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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특집 5]남아프리카공화국 헌법재판소 판례 소개
번호 41 분류   조회/추천 2313  /  362
글쓴이 준비위    
작성일 2009년 10월 14일 18시 32분 39초

[특집] 남아프리카공화국 헌법재판소 판례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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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소, 연정(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 

 

 

 

‘적절한 주거에 접근할 권리’를 지키고자 하는 것은 우리가 인간을 존중하며 그/녀들에게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들이 주어지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그 사회가 인간존엄성과 자유와 평등에 기초한 사회라면, 생활에 필수적인 것들이 모두에게 제공되는 사회를 추구해야 한다. 권리 실현에 목표를 둔 조치들은 가장 긴급한 요구를 가진 이들과 권리를 향유할 능력이 위기에 처한 사람들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만약 그 조치들이 통계적으로 성공적이라고 해도 절망에 빠진 사람들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한다면, 그 조치들은 합리성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할 것이다.

 

200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헌법재판소가 작성한 판결문의 일부이다. 해당 사건은 대략 이렇다. 그루트붐(Grootboom)을 비롯한 사람들이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월러시딘(Wallacedene)이란 곳에서 불법적으로 점유한 땅 위에 집을 짓고 살고 있었다. 그/녀들의 집은 전기, 상하수도 시설 등이 너무 열악해서 살기가 힘들었다. 어느 날 그/녀들은 저가 주택 전설 예정지로 지정된 사유지에 들어가 집을 지었다. 그러자 땅 주인은 퇴거 결정을 받아 그/녀들의 집을 파괴했다. 절망에 빠진 그루트붐과 그녀의 친구들은 남아프리카공화국 헌법 26조를 근거로 그/녀들이 영구적인 주거를 얻을 때까지 국가가 기본적인 주거시설을 제공해야 한다면서 소송을 제기했다. 고등법원은 중앙정부와 주정부 등 해당 지방자치체에 아이들과 부모들에게 적절한 주거환경을 제공해 줄 것을 명령하였다. 그리고 정부는 법정에서 그/녀들이 처한 주거위기 상황을 개선시켜 주겠다고 했고, 그/녀들은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정부는 4달이 지나도록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그/녀들은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냈다. 2000년 9월의 일이다.

 

그로부터 한 달 뒤 헌법재판소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그/그녀들이 살고 있는) 지역에서 채택하고 실시한 주거 프로그램은 빈곤한 사람들이 적절한 주거에 접근하는데 필요한 어떤 원조도 제공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헌법 26조 2항이 부과한 국가의 의무를 위반했다."

 

그리고 이렇게 명령했다.

 

"결론에 비추어볼 때 선언적인 명령을 내리는 것이 필요하고 적절할 것이다. 국가에게 헌법26조2항이 부과한 의무에 부합하는 조치를 취할 것을 명한다. 이는 빈곤한 사람들에게 원조를 제공하는 조치들을 마련하고, 재정을 투입하고, 이행하고 감독할 의무를 포함한다."

 

또한 헌법재판소는 남아공 인권위원회에게 정부가 이 명령을 얼마나 잘 이행하는지는 모니터하고 필요한 경우 보고하도록 했다. 이 헌재 결정 이후 남아공의 대부분 지자체가 가난한 사람들의 주거 요구에 대처하기 위해 ‘그루트붐(Grootboom) 할당액’을 예산에 정하는 등의 변화가 있었다. 또한 이 판례는 사회권 침해 사건이 법적 판단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고, 사회권에 대한 법적 권리 주장에 많은 영감을 주었다.

 

이러한 판결의 바탕에는 주거권에 자리를 마련해준 남아공의 헌법이 있다. 남아공 헌법 26조엔 무슨 내용이 담겨있을까?

 

26조

(1) 모든 이는 적절한 주거에 접근할 권리를 가진다.

(2) 국가는 가용자원을 한도 내에서 이 권리의 점진적인 실현을 위해 입법 및 기타 합리적 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

(3) 아무도 법원이 모든 상황을 고려한 후에 내리는 명령이 없이는 그들의 집에서 쫓겨 날 수 없고, 그들의 집이 파괴되어서는 안 된다. 어떤 법도 자의적인 퇴거조치를 허용해서 는 안 된다.

 

이 조항에 기대어 남아공 헌법재판소는 주거와 관련된 모든 국가행위가 어떤 요건을 충족해야 하는지에 대해 써 내려갔다.

 

"이 사건은 이 나라에 살고 있는 수십만 명의 절망을 보여준다. 헌법은 이러한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할 의무를 국가에게 주었다. 그 의무는 스스로 부양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주거와 의료, 충분한 음식과 물, 그리고 사회보장에 대한 접근을 제공하는 것이다. 또한 국가는 평등에 기초해 모든 시민이 땅에 접근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 빈곤에 처한 사람들은 국가가 이러한 일을 하도록 요구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주거 정책이 다양한 층위의 국가기관의 행위로 결정됨을 인정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앙정부의 책임을 특히 강조했다.

 

"국가 주거 정책은 협의 관계에 있는 세 층위의 정부(중앙, 주, 시)에 의해 결정된다. 각각의 정부는 정책의 특정 부분을 이행할 책임을 지지만, 중앙 정부는 법?정책?프로그램?전략이 헌법 26조의 의무에 부합하도록 보장할 책임이 있다. ...중앙 정부는 국가 세입을 평등에 기초해 지방정부에 배분해야 하는 중요한 책임을 지고 있다.

 

국가는 이용 가능한 수단 내에서 적절한 주거 접근권의 점진적인 실현을 향해 일관된 공공 주거 프로그램을 수립해야 한다. 행정부와 입법부는 채택한 조치들이 합리적이도록 보장할 의무가 있다. 단지 법률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국가는 의도된 결과를 성취하기 위해 행동할 의무를 진다. 그리고 입법조치는 행정부의 적절한 정책과 프로그램으로 반드시 지원되어야 한다. 이 정책과 프로그램들은 구상과 이행에 있어서 합리적이어야 한다. 합리적으로 이행되지 않는 합리적인 프로그램은 국가의 의무에 합치될 수 없다. 일련의 조치가 합리적인지 아닌지를 결정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사회경제적, 역사적 맥락에서 주거 문제를 고려해야 하며, 이행책임을 진 기관의 능력을 고려해야 한다."

 

헌법재판소는 헌법 26조2항의 ‘점진적인 실현’이란 문구가 국가에게 언제까지나 의무이행을 유보시킬 권한을 준 것으로 해석하면 안된다고 보았다.

 

"<점진적인 실현>이란 문구는 권리가 즉각적으로 실현될 수 없음이 고려된 것이다. 그러나 헌법의 목표는 우리 사회의 모든 이의 기본적인 요구가 효과적으로 충족되는 것이고 점진적인 실현은 국가가 이 목표를 성취할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접근가능성이 점진적으로 촉진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법적, 행정적, 재정적 장애물이 검토되어 야 하고 갈수록 줄어들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사회권을 인권으로 국가에게 요구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 아직 의심을 품을지도 모를 그대에게 남아공 헌재의 이 말이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

 

"우리 헌법은 시민정치적 권리와 경제사회적 권리를 품고 있다. 모든 권리는 상호 연관되어 있고 상호 보조한다. 의식주가 보장되지 않는 상태에서는 인간 존엄성과 자유와 평등을 누릴 수 없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모든 이에게 사회권이 주어질 때 비로소 그/녀들이 헌법의 다른 권리들을 향유할 수 있게 된다. 이 권리의 실현은 또한 인종과 젠더 평등의 진전과 그리고 남성과 여성이 동등하게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회의 진보의 핵심이다.

 

적절한 주거에 대한 접근권은 따로 분리해서 볼 수 없다. 이 권리와 다른 사회경제적 권리는 서로 밀접한 관계가 있다. 사회경제적 권리는 총체적으로 함께 이해되어야 한다. 국가는 빈곤, 홈리스, 혹은 비참한 주거 상황에 처한 사람들의 요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적극적인 조치를 취할 의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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