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안승길 신부님) - 일부

아주 가까운 남영동 역 부근에는 예전 대공분실로 불리던 음침한 건물이 있습니다.
그 건물의 509 호는 바로 故 박종철 열사가 고문으로 죽은 자리입니다.
지금 그 자리는 박종철 기념관으로 꾸며져 있고
나는 그 기념사업회의 이사입니다.
22년 전, 박종철의 죽음은
우리나라 민주화의 물결을 일으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바로 이곳에서도 소박하고 선량한 분들이 희생당했습니다.
정치와도 무관하고 정파와도 무관하게
오로지 자신들의 생존권, 국민으로써의 기본권을 부르짖다
공권력에 의해 돌아가신 것입니다.
용산 열사들의 죽음과 박종철 열사의 죽음을
같은 맥락에서 생각해야 합니다.
지금 우리 주변의 분위기는 용산 참사문제에 대해 거의 무관심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것은 국민들이 사회적으로 너무나 많은 문제에 직면해 있는 탓입니다.
그분들의 희생은 우리 사회를 위해 바쳐진 거룩한 밑거름으로서의 의미가 있습니다.
많은 시간이 흐른 후,
고인들의 희생, 그리고 지금의 이 미사와 기도가
우리를 캄캄한 밤에서 여명으로 이어주는 길목이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정의구현사제단 신부로 30년,
나는 줄곧 길 위의 신부로 살아왔습니다.
어떤 정치적 이슈가 있었거나, 정권에 대한 도전의 시간들이였다기 보다는
단지 예수님의 말씀,
길이요 진리이며 생명이신 그분께로 향하려는 끊임없는 노력의 시간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이러한 움직임과 부르짖음에는 꼭 거부의 세력이 있습니다.
인류의 역사는 늘 그래왔습니다.
작년 촛불집회 때 시청 앞을 찾은 교회의 한 고위 지도자는 우리를 향해서
"쓰레기 신부, 깡패 신부, 좌경 신부..." 등등의 욕설로 손가락질을 했습니다.
25 년 전, 필리핀의 세미나에서 겪었던 일화입니다.
주일미사라고 해서 신자들이 모인 장소로 갔는데
있는 것이라곤 형편없는 널판지 몇개 뿐,
천정이고 벽이고 하나도 없는 노천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미사를 집전하신 신부님의 강론은 빛났습니다.
"나는 마닐라의 큰 대성당에서 주임신부를 지냈다.
성당은 고급스러운 성화와 스테인드글라스.엄청난 규모를 자랑하는 매우 훌륭한 건물이였다.
지금 그곳에서의 미사를 생각해 보면
이곳 노천의 미사가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깨닫게 된다.
훌륭한 건물의 성전에서 봉헌하는 미사보다
이렇게 길거리에서 가난한 이들과 널판지 몇 개만 가지고 드리는 노천미사가
오히려 성령의 충만함을 느끼게 한다."
예수님도 길에서 목숨을 바치셨으니
이곳 용산 열사들의 의미 또한 그러합니다.
세상의 어느 훌륭히 지어진 '교회'건물도
이 참사현장만큼 훌륭하고 진지한 의미의 '교회'는 못 되는 듯합니다.
미사는 인간과 인간, 인간과 하느님의 친교의 자리입니다.
예로부터 미사란 원래가 모두 노천미사였고
오늘날처럼 거창한 건물 속 미사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사실을 거부하고 싶은 기득권,지도층은
길 위의 신부들을 모두 좌경으로 몰아가며 매도하고 있습니다.
과연 이 시대의 예수님은 훌륭히 지어진 성전과 가난한 자들의 노천 교회,
그 둘 중 어느 곳을 마음에 들어하실까요?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유가족들과 주민여러분,
돈과 지위, 사회적 빽이 없어 힘든 사람들...
온갖 비방과 모욕을 감당하면서라도
이곳의 노천미사는 끝까지 이어가야 합니다.
곧 일흔 살이 되는 몸으로 오체투지를 다녀왔습니다.
생명,사람,평화를 생각하며 땅 위를 기어다녔습니다.
육체적으로 극심한 고통을 겪으면서 오로지 한가지 생각만 했습니다.
생명... 그 소중한 것의 의미...
오체투지를 하시는 분들은 누구도 정권퇴진을 말하지 않습니다.
잘못 되어가고 있는 교회내의 지도자들,
그들의 변화와 쇄신을 위해 기도하고 또 기도하며
땅 위를 지렁이처럼 기어서 갑니다.
유가족들의 상처를 차마 짐작하기 힘들고 마음만 아픕니다.
그러나 그 상처로 인해 권력에 대한 증오심만를 키우지 말고
용서하기 위해 기도하는 마음을 먼저 가져주십시오.
증오감을 키워가는 것은 자신들의 상처까지 자꾸 더 덧나게 합니다.
오히려 고인들의 희생을 거룩한 씨앗으로 삼아
아름다운 꽃을 피워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먼 후일, 가난하고 힘없는 자들에게 희망의 여명을 물려주는 것이 됩니다.
고인들의 희생은 우리를 위한 것이었으며
예수님의 죽음과 그 신비함에 동참하는 거룩한 길로 이렇게 우리를 이끕니다.
(진달래님 정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