거와 관련된 전 과정에서 세입자는 무료 상담과 법률 지원을 받을 수 있는데 최초 퇴거 고지에 이런 권리가 명시되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퇴거의 원인에 대응하기 위해 채무 관리, 주거비 보조 청구 등의 지원도 이루어진다. 미국은 모든 지역에 장제퇴거 예방을 위한 세입자 지원단체 구성을 의무화하고 있고 이주비 지원과 각종 대체주택을 법적으로 보장해 개발사업과 관련된 강제퇴거는 사실상 일어나지 않는다. 필리핀은 월요일에서 금요일 정규 근무시간 동안, 날씨가 좋을 때에만 퇴거, 철거가 가능하며 임시적 혹은 영구적 재정착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등의 절차를 법률로 규정하고 있다.


주거권에 대한 외국의 사례와 정책을 조사하면서 떠오르는 광고 문구가 있었다. ‘저희가 찾은 답은 진심입니다’ 외국 정부와 우리 정부 사이 차이의 핵심은 바로 ‘진심’이었다. ‘보상’이 아닌 ‘보장’에 대한 진심. ‘개발 이익’이 아닌 ‘개발’에 대한 진심. 하지만 생각해 본다. 우리의 정부는 그 많은 사람이 죽어나가도 법원의 명령에 따랐으니 강제퇴거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세입자 보상을 피하기 위해 노후, 낙후 지역도 민간개발을 승인해 주는, 진심을 기대할 수 없는 정부가 아닌가. 이런 정부에 맞서 ‘진심의 대책’을 요구하고 있는 철거민들에게 이곳이 얼마나 ‘불편한 세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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