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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두리번두리번 5-2]누구를 위한 정비인지 분명히 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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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준비위    
작성일 2009년 10월 14일 17시 42분 53초

누구를 위한 정비인지 분명히 해야

- 도시재개발사업의 성격과 문제점

 

홍인옥(한국도시연구소 연구원)

 

 

들어가며

 

1980년대와 90년대 원주민에 대한 ‘대책 없는 폭력적 강제철거’로 대표되던 노후·불량주택 재개발사업은, 그 동안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듭하면서 법적, 제도적 보완이 이루어지고, 또한 정비에 대한 인식이 바뀌면서 과거에 비해 제반 여건이 개선된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그간의 제도 개선작업은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는 갈등요인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으며, 내용면에서도 갈등 당사자 어느 쪽도 만족하지 못하는 미봉책인 경우가 많았다. 사업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검토보다는 주요 갈등요인에 대한 불충분한 보완을 통해 사업이 이어지면서, 재개발사업은 점점 공공성을 상실한 채 수익사업으로 변질되었으며, 가능한 많은 수익의 확보가 관련 주체들의 최대 관심사가 되어 버렸다.

더구나 가능한 빨리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반대하는 주민들과의 충분한 협의과정은 사실상 생략한 채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이로 인해 사업에 반대하거나 합의하지 않는 주민들의 강한 반대에 부딪히고 있으며, 사업 추진과정에서 강제퇴거 및 철거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사실 강제퇴거와 철거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여전히 사업현장 곳곳에서는 강제퇴거와 철거가 이루어지고 있다. 더구나 재개발사업에서의 강제퇴거와 철거가 기본적인 인권과 안전문제는 물론 법이 정하고 있는 최소한의 규정도 제대로 지키지 않은 채 재개발사업지구 곳곳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결국 우리나라 재개발사업은 그 동안의 지속적인 제도개선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누구를 위한 정비’인지를 분명하게 파악할 없는 근본적인 문제를 안고 있으며, 지금도 재개발사업이 진행되고 있는 지역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크고 작은 갈등들이 발생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용산참사는 그 동안 우리가 묵인하고 방치하였던 재개발사업의 누적된 문제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이라고 하겠다. 여기서는 우리나라 재개발사업이 어떤 문제점을 안고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우리나라 도시재개발사업의 성격

 

원래 도시재개발은 기존 주거지의 물리적?사회적 환경을 개량하거나 보수하여 그 기능을 유지하고 나아가 더 향상된 상태로 개선하는 것으로, 주민들의 삶의 질을 개선하고, 생활의 불편을 해소하기 위하여 생활환경을 개선하고 정비하는 일련의 활동을 말한다. 즉 해당지역 주민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동시에 지역사회의 발전을 도모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런데 그 동안 우리나라 재개발사업은 노후불량주거지를 고층?고밀개발하여 가능한 많은 수의 주택과 공간을 공급하는 방안으로 활용되어왔다. 물론 주택수를 기준으로 볼 때 재개발사업은 상당한 주택공급 효과를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1989년부터 2007년까지 18년간 전국적으로 주택재개발사업을 통해 공급된 주택수는 318,604호에 이르는데, 이는 분당, 일산, 평촌, 산본, 중동 등 5대 신도시에서 공급된 주택수 292,000호보다 많은 규모이다. 그런데 이는 주택수를 기준으로 한 것이며, 실제 거주세대수를 기준으로 할 경우 재개발사업을 통해 늘어나는 세대수는 크게 줄어든다. 이 같은 사실은 뉴타운사업에서 잘 나타나고 있는데, 서울시 주거환경개선정책 자문위원회 발표자료에 의하면, 2006~2010년까지 멸실되는 주택수는 136,346호인 반면, 뉴타운사업을 통해 공급될 주택수는 67,134호에 불과하여 멸실되는 주택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재개발사업을 통해 철거된 주택들은 대부분 저소득층의 소형?저렴주택들인데 비해 신규 공급되는 주택은 중산층을 대상으로한 분양주택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정비사업으로 인해 저소득층의 주택난은 오히려 심화되고 있다. 이처럼 재개발사업으로 전반적인 주거사정은 개선되는 듯하나, 저소득층의 생활 근거지는 점점 줄어들면서 주거사정이 더 악화되는 결과를 낳고 있다.

한편 정비사업에는 토지 및 건물소유자, 임차인, 시행 및 시공사 그리고 행정 등 서로 다른 목적을 갖고 있는 다양한 주체들이 관련되어 있다. 우리나라 재개발사업은 토지 및 건물소유자가 조합을 구성하여 건설업체를 선정하고, 조합이 토지를 제공하면 건설업체는 자금과 시공을 담당하고 행정은 이를 전체적으로 관리하는 방식으로 정비가 이루어져왔다. 달리 말하면 조합과 건설업체가 개발이익을 전제로 사업을 추진하고, 행정은 각종 규제를 완화하여 별도의 재정 지원 없이도 사업이 추진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지원해왔다. 이로 인해 재개발사업에서는 개발이익을 두고 조합 내부, 조합과 임차인, 또한 조합과 시공업체 사이에 다양한 갈등이 발생하고 있다.

 

우리나라 도시재개발사업의 문제점

 

□ 사업원칙 및 기준의 부재

재개발사업이 제대로 추진되기 위해서는 원칙과 기준에 근거하여 합리적 절차에 따라 사업이 진행되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30년 이상 재개발사업이 추진되어왔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적으로 합의된 정비원칙과 기준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 물론 물리적 환경개선을 통한 삶의 질 향상이라는 선언적인 사업목표는 있으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정비원칙과 기준에 대해서는 합의된 것이 없으며, 논의된 적조차 없는 실정이다. 가능한 적은 비용으로 빠른 시간 내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각종 편법을 동원하였으며, 그나마 개별 지구단위에서 관련 주체들간에 합의된 원칙조차 제대로 지켜지지 않은 경우가 다반사였다. 예외와 편법, 그리고 비공식적 거래 등은 당장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될지 모르나, 결국 사업 자체를 왜곡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그러므로 관련 주체들 간의 충분한 사전 논의와 협의를 거쳐 원칙과 기준을 설정해야 하며, 합의된 사항에 대해서는 어떤 경우라도 지켜나가야 할 것이다.

 

□ 계획단계 주민의견 수렴장치의 부재

현재 재개발사업은 10년 단위 정비기본계획을 근간으로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정비기본계획은 향후 10년간 정비대상지역을 정하고 정비방향을 제시하는 중요한 작업으로, 정비사업을 추진하는 큰 그림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기본계획 수립단계에서 철저한 현장조사와 주민의견에 대한 확인 작업이 이루어져야 하고, 또한 주민의견이 실제 계획에 반영되어야 하는데, 지금은 이러한 과정이 사실상 생략된 채 계획이 수립되고 있다. 기본계획이 단순한 계획에 그치지 않고 주민들의 의사를 반영하여 실제 사업과 연계될 수 있도록 계획수립과정이 달라져야 한다. 계획단계뿐만 아니라 집행과정에서도 실제로 주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방안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이다. 그나마 정해진 주민동의 및 참여사항도 형식적인 절차에 불과한 것이 많다. 따라서 사업추진단계별로 주민들의 실질적인 참여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만드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 불투명한 조합운영 및 전문성 부재

재개발사업은 지구 내 토지 및 건물소유자로 구성된 조합이 추진하는 사업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조합원은 사업내용에 대해 정확하게 알지 못하고 있고 조합집행부가 사업을 주도하고 있다. 문제는 조합집행부 역시 사업에 대한 전문성이 부족한 경우가 많은데다 투명하지 않은 조합운영과 권위적 태도 등은 조합 내부의 잠재적 갈등요인이 되고 있다. 실제로 많은 재개발지구에서 조합원간의 갈등이 발생하고 있고 일부 지구는 심각한 대립양상을 보이기도 하였다. 조합내부의 갈등은 근본적으로 경제적 요인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지만, 개인적 성향, 가치관, 사업추진 주체들의 태도나 운영방식 등도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따라서 재개발사업이 제대로 추진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조합이 전문성을 갖고 투명하게 사업을 추진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가 보완되어야 할 것이다.

 

□ 미흡한 주거대책으로 인한 지역사회 와해

현재 재개발사업은 전면철거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때문에 재개발사업이 진행되면 해당지역은 사실상 모든 사람들이 떠나게 되어 상주인구가 급격하게 줄어들게 되는데, 이로 인해 해당지역은 물론이고 인근 지역도 영향을 받고 있다. 철거에서부터 완공에 이르기까지 상당한 기간이 소요되는 정비과정 동안 이전에 형성되어 있던 지역사회가 사실상 와해되고 있고, 이것이 결국 지역주민들이 대체되는 결과로 이어지게 된다. 따라서 재개발사업이 지금처럼 기존 지역사회를 와해하고 중산층 주거지역으로 대체되지 않기 위해서는 주민들의 지속가능한 주거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순환재개발이나 수복형 재개발 등 사업방식이 다양해져야 하며, 주민의 여건에 맞는 주거대책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 세입자의 배제

현재 도시재개발사업이 주민주도로 추진되고 있다고 하지만, 실상은 몇몇 토지 및 건물소유자들이 주도하고 있고, 대부분의 주민들은 사업에 거의 참여하지 않고 있다. 특히 주택 및 상가 등의 세입자는 정비지역에서 생활을 꾸려가고 있으나, 사실상 사업추진 과정에 참여할 수 없는 재개발사업의 배제 집단이라고 할 수 있다. 사업절차상으로도 계획수립과 집행과정에 이들이 참여할 수 있는 방안이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으며, 정해진 주민동의와 참여의 절차도 형식적인 것에 그치는 경우가 많은 실정이다. 더구나 사업성을 높이기 위해 일부 주택소유자는 관리처분 전에 임대차계약 연장을 거부하고 있고, 세입자 대책문제로 갈등을 겪는 재개발지역에서는 한집에서 가족같이 지내던 가옥주와 세입자가 적대적 관계로 바뀌기도 한다. 최근에는 공공임대주택 입주권과 주거대책비를 모두 제공토록 바뀐 세입자 대책을 제대로 시행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 갈등 중재 장치의 부재

우리나라 도시재개발사업은 그 어떤 도시정책보다 많은 갈등을 겪었으며, 지금도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다양한 이해관계를 지닌 집단들이 추진하는 사업이기에 재개발사업에서의 갈등은 불가피한 면이 없지 않다. 문제는 동일한 사안의 갈등이 반복되고 있음에도 갈등해소를 위한 제도적 장치들이 마련되지 않은 채 해당지구나 개별 주체에게 맡겨져 있다는 사실이다. 현재 재개발사업은 갈등해소를 위한 사전·사후장치가 전무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갈등과 관련한 제도적 장치가 미비하다. 더구나 해당 지자체의 경우 갈등발생시 적극적인 행정행위에 나서지 않고 있다. 이는 갈등을 방치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고 공공성 실현이라는 재개발사업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따라서 해당 지자체의 역할이 강화되어야 하며, 갈등과정에도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적절한 합의를 도출하는 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갈등의 원인을 제도적인 성격에서 찾아볼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정보부족, 제도에 대한 이해부족에서 기인하며 한편으로는 민주적이고 투명한 합의 절차가 개인적인 감정싸움으로 충분히 담보되지 못하는 것에도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따라서 제도로 해결하기 어려운 당사자들간의 역학관계나 협의능력을 보정 할 수 있는 직접적인 개입수단이 요구된다고 하겠다.

 

□ 강제퇴거 및 철거과정의 문제

재개발사업 추진과정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바로 강제퇴거 및 철거의 문제이다. 사업추진 과정에서 퇴거나 철거가 불가피한 경우 반드시 충분한 협의 및 사전고지가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협의가 충분하게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며, 강제퇴거 및 철거에 대한 사전고지 절차가 생략된 채 느닷없이 명도집행이 이루어지고 있다. 철거과정에서 물리적 충돌은 물론이고 심지어 단전, 단수를 통해 주민들에게 압력을 가하는 등 퇴거 및 철거과정에서 각종 주거권 침해행위들이 발생하고 있다. 이처럼 우리나라는 강제퇴거 및 철거기준이 엄격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나마 정해진 기준도 집행과정에서 제대로 지켜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때문에 강제 퇴거 및 철거과정에서 심각한 인권침해가 발생하고 있다. 하루속히 국제기준에 부합하게 강제퇴거 시 관할 관청, 경찰 등 공공기관이 준수해야 할 인권기준을 지침화하고 그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 또한 철거용역의 불법, 폭력행위를 근절하기 위해 경비업무 본연의 업무에 한정하도록 관할 경찰서장의 책임을 강화하고 이들에 대한 상급단체, 국회의 감시기능도 강화되어야 할 것이다.

 

맺음말

 

도시재개발사업의 목표는 “쾌적한 도시환경 및 살기 좋은 주거지를 조성하여 공공복리의 증진에 기여하는 것”이다. 재개발사업을 통해 조성하려고 하는 ‘살기 좋은 주거지’는 과연 어떤 곳일까? 우뚝우뚝 솟은 고층 아파트에 말끔하게 포장된 도로, 적당한 놀이터와 공원, 각종 편익시설이 건설되어 있다는 것만으로 살기 좋은 주거지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물론 쾌적하고 편리한 물리적 환경은 그 자체가 살기 좋은 주거지의 중요한 요소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주민들의 생활형편이나 요구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은 채 주택과 건물만 근사해졌다고 이곳을 살기 좋은 주거지라 하기는 어렵다. 도시재개발을 통해 살기 좋은 주거지를 만들기 위해서는 다음 사항들에 주목해야 한다. 첫째는 주민들이 원하는 정비를 해야 한다는 점이다. 재개발사업은 사람들이 생활하고 있는 곳을 대상하기 때문에 정비의 내용이나 방식은 무엇보다 살고 있는 사람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두 번째는 주변지역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내 집이나 우리 동네만이 잘사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잘 살아야만 진정한 살기 좋은 주거지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세 번째는 물리적 환경만이 아니라 가능한 사회·경제적 환경이 개선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말하자면 도시재개발사업을 통해 잘 살 수 있는 꺼리도 마련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업추진과정에서의 강제퇴거와 철거는 불가피한 경우에 한해 최소한도로 이루어져야 하고, 실제 집행과정에서는 기본적인 인권과 안전문제가 보장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가 강화되어야 한다.

 

 

 

 

* 이 글은 <공동선> 3/4월호에 실렸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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