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국민법정 타이틀
제목 [나는 기소한다4] 국민법정은 용산참사 해결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번호 26 분류   조회/추천 2008  /  376
글쓴이 대책위    
작성일 2009년 10월 07일 15시 31분 39초

[나느 기소한다] 용산국민법정은 용산참사 해결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뉴스레터에 글을 쓰기로 했는데 어떤 글을 써야하나 고민하다가 용산이 아닌 다른 지역의 철거민분들 얘기와 용산참사가 그 분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그리고 용산 국민법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에 대해 인터뷰를 해 보았습니다.

 

인터뷰를 위해 만난 분들은 수원에 있는 이목동 철대위 분들. 첫 질문으로.

“지난 1월20일 용산참사가 터졌는데 이목동 철거민 분들은 그 것을 보고 어떤 심정이셨나요?”라는 질문을 드리면서 왠지 너무도 당연한 질문을 한 게 아닌가 했지만 위원장님께서는

 

“공권력의 과잉투입에 의한 그런 사태는 같은 철거민으로써 너무도 공감할 수 있는 사태죠. 우리도 철거과정에서 공권력에 의한 인권침해나 용역들의 난폭한 횡포가 있었기 때문에 언젠가는 이보다 더한, 용산참사 같은 그런 참사가 어디서건 일어날 거라고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죠. 아니 요즘 같은 세상이라면 일어날 수밖에 없었을 거에요.”라고 친절하게 답변을 해주시더라구요 그래서 긴장을 풀고 다음 질문들을 하나씩 물어보았습니다~

 

“용산참사가 터지고 나서야 용산이 언론에도 알려지면서 국민들도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는데 이목동 같은 경우 용산참사 전, 개발초기에 지역 신문들에도 가끔 나오기도 했었잖아요, 그때도 시민들의 관심이 있었나요?”

 

“용산참사 이전에는 대부분의 시민들이 철거민에 대해 올바른 인식을 가지고 있지 않았어요. 사실 그 동안 경찰이나 이런 데서도 철거민들을 그저 사회의 불안을 조성하는 사람들로만 매도하기 때문에 일반 시민들은 철거민이란 그런 단어가 나오면 괜히 이상한 쪽으로만 생각을 많이 했는데, 이번 용산참사로 인해 철거민들의 실상이 알려지고 또 언론이나 각종매체에서 보도하는 과정에서 많은 시민들이 철거민들의 실상을 조금씩 알게 됐을 거에요. 그 이전에는 단체에서 활동하는 시민들 말고는 대부분의 시민들이 모르거나 관심들이 없었죠.”

 

사실 글을 쓰고 있는 저도 용산참사 이후, 용산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점차 우리 지역에도 눈을 돌려 수원의 이목동, 권선동 가수용 단지, 신동재개발 예정지 등 우리 지역 내의 철거민 문제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그 이전에는 철거민이란 그저 생소한 단어 중의 하나였으니까요.

 

“그럼 용산참사 이후 철거민, 재개발 등에 대한 문제와 실상이 많은 시민들에게 알려지고 난 지금은 용산참사 이전에 비해 수원지역의 철거민이나 재개발 등에 관심을 가져 주는 시민들이나 시민들의 반응에 변화가 생겼음을 느끼나요?”

 

“지금은 조금씩이지만 시민들이 철거민들을 바라보는 시선과 생각이 많이 달라졌어요. 앞에 계신분도 이렇게 인터뷰하러 왔잖아요.”

 

“전에 제가 수원시청 앞에서 집회 하실 때 찾아갔었잖아요. 그때 시청 앞에서 집회를 하셔도 시청이나 경찰들이 신경을 안 쓰는 느낌을 받았는데요, 철거를 당하고 처음 투쟁을 시작할 때도 수원시나 경찰, 시행사 쪽에서 지금처럼 묵묵부답으로 아무런 신경도 안 썼나요?”

서민의 생존권이 위협받든 말든 입을 굳게 다문 수원시

“저희가 처음에 집회 할 때는 경찰에서 나오고 시에서도 나와서 많이 방해도 하고 탄압도 했죠. 한번은 시행사인 마니디엔씨 앞에 가서 기자회견을 하는데 길 건너에서 어떤 사람이 조그만 디카로 저희들 사진을 찍는 거에요. 그래서 어디서 나왔냐? 사진 찍은 거 지워 달라 했죠. 그런데 이 사람이 지우지도 않고 어디서 나왔는지도 안 밝히길래 시비가 붙었죠. 그러다 저희 중에 한명이 들고 있던 노란 서류봉투로 그 사람을 한 대 툭 쳤어요. 그러자 바로 옆에 있던 경찰관이 “저 아줌마 당장 현행범으로 체포해!” 이러는 거예요,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사람이 K신문의 기자였는데 그 신문사하고 마니디엔씨하고 같은 계열사더라구요. 그래서 그 신문에서는 조중동같은 보수언론처럼 저희의 실상보다는 왜곡된 기사만 주로 안 좋게 내보냈고요. 그리고 어느 날 용역이 철거한다며 새벽에 들어와서는 냉장고며, 가구들이며 다 끄집어내는 거예요. 그래서 내일 장사하려고 준비해뒀던 반찬들까지 다 꺼내길래 놔두라고 반찬은 우리가 가져다가 먹을 테니 그냥 놔두라고 했는데도 그 반찬통을 다 꺼내서 열고 쏟아버리고 그랬어요. 노인네들은 그냥 들어서 내던져버리고. 그래서 거기 주변에 있던 기자와 경찰들한테 저 사람들 좀 말려 달라고 울며불며 소리치고 애걸했어요. 근데 기자와 경찰들은 그냥 서서 비웃기만 하지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았어요, 세상에 언론에서만 봤지 내가 그런 일을 당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어요. 그 외에도 저희가 집회나 기자회견 농성을 할 때면 시, 경찰, 시행사, 언론 등에서 계속 방해와 탄압을 하는 거예요. 그때 주거침입, 폭행, 등등으로 아직까지 소송에 휘말리고 있어요. 지금은 그런 게 거의 없고 이렇게 집회를 해도 경찰도 안 나오고 시청에서도 신경도 안 쓰는 거 같아요.“라고 답변해 주시던 한 철거민께서는 그때 일이 생각났는지 잠시 울컥 하시면서도 얘기를 계속 이어주셨습니다. 하지만, 얘기를 듣는 내내 용산역으로 행진할 때 유가족을 막아서고 영정을 부수는 경찰의 인간답지도 않은 만행이 자꾸만 떠오르더라구요. 돈이나 명령 앞에서는 인간적인 면모를 다 버려야 하는 게 이 자본주의에서 살아가야 하는 삶의 방식인 건지 참으로 답답할 따름입니다.

 

“그럼 혹시 용산참사 이후 수원시청이나 시행사 쪽에서 주거문제나 보상 관련해서 이전과는 다른 태도를 보인 점도 없었나요?”

 

“아직까지도 수원시청이나 시행사 같은데서 크게 자신들의 입장 변화가 없어요. 그리고 지금은 시공사였던 현진건설이 부도가 나서 개발 사업이 완전 중단된 상태에요. 오히려 이런 상태가 저희에게는 더 암담하죠. 앞날이 어떻게 될지 더욱 모르니까요.”

 

“요새는 시청 앞에서 집회를 안 하시던데요? 혹시 시청이나 경찰서에서 무슨 방해 공작을 하나요?”

 

“수원시청 앞에 지금은 망포동 주민대책위에서 10월 9일까지 집회신고를 해놨어요. 매일 저희만 할 수도 있지만 다른 시민들이 집회를 해야 할 때는 저희도 그분들이 집회를 할 수 있게 해야죠.”

 

요즘 수원 망포동에는 송전탑이 들어올 거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곳 주민들이 수원시청 앞에서 집회신고를 냈지만 집회는 하지 않더라구요. 저는 용산국민법정을 목전에 두고 국민법정에 대한 시민들의 참여와 관심이 높아지자 수원시가 고의적으로 집회를 방해하려 망포동 주민들로 하여금 유령집회를 신고하게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습니다만, 다행이 그런 것은 아니라고 하시네요. 처음에는 시에서 치사하게 자기네가 유령집회를 신고해놓고 방해를 하는 줄 알았죠~..^^a

 

“이제 10월 18일이면 용산국민법정이 열리는데, 국민법정의 진행이나 내용이 단순히 용산뿐 아니라 우리 사회의 많은 철거민과 재개발정책에 영향을 줄 거라 생각되는데요, 혹시 이목동 분들은 이 국민법정으로 인해 변화되거나 혹은 바라는 희망 같은 게 있으세요?”

 

“용산참사 이후로 지금까지 보수언론에서는 진실은 감추고 자꾸만 왜곡된 기사를 내보내잖아요. 사실 (국민법정이 법적으로는 효력이 없다고 하지만) 국민법정에서도 공정하고 엄정한 진행으로 진실이 판가름 나서 억울하게 돌아가신 분들의 명예가 조금이라도 회복되었으면 하고요, 그 후에 전국적인 철거민들에 대해서는 정부차원에서 철거민들의 주거생존권을 위한 현실적인 대책이 제도적으로 만들어지는 거, 그래서 많은 철거민들이 다시금 가족들과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가서 자기 생업에도 종사하는 거, 그리고 우리가 받았던 연대동지들의 힘을 계속 투쟁을 하고 있는 다른 철거민 동지들에게도 나눠주고 싶은 거, 이게 아마도 저희뿐 아니라 모든 투쟁하시는 철거민들의 희망과 바람이 아닐까 싶어요.”

 

98년도에 처음 돈 7만원과 옷가방 하나들고 수원에 올라와서 주유소숙소, 대학교동아리방, 야학 선생님 집을 전전하다 1년여 만에 친구와 함께 50만원씩 보태서 월20만원의 월셋방을 구했습니다. 진짜 처음 한 달여 동안은 내 집이라도 장만한 것 마냥 들뜬 기분이었습니다. 하지만 도시가스가 들어오네, 이래저래 하면서 월세가 점점 올라갔고 결국엔 이사를 하게 됐습니다. 이사를 하면서 점점 맘 편한 내 집, 내 보금자리에 대한 욕심이 생기더라구요. 그렇게 10여년이 지나서 작년에 주택공사에서 하는 보증금 160만원에 월세 4만4천원의 임대 주택에 들어왔습니다. 완전한 내 집은 아니지만 앞으로 10년간은 이사걱정 월세걱정 없이 맘 편히 등 좀 누이겠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올해 1월 20일 용산참사를 접했습니다. 철거민이라는 단어는 간혹 듣기만 했을 뿐 관심조차 없었습니다. 솔직히 저는 용산 참사 이전에는 주거문제나 주택난 등은 전부 주택공급의 문제로만 생각하고 재개발을 적극 지지하는 편이었습니다. 하지만 용산참사를 접하고 나서야 주거문제가 생존과 직결된 문제라는 걸 알았습니다. 누군가들의 이익을 위해서는 다른 누군가들의 삶이 파괴되고 짓밟힌다는 것을요. 지금 내가 사는 이곳도 내일 당장 재개발 소리가 나올 수 있고 나나 내 이웃의 누군가도 철거민이 될 수도 있는 사실을요. 용산국민법정은 용산참사 해결이 아닌 나, 내 가족, 국민모두의 생존권을 향한 하나의 힘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수원시를 비롯해서 각 시도구청 앞에는 위에 사진처럼 더불어 사네, 어쩌네 등등 허울 좋은 미사여구로 치장되어 있지만 과연 누가 누구와 더불어 산다는 건지 참으로 의심스러울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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