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안승길 신부님)

나는 강원도 산골에 사는 신부입니다.
사제로 산 세월이 벌써 40년입니다.
새벽에 버스를 타고 오체투지가 지나가는 수원을 다녀왔습니다.
너무나 더웠습니다.
4Km를 가기 위해서는 엎드리고 일어나는 800배(拜)의 동작이 필요합니다.
아스팔트의 열기는 참을 수 없이 뜨겁고 고통스러웠는데,
땅에 엎드리는 그 순간의 편안함은 뭐라 설명할 표현이 없습니다.
어쩔 수 없이 차선으로 진행할 때는 경찰의 시비가 우려되기도 합니다.
이 남일당 성당 주변의 전의경, 우리의 아들들을 보면 마음이 아픕니다.
양심과 올바른 마음으로 생각해 보십시오.
"왜 내가 여기에 서 있어야 하는가?"를 생각해 보십시오.
이곳에 있는 우리를 보호하는 것입니까?
정말 가슴이 아픕니다.
며칠 전에는 시위를 했다고 사람을 무더기로 잡아들였습니다.
왜 이렇습니까?
꼭 이래야만 합니까?
오체투지를 하면서 한가지 화두를 떠올렸습니다.
첫째. 하느님 앞에 참다운 제사와 기도란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3년동안 공생활을 하셨던 갈릴리 지역은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었습니다.
구약성서에는 부동산,재산 등에 대한 개념이 없습니다.
모두 하느님의 것이고 그래서 모두가 필요에 따라 골고루 나누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사람들도 처음에는 나눔을 지키며 살았지만
정착과 더불어 빈부차이가 생기고, 착취 세력이 생기고,그에 따른 현실도피 세력도 생겼습니다.
둘째.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 중 '오병이어(五騈二魚)'의 기적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을 생각해야 합니다.
모자라던 빵과 물고기가 모두 배불리 먹고도 남은 것만 열두 광주리에 찼다는 것은
하늘에서 빵과 물고기가 뚝뚝 떨어졌다는 뜻이 아닙니다.
한 어린아이가 자신의 먹을 것을 스스럼없이 내어 놓자
그에 마음이 움직였던 군중들이 하나,둘...감추었던 식량들을 툴툴 털어 내어 놓았다는 뜻입니다.
그것이 바로 '나눔의 기적'이고 '나눔의 정'이며
미사에서 빵과 포도주를 나누는 진정한 의미인 것입니다.
오체투지를 하시는 성직자들은 물론이며 나도 또한 MB OUT을 외치는 것이 아닙니다.
지도자 스스로 생명의 길, 사람의 길, 평화의 길을 찾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MB에게 말합니다.
"당신 나이도 이제 곧 70이다.
얼마나 더 살 것 같은가...?
정치 좀 제대로 해라.
명색이 장로가 아닌가...?
없는 사람 좀 봐줘가며 살면 안 되겠나...?"
자캐오가 자신이 가진 것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내어놓으며 회개를 하자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너에게 구원이 시작되었다. 평화가 시작되었다..."
MB도 좀 가난한 자들에게 1/100 이라도 나누어 주며 살았으면 합니다.
그러면 우리도 여기서 물러날 수 있습니다.
이곳에 신나는 기분으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선택한 곳이 바로 이곳입니다.
외국 유학 중에 보았던 문정현 신부님의 논문 중에서 기억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근래의 억만장자 50명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조사한 논문이었습니다.
무려 38명이 돈을 주체하지 못해 마약과 술,도박 등으로 가정마저 파괴된 삶을 살고 있었고,
빌게이츠처럼 자신의 수익을 사회에 환원시킨 소수 사람들의 얘기는 모두 공통적이었습니다.
"나는 나의 소유욕을 채우기 위해 많은 재물을 가진 것이 아니다.
하느님께서 나를 통해 가난한 사람들과 나누라는 뜻으로 나에게 큰 재물을 허락하셨으니
당연히 가난한 사람들과 나누어야 한다..."
'분배의 정의'와 '나눔의 정의'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잘 사는 사람들을 보면서 느끼는 것은
이 참사는 얼마든지 막을 수 있는 것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아이들처럼 왜들 그래야 했나요...?
좀 멋지게 통치해 주세요.
우리는 신앙을 지켜가야 합니다.
복음의 메시지를 전하며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생각합시다.
"나는 너희를 사랑한다.
사랑하기 때문에 너희의 잘못을 얘기할 수 있다."
제대로 정치하면 국민들로부터 존경받는 지도자가 됩니다.
모든 백성들에게 친근감을 주는 지도자가 되어주길 진심으로 기도합니다.
그것이 힘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