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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두리번 두리번3-1] 에밀 졸라, 나는 고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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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준비위    
작성일 2009년 09월 30일 13시 31분 09초

[두리번 두리번3-1]      에밀 졸라, 나는 고발한다!

 

류은숙(인권연구소 창 활동가)

 

진실과 정의를 찾아

 

‘나는 고발한다!’ 제목만으로도 정말 화끈한 격문이라 느껴진다. 진실이 무시되고 공권력이 수치를 모르는 상황이 연출될 때마다 사람들은 찾는다. 어디 에밀 졸라의 ‘나는 고발한다!’같은 격문을 쓸 사람 없느냐고.

 

‘나는 고발한다!’가 나온 배경은 드레퓌스 사건이다. 이 사건은 1894년부터 12년간에 걸쳐 프랑스를 뒤흔들었다. 인종차별주의, 국가 안보를 빌미로 개인의 인권을 무시한 국가폭력, 대중을 호도하고 광기로 몰아간 무책임한 언론의 범죄가 좌우 대결의 소용돌이 속으로 프랑스를 몰아넣은 사건이다. 한 무고한 사람(드레퓌스)이 독일을 위해 스파이 활동을 했다는 반역죄를 뒤집어썼다. 공개적으로 군적 박탈을 당하고 머나먼 섬으로 유배됐다. 게다가 이 무고한 이는 유태인이었다. 반독일 정서의 민족주의와 반유태주의가 사건이 커진 배경이 됐다. 그런데 스파이 활동의 증거인 명세서의 작성자는 따로 있었다. 이를 발견한 양심적 인사들은 재심을 요구했다. 그러나 어이없게도 진짜 죄인은 만장일치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 혐오스런 재판결과에 분노한 당대의 지식인 에밀졸라가 사건에 뛰어들게 된다. 1898년 1월 13일 에밀 졸라는 프랑스 대통령에게 보내는 공개서한 ‘나는 고발한다!’를 발표하여 사건을 되살렸다. 드레퓌스는 재심을 받고 사면됐다. 그러나 사면이란 죄가 있음을 전제로 한 것이었다. 당국의 의도는 드레퓌스를 풀어줌으로써 사건을 마무리 짓고 공권력의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었다. 투쟁은 계속됐고 결말은 드레퓌스의 완전한 복권이었다. 이 과정에서 에밀 졸라는 명예 훼손과 경제적 손실을 감수해야 했다. 그뿐 만이 아니었다. 그의 글에 대해 당국이 취한 기소로 인한 재판과 망명 등 엄청난 시달림을 당했다. 그 결과 그는 자신이 말한 대로 “진실이 전진하고 있고, 아무것도 그 발걸음을 멈추게 하지 못하리라”의 증거가 됐다.(더 자세히 알고 싶은 분들은 [유기환 옮김.《에밀 졸라 나는 고발한다》책세상, 2005]를 참조하시길 바란다.)

 

사실, 오늘의 <인권문헌읽기>의 주인공은 에밀 졸라의 ‘나는 고발한다!’가 아니다. 오늘 문헌읽기의 주인공은 독자 여러분이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오늘 지금 여기서 필요한 ‘나는 고발한다’의 필자가 되어주시길 부탁드린다. 곧 추석이다. 추석 전 해결을 바란다는 용산참사의 유가족들과 철거민들, 관계자들의 바람과 달리 달은 너무 빨리 차오르고 당국의 외면은 냉담하기만 하다.

 

진실과 정의라는 말의 값어치를 찾기 위해 ‘용산국민법정’(mbout.jinbo.net/court)이 준비되고 있다.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이 기소인이자 증인이자 재판관이 되는 재판이다. 제일 먼저 해야 하는 중요한 일이 나 자신의 기소장을 쓰는 일이다. ‘나는 고발한다!’를 쓰자. 이 시대의 에밀 졸라가 되자. 아래는 에밀 졸라를 따라 써본 기소장이다.

 

 

 

<나의 기소장>

끝났습니다. 높이 받들던 가치도 인간으로서의 도리도 고개를 숙였습니다. 운동도 정치도 이론도 친밀감도 애정도 모두 매장도 못한 죽음 앞에 모였습니다. 계절이 바뀌어 한층 높아진 하늘 밑에서 우리 사회가 저지른 범죄가 너무 선명하기 때문입니다.

진실, 진실을 말하고 듣는 걸 제 눈으로 보고 싶습니다.

나는 고발합니다. 도시의 화려한 치장과 이윤을 위해 막개발로 삶의 터전을 빼앗은 자들을 고발합니다.

나는 고발합니다. 벼랑 끝에 선 철거민의 상황을 경찰 특공대의 살인진압 표적으로 삼은 경찰을 고발합니다.

나는 고발합니다. 공권력의 잘못은 따지지도 않고 아버지를 잃고 제 자신도 다친 철거민을 유죄로 기소한 검찰을 고발합니다. 공정한 재판을 위한 수사기록 제출도 거부하고 숨기는 검찰이기에 기소권을 독점할 권한은 그들에게 더 이상 없습니다.

나는 고발합니다. 뉴타운 꽃놀이를 위해 인간 청소를 하려 동원되는 용역깡패를 고발합니다. 돈더미 위에 눌러 붙는 똥파리 같은 용역깡패 뒤에 도사린 실체, 재개발 조합과 대기업 건설사들을 고발합니다.

나는 고발합니다. 정당화할 수 없는 공권력의 살인 앞에 사과 한마디 하지 않는 MB 정권의 끔찍한 실용주의를 고발합니다.

그리고 나는 고발합니다. ‘이제 고만하자, 할 만큼 하지 않았냐, 사는 게 다 그렇지, 더 가서 무슨 좋은 날을 보겠다고, 원래 힘없는 자가 당하는 거야’ 이런 체념을 고발합니다. 청약저축 붓고 퇴직금 부어 작은 보금자리, 작은 가게나마 마련하려는 꿈을 악몽으로 만드는 투기시장을 고발합니다. 그런 악랄한 시장에서 ‘나만은 괜찮을 거야’ 여기며 이웃과 손잡으려 하지 않는 우리의 착각을 고발합니다.

2009년 1월 20일에 벌어진 용산참사, ‘생명과 인권을 날려버린 그날의 화염을 잊지 말아야 한다’, 생각은 그리 했지만 딱히 어쩌지도 못하고 용산을 지날 때면 고개를 돌렸습니다. ‘딱히 뭘 할 수 있을까?’, 미안하고 안타까운 시간들이 흘렀습니다. 내가 잊지 않았듯이 당신도 잊지 않았음을 믿습니다. 우리의 믿음과 의지로 진실의 폭발을 만들어봅시다. 우리의 상식으로 재판을 해봅시다. 용산국민법정에서 말입니다. 나의 고발과 당신의 고발이 모여 진실이 이 사회를 후려친다면 우리는 막장으로 가는 사회를 멈출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경로를 바꿀 수 있을 겁니다. 이런 이유로 나는 이명박 대통령을 포함해 용산참사에 책임 있는 자들을 용산국민법정에 기소합니다. (류은숙 2009년 9월 23일 )

 

에밀 졸라, 나는 고발한다! (1898년 1월 13일)

끝났습니다. 프랑스의 얼굴에는 지울 수 없는 오점이 생겼고, ‘역사’는 당신이 대통령일 때 그런 사회적 범죄가 저질러졌다고 기록할 겁니다.

그들이 감히 그렇게 했기에, 저는 감히 이렇게 하겠습니다.

진실, 저는 진실을 말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정식으로 재판을 담당한 사법부가 만천하에 진실을 밝히지 않는다면 제가 진실을 밝히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입니다. 제 의무는 말을 하는 겁니다. 저는 역사의 공범자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만일 제가 공범자가 된다면, 앞으로 제가 보낼 밤들은 가장 잔혹한 고문으로 저지르지도 않은 죄를 속죄하고 있는 저 무고한 사람의 유령으로 가득한 밤이 될 겁니다.

피카르 중령은 양심적 인간으로서의 의무를 다했습니다. 그는 정의의 이름으로 상관들에게 건의했습니다. 심지어 그는 그들에게 간청했습니다. 그는 그들의 직무유기가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역설했습니다. 끔찍한 뇌우가 조금씩 힘을 축적하고 있거니와, 진실이 세상에 알려질 때 그것은 엄청난 폭발력으로 온 세상을 강타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우리는 비열한 광경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빚더미와 죄악으로 얼룩진 자들은 무죄를 선고받고, 한 점 오점도 없는 명예로운 이는 오욕의 구렁텅이에 빠져 있지요! 이 지경에 이른 사회라면 그 운명은 파멸밖에 없습니다.

아, 실로 모든 것이 광기, 어리석음, 기괴한 상상력, 비열한 경찰 근성, 종교 재판식의 매도, 전제적인 폭압으로 뒤흔들렸고, 몇몇 장교와 장성들의 영달을 위해 국가 전체가 강철 군화에 짓밟혔으며, 진실과 정의를 외치는 국민의 목소리는 국가 이익이라는 미명하에 질식되었습니다!

속악한 언론에 기대는 것, 파리의 온갖 사기꾼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 그리하여 파렴치하게도 사기꾼들이 승리하고 인권과 청렴결백이 패배하게 만드는 것은 범죄 행위입니다.

한쪽에는 햇빛이 비치기를 원치 않는 범죄자들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햇빛이 비칠 때까지 목숨마저도 바칠 정의의 수호자들이 있습니다. 이미 말씀드렸지만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진실이 땅속에 묻히면 그것은 조금씩 자라나 엄청난 폭발력을 획득하며, 마침내 그것이 터지는 날 세상 모든 것을 날려버릴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머지않아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이제 막 가장 멀리까지 울려 퍼질 재앙 중의 재앙을 준비했다는 것을.

제가 고발한 사람들에 관한 한, 저는 그들을 알지도 못하며, 단 한 번 만난 적도 없으며, 그들에 대해 원한이나 증오를 품고 있지도 않습니다. 그들은 제게 사회악의 표본일 뿐입니다. 그리고 오늘 저의 행위는 진실과 정의의 폭발을 앞당기기 위한 혁명적 수단일 뿐입니다.

저는 그토록 큰 고통을 겪은 인류, 바야흐로 행복 추구의 권리를 지닌 인류의 이름으로 오직 하나의 열정, 즉 진실의 빛에 대한 열정을 간직하고 있을 뿐입니다. 저의 불타는 항의는 저의 영혼의 외침일 뿐입니다. 부디 저를 중죄 재판소로 소환하여 푸른 하늘 아래에서 조사하시기 바랍니다!

기다리겠습니다. …

[출처: 유기환 옮김.《에밀 졸라 나는 고발한다》책세상, 2005]

 

 

* 이 글은 주간인권신문 인권오름 171호에 실렸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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