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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책위상황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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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서신] 이명박 대통령에게 보내는 유가족들의 공개 서신

작성일
2009.04.23 14: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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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에게 보내는 유가족들의 공개 서신



철거 전까지 우리 집과 가게는 가족들의 웃음과 희망이 자라던 곳이었습니다. 세간 살이 하나 들여놓거나, 가족들이 함께 땀 흘려 가게를 차렸던 날 너무나 기뻐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하루하루 먹고 사는 일들이 힘들 때도 있었지만 아이들과 함께 화목하게 살아갈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행복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원하던 것은 단지 그런 평범한 일상이었습니다. 양주잔 부딪치고 골프채 휘두르며 떵떵거리며 살진 않더라도 하루하루 만족하며 열심히 살면 더 좋은 날들이 있을 거라 믿으면서 살았습니다.

 

그러던 우리가 지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재앙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소주잔에 하루벌이의 시름을 잊고 단칸방에서 살 부대끼면서도 단란하게 살던 우리 가정이 단 하룻밤 새 송두리째 뿌리 뽑혔습니다.

누구처럼 많은 것을 탐하던 것도 아니고, 단지 내 삶의 터전 지키려던 것이, 더 이상 발붙일 땅 한 뼘 없어 하늘로 쫓겨 올라간 것이 그만 마지막 길이 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우리는 아버지를 잃은 아이들의 얼굴을 보며 하루에도 몇 번씩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도 아들딸을 둔 아버지시니 그런 마음을 헤아릴 수 있지 않습니까. 대부분이 10대 청소년인 아이들이 상주가 되어 장례식장을 석 달 넘게 지키고 있습니다.

저녁에 집에 들어와 아들의 얼굴을 쳐다보며 5일 동안 엄마 잘 챙기고 있으라는 말을 남긴 아버지가 그렇게 먼 길을 갈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세상에서 처음 본 주검이 아버지의 불에 탄 시신이라는 끔찍한 현실을 우리 아이들은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고맙게도 아이들은 또래에 비해 어른스러웠습니다. 힘든 마음들을 감추며 오히려 엄마를 위로하고 꿋꿋이 자리를 지켜주는 게 대견스럽습니다.

하지만 대통령님, 그런 아이들을 바라보는 어미의 마음은 어떻겠습니까. 어린 나이에 너무 많은 짐을 지고 그 나이에 누려야 할 것들을 꾹꾹 누른 채 어른이 되어가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억장이 무너지는 것을 어찌합니까.


용산 4구역에서 벌어지는 용역 깡패의 패악질과 이를 비호하는 경찰을 볼 때마다 ‘과연 이곳이 21세기 대한민국이 맞나’라고 몇 번이나 의심했는지 모릅니다. 왜 우리 철거민들에게는 안전을 지켜주는 경찰도, 진실을 밝혀주는 언론도, 국민의 행복을 보장하는 정부도 없을까요.

그래서 망루에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단 하루 만에 싸늘한 주검이 되어 돌아오자 대통령이 처음 내뱉은 말이 무엇이었습니까. 법과 원칙대로 처리하라고요? 그대로 되묻겠습니다. 이 땅에 과연 법과 원칙이 존재하기라도 했던 것입니까? 밥 위에 군림하는 법은 더 이상 정의가 아니라 불의라고 들었습니다. 악법은 법이 아니라 악일 뿐이라는 말도 있답니다.

하물며 청와대 행정관에게 사건 덮으라며 이메일 보내라고 지시를 하다니요. 경찰과 검찰을 앞세워 고인들을 추모하는 국민들을 불법으로 매도하다니요.


가진 것 없는 저희들의 목소리가 너무 작아서인가요, 아니면 저희들의 목소리가 닿기에 청와대의 담장이 너무 높은 것인가요.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온 국민이 다 아는 진실을 왜 대통령만 나 몰라라 하고 있습니까.

다음 주면 100일입니다. 편히 눈감지 못한 영령들이 구천을 헤매고 있습니다.

다섯 명의 무고한 국민이 공권력에 의해 무참히 살해되었지만, 어찌하여 대통령은 한 마디 사과도 대책도 내 놓지 않을 수 있습니까. 이명박 대통령에게 가뭄에 굶주리는 백성을 위해 기우제를 지내던 옛 임금들의 선행을 바라는 것은 너무 지나친 욕심일까요.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저희 남편들이 당한 고통을 그대로 돌려주고라도 싶습니다. 대통령은 마음속에 칼을 품고 살아가는 저희들의 심경을 조금이라도 헤아리고 있습니까.

대통령이 국민을 져버리면 국민도 대통령을 져버립니다. 민심은 천심, 곧 하늘의 이치입니다.

오늘 청와대까지 올 수밖에 없었던 우리 유가족들의 심경을 조금이라도 헤아린다면, 지금 당장 진심으로 사죄하고 저희들의 요구를 수용하십시오.

그렇지 않는다면, 저희 유가족들은 이제 죽기 살기로 싸울 수밖에 없음을 알립니다. 대통령의 마지막 결단을 촉구합니다.



2009년 4월 23일

고 이상림의 처 전재숙, 고 윤용헌의 처 유영숙, 고 이성수의 처 권명숙,

고 한대성의 처 신숙자, 고 양회성의 처 김영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