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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용산과 나의 집 4] 용산에서 눈을 돌릴 수 없는 이유
번호 30 분류   조회/추천 2169  /  412
글쓴이 대책위    
작성일 2009년 10월 07일 15시 56분 44초

용산에서 눈을 돌릴 수 없는 이유

                            

                                                                                                                   진우(인권운동사랑방 자원활동가)

우리 가족은 내가 돌이 될 무렵에 지금 살고 있는 이 집에 자리를 잡았다 한다. 그때부터 죽 살았으니 ‘참 오래도 살았구나’ 새삼스럽기도 하다. 하긴, 정확히 말하면 중간에 한 3년 정도는 다른 곳에서 살았으니 엄밀히 말하면 계속 살았던 것은 아닐 것이다.

 

내가 중학생 신분을 벗어날 그 즈음에 우리 집이 오랜 노후로 인해 다시 짓기로 결정이 났다는 것을 들었다. 소위 ‘재건축’이라는 것이란다. 아기 때부터 십 년 넘는 세월을 지낸 터전을 벗어나 다른 곳으로 간다는 것에 두려움이 들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중학생 특유의 치기 어린 생각도 들었다. “우리 집 이제 좋아지는 거야?” 아예 싹 부수고 멋들어진 새 아파트로 바꿔 준다는 사실만 알고 있던 나에게는 그 외의 것은 들어오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가 재건축 기간 동안 잠시 지낼 전셋집을 구해 이사날짜를 정할 때쯤이었다. 어디로 가던 길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어머니와 나는 아파트 주변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러던 중 10동으로 되어 있는 아파트 중 ‘1동’ 지나가게 되었는데, 어머니께서 나지막히 말씀하셨다. ‘저 사람들 아직도 안 나갔네.’ 고개를 돌리자 창문들은 깨져있고, 흉물스러운 붉은 글씨들이 도배된 건물 안에, 현관문이 열려있는 집이 보였다. 불이 켜져 있고, 안에서 목소리가 들리는 걸로 봐서 사람이 있는 듯 했다. 텅 비어버린 아파트 안에 왜 굳이 아직도 살고 있을까? 어머니의 말씀이 계속 이어졌다. ‘나가라면 나가야지 버텨서 뭘 얻겠다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분명 ‘이상한’ 사람들이었다. 새 건물로 바꿔 준다는데 왜 안 나갈까? 왜 아직도 눌러 앉아서 우리 아파트 새로 짓는 걸 방해하고 있을까?

 

우리 가족이 이사가고 몇 달 후, 그 사람들이 결국 포기한 건지 어떻게 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아파트는 철거되고 재건축을 시작했다. 아파트는 잔해만 남긴 채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나 재건축은 끝났고, 우리 가족은 다시 돌아왔다. 들어오자마자 연신 탄성을 내뱉었다. ‘와, 이게 진짜 우리 집이야?’ 더 넓어지고 최신 시설로 바뀐 우리 집은 마치 -과장을 보태자면- 궁전 같았다. 나가기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세련된 모습으로 바뀐 우리 집에서 살 수 있다는 것이 꿈만 같았다.

 

그런데 이상했다. 분명 예전에 살던 아파트 이웃들이나 가끔 인사를 나누기도 했던 사람들, 함께 놀았던 친구들 중 많은 수가 이젠 보이지 않았다. 처음에는 의아했지만, 들뜬 마음이 가라앉으면서 상황이 파악되었다. 돌아올 돈이 없었던 것이다. 나갈 때는 있는 돈 없는 돈 어찌어찌 끌어 모아 버틸 수 있었지만, 재건축 후에 올라버린 집값을 감당하기에는 -아무리 기존 입주민들을 배려한다고 하였으나-벅찼던 것이다. 재건축은 집을 새로 바꿔주는 밝은 면만 있지는 않다는 것을 이제는 알고 있었기에 그리 놀랍진 않았다. 하지만 마음 한 구석이 휑한 것은 막을 수 없었다. 멋들어진 위용을 자랑하고 있지만, 지금 이 곳은 예전에 내가 살던 곳이 아니었다.

 

이런 가정을 해본다. 만약 우리 집이 돈이 부족해 재건축이 끝나고 돌아오지 못했다면 집을 부수겠다는 재건축 조합의 말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아니, 그것보다 재건축을 시작하면 당장 어디서 살아야 할 지 막막한 처지였다면, 우리 가족은 어떻게 행동했을까.

 

어머니께서 나가지 않고 있는 집에게 그런 말씀을 하신 것은 그 처지를 모르셨기 때문이었을 것이고, 나 또한 이해를 하지 못했다. 당연하다. 당사자가 아니고서는 결코 그 심정을 알 수 없으니까. 그러나 최대한 상상력을 동원해, 입장을 바꾸어 보면 섬뜩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내 집을 부숴 버릴테니 언제까지 나가달라고? 다시 돌아오게 해준다는 약속도 없이, 어디로 가서 어떻게 살라는 것인지! 텅 빈 아파트 안에 살고 있었던 그 가족들 또한 그런 막막한 심정으로 하루하루 견디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나가서 머무를 공간이 있었고, 차후 다시 돌아올 정도의 살림이 있었던 집에서 자란 내가 용산 시민들의 심정을 완전히 공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 처지에 처해보지 않고서 그 심정을 정말 안다고 하는 것은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해보려 한다. 그 불편한 곳에서 여러 가족들이 뒤엉켜, 가족들의 장례조차 치르지 못한 채 지내고 있는 그들의 속사정에 어떻게든 이입해보려 한다.

 

정말 당신과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아니다. 그대의 앞에 닥칠 수도 있는 일이다. 그걸 염두에 둔다면 용산에서 눈을 돌리기란, 정말이지 쉽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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