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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용산국민법정 마무리호]용산국민법정에 다녀와서-배심원 참가기
번호 52 분류   조회/추천 2000  /  301
글쓴이 준비위    
작성일 2009년 10월 23일 16시 07분 20초

용산국민법정에 다녀와서

_ 우리 사회는 제대로 배치되어 있는가?

 

 

- 계영(용산 국민법정 배심원)

세상은 정의의 편이 아니다. 아니, ‘힘 없는 자들의 정의’의 편이 아니다. 이 사실을 모르고 평생 살 수 있는 소수 특권층은 행운인지 모르지만, 대부분은 그렇게 살 수 없는 사람들이다. 살던 곳, 장사하던 곳에서 나가라는 통보를 받기도 하고, 저항하면 ‘정당한 공권력 행사’에 의해 목숨까지 빼앗길 수 있고, 노숙을 하다 먹고 살려고 철거 용역으로 동원되기도 하고, 전의경으로 시위 진압에도 차출된다. 이런 사실을 모르고 평생 살 수 있는 사람이라면 사실은 행운이 아니라 이렇게 사는 사람들이 있기에 유지되는 구조에 기대어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 구조를 뻔히 알면서도 자신이 가진 것마저 양보해야 할까 두려워 모른척하기도 하고, 심지어 그것을 더욱 단단히 만들며 자신의 입지를 굳히기도 한다.

 

왜 한쪽은 삶의 터전을 잃고 또는 삶 자체마저 잃고 쫓겨 나가야 하고, 한쪽은 그것으로 이윤을 극대화하는가? 이 ‘식상해 보일’ 정도인 그러나 좀처럼 당하는 입장에서는 익숙해질 수 없는 구조의 부조리에 비애를 느끼고, 이번 용산국민법정의 취지를 지지하는 한 사람으로서, 그러나 과연 국민참여재판이라는 것도 낯설고 법은 더더욱 잘 모르는 내가 배심원에 신청할 자격이 있을지를 한동안 고민했다. 법정이라는 한정된 방식 안에서, 기존의 강력한 법제도가 있고 나의 얕은 배경지식이 있을 때, 혼란에만 빠지지 않을까? 그러나 50명이나 공개추첨으로 선정되고(법정 당일에 가서 받은 교육에서 들으니 통상 국민참여재판의 배심원은 7~9명 정도라고 한다. 법정영화와는 다른 것 같다) 현장에서 충분히 갑론을박이 벌어진 후에 논의를 거쳐 한다니 용기를 내어 신청을 했고 운 좋게도 진짜로 추첨이 되었다.

 

재판 절차와 평의 과정 등에 관하여 30분 정도의 배심원 교육을 받고 나니 책임감이 더 생겼다. 평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외부와의 연락을 일절 끊고, 왔다 갔다 하다가 일어날 수 있는 문제의 소지를 줄이기 위해 화장실마저도 스태프 분들을 따라 함께 이동하며 다닐 때에는 이렇게까지 인신 구속(?)을 받아야 하나 싶을 정도였다(흡연자, 그리고 휠체어와 활동보조인의 도움을 받는 경우 더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휴대폰 등까지 철저히 반납하고 임한다고 하고, 나중에 생각해 보니 실제 법정에서는 아마 내부 관계자용 화장실 등을 따로 마련해두지 않을까 싶었다. 국민법정은 순전히 자발적인 참여들로 이루어지므로 자원이 부족할 수밖에 없어서 화장실이나 이동에서는 불편을 감수해야 했던 것으로 짐작되는데, 이런 것이 국민참여재판인가 하는 신선한 경험이기도 했다.

 

피고 자리에는 원래 있어야 할 피고들 - 천성관 전 서울지방검찰청장, 오세훈 서울시장, 이명박 대통령, 박장규 현 용산구청장, 조합, 건설사, 용역업체 - 이 앉아 있었다. 실제로 출석한 사람들은 없지만 그들을 대리하고 변호한 두 분은 냉철하게 ‘당시의 실정법에 따른 적법한 공무 수행’ ‘고의성 없음’을 통한 무죄를 주장하느라 조목조목 근거를 들었다. 어찌나 변론이 논리적인지 실제 재판정에서 배워가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실제 재판정은 그 정도의 논리성이 요구될 일이 없을 만큼 배치가 다르지만). 얄밉다는 반응이나 객석의 야유도 있었지만 역시 법률가라면 저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연쇄살인범이라 해도 변호 받을 권리는 있는 것이고, 예수 처형 등 온갖 군중재판으로 이어질 수 있는 만장일치가 더 위험한 법이니까. 그러나 정말로 상당히 설득되어 고민에 빠져버린 나 자신을 보면서, 국민법정이 그렇게 단순한 ‘안티 법정’으로 전락하지 않을까 한 내 염려가 기우이자 오만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예정된 일곱 시간을 훨씬 넘겨 진행된 진지하고 치열한 법정...... 오랜 시간 동안 마음대로 돌아다니지 못하고 그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자리를 꼿꼿이 지키며 긴장하고 집중했다. 상복을 입은 유족들은 어떨 것이며 그날 그 상황에서 돌아가신 분들은 어땠을까.

 

시위의 강제/과잉 진압, 수사 과정의 증거 은폐, 그 이전의 폭력적 강제퇴거 절차와 재개발. 이 세 가지가 이야기되었다. 용역들이 건물에 들어가 폐타이어에 불을 붙여도 소방관은 ‘그들이 손을 쬐느라 불을 피운 것’이라며(공터도 아니고 실내에서?) 돌아가고 경찰도 묵인하고 오히려 그렇게 사람들을 너구리굴에 불 피우듯 하여 몰아간 뒤에 저항하는 이들에 대하여 용역들과 ‘함께 작전을 수행’했다(이런 장면들을 나열하자면 한도 끝도 없지만, 진실을 외면하고 피해자에게 죄를 뒤집어씌워 말도 안 되는 형을 구형한 사법부에 대한 기대는 얼마나 더 버려야 하는 걸까 싶다). 또 법정에서 얘기되기에는 낯설어 보일 만큼 대안적이고 근본적인 시도인 재개발 문제 증인신문 때는 단순한 고발과 상상에 그치지 않고, 한 분야를 깊게 연구해온 전문가의 담담하고 차분한 어조가 많은 청중에게 울림을 전했다.

 

아아, 그럼에도 우리의 언어는 얼마나 부족한가. 법정에 참여한 배심원으로서 내내 시달린 문제는 그것이었다. 아마도 국민법정을 처음 생각해내고 준비해온 분들은 더욱 치열하게 그 고민을 했으리라. 과잉진압과 편파 수사는 실정법상으로도 충분히 판단 가능하지만 실제 사회에서는 검찰을 포함한 사법부와 경찰이 정권의 눈치를 보고 있다는 현실. 그리고 나아가 실정법에서는 보장하지 않는(헌법과 각종 인권규약에서 선언했지만 지켜지지 않는) 실질적인 ‘주거권’과 대안적 재개발까지 이야기해야 하는데, ‘법정’이라는 마당과 유무죄 평결이라는 배심원의 역할은 새 판을 짜기에 기존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가 있었다.

 

그럼에도, 또는 그렇기에 더욱더, 배심원의 한 사람으로 나는 ‘법정’이 주는 위엄과 이분법 강요에 최대한 덜 눌리도록 주의하면서, 동시에 ‘당시의 실정법상......’이라는 말에, 함부로 ‘피고인’들에게 내 주관을 가지고 평결을 해버릴 수 없다는 강박을 가지고 임했다. 충분하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배심원 평의 때 오간 논의도 그랬다. ‘과연 이명박에게 “살인교사죄”로 기소한 것을 인정하고 유죄라 할 수 있는가?’ ‘조합, 용역업체, 건설자본에 “강제퇴거 유죄”로 판단할 수 있는가?’ 우리는 법적 절차에 관하여는 재판부의 조언을 요청해 가며 고민을 나눴다. 논의 중에 나온 의견들, 가령 노동쟁의의 경우에도 현장성과 직접성은 멀어진다 해도 ‘지도부’로 갈수록 책임을 많이 진다는 유추 등에 동의하여 나는 끝까지 망설였던 피고인 이명박에 대한 유무죄에서 판단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피라미드의 맨 꼭대기에 있을수록 직접 사람들에게 가한 죄는 희석되는 관료제의 특성상 결국 그에 대한 최종 평결은 가장 많이 엇갈리는 편인 결과가 나왔지만.

 

그러나 어떤 변론과 평결에서 본 것보다 소중한 국민법정의 힘은 그것이 진실이 이야기되는 자리였다는 것이다. 진실이 사람들 앞에 당당히 드러나기 위해서는 그럴 수 있는 배치가 되어야 하는데, 이 문제에 관하여, 그리고 아직까지 많은 문제에서, 제대로 된 배치가 이루어진 적이 없었다. 누가 기소를 하고, 누가 판단을 하며, 피고인석에는 누가 앉아야 하는가? 국민법정이 상징한 것은 용산 참사 해결 촉구와 현재 사법부에 대한 불신의 의미만이 아니었다. 진실 하나하나가 밥 한 톨만큼 소중한 것이라면 그게 놓인 자리가 밥그릇인지 진흙탕인지를 찾아 제자리에 놓는 일도 중요하다. 이번 국민법정은 적어도 밥 한 톨을 애초 있어야 할 곳에 놓은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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