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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둥글이
제목

7월 5일 - 용산 풍경 / 용산 현장에 천주교 미사가 울려퍼지는 역사적 배경.

작성일
2009.07.06 12:19:10
IP
조회수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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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문서 주소
http://mbout.jinbo.net/webbs/view.php?board=mbout_4&id=3121

 



 [분향소 앞 전경]


 



 


 


[한 분이 분향소 근처를 계속 돌면서 세워져있는 사진과 글 등을 면밀히 살핍니다.


예사롭지 않아서 물었더니, 대안학교에서 근무하는 선생님이시랍니다.


전태일 기념 사업회 등의 활동도 하신다고 하는데, 아이들에게 단순히 공부만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라,


세상 돌아가는 일 등에 대해서 늘 이야기하고 문제의식을 가질 수 있도록 돕는다고 하십니다.


그런 터에 용산사태에 대해서도 진즉부터 좀 직접 접하고 아이들에게 이야기할 시간을 


가졌어야 함을 아쉬워하십니다. 이러한 한 분 한 분의 관심과 참여가 세상을 바꿔낼 것입니다.


이날 일요일에도 분향소에는 많은 분들이 다녀가셨습니다. ]


 


 



=> 사진이 안보이거나 글이 띄엄 띄엄 보일 때 클릭하세요.


 


 


용산참사 현장에 기독교회의 예배보다,


천주교회의 미사가 주로 이루워지는 역사-종교적 배경 


 


 부제 : 자본과 권력지향의 한국 기독교-오는 예수도 밀쳐내


  


들어가며 : 한국 기독교의 가장 큰 문제는 예수가 그리했던 것과는 전혀 반대로 ‘친자본적’ ‘친권력적’


성격을 띠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한국의 기독교가 갖은 사회문제를 일으키는 원인이다.


교회(천주교, 기독교) 변천 과정과 예수 믿음의 본질을 짚어봄으로 왜 용산 현장에는 기독교 연합회와


대형 교단들이 나서지 않고 몇 개의 사회적 책임을 분담하려 나서는 중소형 교회만 나서는지...


반대로 왜 천주교회 조직은 사활을 걸고 이곳에서 미사를 치루는지를 살펴보자.  


   



 [용산참사 현장 옆 생명평화 미사중]


 


    1. 초기 교회
예수 사후 300년이 지날 때 까지 초기 교회는 예수를 향한 순수하고 정열적인 믿음을 간직하고 있었으며


당연스레 (예수가 그리했던 것처럼)약자를 대변하는 경건하고 헌신적인 신앙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들불같이 번지는 새로운 믿음에 로마 지배세력들은 위기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태양신 숭배가


일반적인 로마인들에게 갑작스레 세력을 형성하는 그리스도교는 로마의 권력 체계를 뒤흔드는 엄청난


파문이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위기감 때문에 로마지도층들은 강력한 군사력을 이용해 기독교 집단을


탄압했고, 정치-경제적으로 철저히 소외시켰다.


 


     2. 기독교 공인  후
300여년의 모진 박해와 고난의 세월을 이겨온 기독교인들에게 한줄기 거대한 빛이 비춰진 것은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의 기독교 공인을 통해서였다.(313/밀라노칙령) 문제는 자신이 주조한 화폐에


‘태양신’을 새겨 넣기까지 했던 (본디오빌라도의 정치적후손인)콘스탄티누스 황제는 경건한 기독교인이라기보다는


정치적인 필요에 의해서 기독교를 공인한 것이었고, 그가 공인한 기독교는 로마 정치조직의 자매품이었다.


원래 예수교의 안식일이었던 ‘토요일’이 태양신의 안식일인 ‘일요일’로 바뀐 것도 이때였다. 바야흐로


기독교는 ‘약자들의 믿음’에서 ‘강자들의 믿음’이 바뀌어가고 있었다. 


 


     3. 교회의 권력화와 종교개혁
예수 사후 300년 동안의 초기 교회의 경건함을 잃은 교회가, 로마의 관료조직을 그대로 답습했을 때부터


교회의 권력화는 예견되었던 일이었다. 교회는 점차 부패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교회의 폐단이 극대화 하여


결국 폭발하게 되었는데, 이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바대로의 ‘면죄부 판매’에 대한 저항을 통해서였다.


교황 레오 10세는 로마에 있는 성베드로 성전 건립을 위해 유럽 각국의 주교들을 시켜 앵벌이 활동을 독려했다.


문제는 이 시기는 ‘국가’의 개념이 서서히 형성되기 시작하고 있던 시대였다. 따라서 로마로 빨려 나가는


막대한 부에 대해서 각 국의 ‘제후’ ‘상인’ ‘농민’들은 엄청난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시대상황을 면밀히 살핀 독일의 루터는 ‘제후’ ‘상인’ ‘농민’의 간지러운 부분에 효자손을 갖다 댔다. 


 


    4. 종교개혁의 본질
루터가 수도사로 있던 당시까지 로마 카톨릭 교회의 막강한 권력은 유럽의 전역에 교회를 세워놓고 엄청난


부를 축적하고 있었다. 중세시대 유일한 생산의 원천인 '토지'의 3분의 1이 교회의 소유였을 정도였다.


교회의 번성에 따라 생계의 원천인 토지를 빼앗기면서 농민 생활은 점점 피폐해졌고, 농민의 생산 활동에


그 생존을 보장받고 있었던 영주들과 국왕의 불만도 점점 가중되고 있었다. 이에 ‘제후, 국왕, 농민, 상인’은


자연스레 ‘교황’과 대립하게 되었다.
이 시점에서 루터는 면죄부 판매를 문제 삼아 '면죄부 없이도 인간은 스스로의 믿음으로 구원받을 수 있음'과


‘하나님의 대리자 역할을 하는 로마 교황 없이도 구원받을 수 있음’을 주장했다. 루터의 주장이 교황을 눈에


가시로 생각하던 독일의 제후들과 농민들에게 대대적인 인기를 끌었음은 말할 나위 없었다.


 


     5. 국가의 형성
루터의 종교개혁이 먹혀들 수 있었던 것은 이렇게 ‘자본가’ ‘권력자’ ‘신흥종교가’들의 이해가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기실 루터의 종교개혁은 '권력의 재편성'의 다른 말이었다. 
‘국가권위주의의 창시자’라고까지 불리는 루터는 강력한 제후-귀족-자본가들의 비호를 받으며 독일이라는


국가의 형성을 위해서 자본과 권력을 집중할 수 있는 신학적 토대를 마련했다. 루터가, 생존권을 부르짖으며


반란을 일으킨 [‘농민’들을 ‘목 졸라 죽이고, 찔러 죽여야…. 축복을 받는다’…]고 지주들에게 조언했던 것도,


그의 ‘국가권위주의적’인 기질을 살펴볼 때는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차츰 흔들리고 있던 봉건제를 무너트리는


뇌관역할을 했던 이 종교개혁이, '절대왕정‘시대를 여는 열쇄 역할을 한 것은 극히 자연스러운 역사의 수순이었다.
바야흐로 예수시대의 '청빈'과 '나눔'을 강조하던 교리는 서기 300년 이후로는 로마지도층의 종교로 변하며


제도화 되었고, 16세기 이후로는 개신교로 모양을 달리 하여 자본화-권력화 되어가기 시작했다.


 


     6. 개신교의 친자본적, 친국가주의적 성향
루터의 종교개혁 이후 칼빈이 제네바에 기독교국을 세우고 나서 고작 1만 3천명밖에 안 되는 인구 중에 58명을


처형했던 것은 그의 ‘국가권위주의적 사고’의 전형을 드러낸다. 메인플라워호를 타고 넘어온 청교도들의 아메리카


원주민 살육은 두말할 것도 없다. 이 주요 개신교 세력들은 조금이라도 더 많은 부를 쌓기 위해서 총칼과 대포로


무장하여, 식민지를 개척하여 잘살고 있는 토착민들을 쫓아내고 약탈, 유린, 노예로 팔아 엄청난 부를 쟁취했다.


그 앞에는 늘 ‘선교사’들이 앞장섰음은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청교도는 '합리적인 부를 얻을 기회를 이용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을 올바로 믿지 않는 것'이라 역설했고,


감리교는 '부자가 되는 길'을 권했으며, 칼뱅파는 '근면과 절약을 통해서 부를 이루도록' 권했다. ‘부자가 되지 말고.


네 것을 이웃과 나눠라. 늘 자신을 낮춰라’고 일컬었던 예수의 말씀이, 어느새 ‘부자가 되고 권력을 성취하는 것이


참 믿음이다’라고 변질되었음은 수천 년 예수믿음의 질곡의 과정 중에서 ‘자본’과 ‘국가권위주의’가 그 믿음과 결탁한


결과에 의한 것이었다. 
20세기 들어서의 세계 1, 2차 대전, 6·25, 월남전, 각종의 분쟁과 내란, 21세기 들어서의 이라크전, 앞으로의 생태계


붕괴와 인류의 파국은 면밀히 살펴보면 결국은 기독교가 자본-권력과의 동침을 시작하면서 빚어진 패륜의 결과이다.


이는 예수가 피 흘리며 이 땅에 전파하고자 했던 ‘비우고 나누고 공존하고 사랑하는 삶’을 인류가 버리고, ‘예수믿음’의


행위를 자본과 권력을 향한 의지로 덧칠해 낸 결과 빚어 낸 ‘일련의 참상’인 것이다.


 


    7. 한국의 기독교회
이렇게 개신교의 기원이 된 사건(종교개혁)이 ‘자본과 권력의 집중화’에 쏠려 있고 '국가권위주의'적인 성격을


띠다 보니 그 역사의 엑기스를 이어받은 한국의 기독교계 대표들은 힘 있는 세력에만 달라붙어서 전두환 정권 찬양


만찬회 등을 열었었고, 제국주의 국가(미국)의 침략(이라크 침략 전쟁)을 지지하는 집회를 하고, 헌금과 십일조만


있는 대로 긁어모아 교세확장에만 집중하고, 서민에게는 극심한 피해가 될 FTA 추진에 열을 올리고,


새만금사업-핵폐기장 사업 추진을 기도하며, “이명박 대통령 후보를 안 찍으면 생명책에서 지워버린다”는 말을


서슴없이 하고, “촛불 집회를 일으킨 세력들을 엄단해야 한다”는 말을 할 정도로  권력-자본지향적인 성격을 갖고 있을 뿐,


예수가 그리하라고 이르신 것 같이 약자를 비호하고 환경과 생명을 대변하는 모습을 거의 보이지 않는다.
이들이 '(자본과 권력이 맞물린)국가시책, 국책사업'을 비호하며 권력과 자본을 대변하기는 할지언정 이로부터


취당하고 고통스러워하는 '노동자, 농민'의 궐기를 두둔하거나, 사회적 약자들이 억눌림을 당하는 사회체제의


구조적 변화에는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은 개신교 역사를 살펴봤을 때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기실 한국의 기독교회는 대부분 초기교회시대의 경건한 믿음과는 전혀 관계없는 자본과 권력지향의 퇴패한 떼거리


믿음만을 배양하고 있다. 자본과 권력지향적이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세상의 부조리에 대해서 눈을 감으면서


막연한 ‘사랑’ 외치고 ‘영생’만을 갈구하는 ‘현실 불감증환자’들을 파생시키고 있다. 


 


    8. 주를 따르는 길
  이렇게 친자본, 권력지향적 믿음에 대한 책임은 있지만,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개신교의 시조인 루터의 위대함은,


중간에 매개자(교황, 목사, 종교지도자)가 없는 ‘신과 나와의 1:1의 관계’를 주장하며, ‘인간 모두가 사제로서 스스로의


노력만으로도 하나님과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교리를 끄집어냄으로 관료화된 믿음이 아닌 초기교회의 경건한 믿음을


회복할 계기를 만들어 냈다는 것이다. 하지만 미묘한 문제가 생겨났다. 개신교인들 스스로의 주장대로라면 루터는


새로운 교회를 만들지 말아야 했으나, 특정한 형식의 구속 없이는 믿음이 존속 될 수 없을 것이라 여긴 루터는 최소한의


교회의 형식을 인정했고, 그것이 현재의 개신교의 뿌리가 되었다.
문제는 개신교 교회의 체제와 형식이 루터 시대 이후로 꾸준히 변질되어 왔다는 것이다. 종교지도자들(목사 등)은


신도들이 신과 개인적으로 교통할 수 있는 길을 막아 놓고, 그 중간에 버티고 서서 신의 ‘대리인’임을 자처하며


통행세를 받는다. 이렇다보니, 늘상 ‘스타목사’(대리인)를 내세운 대형교회가 번성하는 것이고, 신과의 개인적인


만남이 되어야할 믿음의 행위는 온데간데없고, 집단적 부흥회 판만 난립하는 것이다. 더군다나 그 대리인들인 목사들은


상당수가 앞서 말했던 것과 같이 자본 지향적이고 권력 지향적이다. 이러한 우두머리에 의해 조직된 패거리화


된 수준의 믿음이 ‘조직화’되고 ‘세력화’ 된 끝에 ‘정치화’되는 것은 필연적인 결과이며, 그렇게 정치화된 한국의


기독교가 유독 ‘국가주의’의 모습을 띠고 ‘친권력적’ ‘친자본적’ ‘친보수적’ 성향을 띠는 것도 이어지는 수순이다.


 


     9. 위기 해결의 열쇠가 없는 기독교
작금은 위기의 시대이다. 보다 더 많이 생산하고 소유하려는 인간의 욕망의 결과는 심각한 파국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환경 파괴로 인하여 세계기후가 격동하고 있고, 이로인한 자연재해와 생태계 붕괴까지가 예상되며 후손들의 존립마저


위협받고 있다. 이러한 위기는 우리 각자의 권력과 자본을 향한 욕망이 지구 생태계가 견뎌낼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게


한 결과이다.
문제는 ‘심판의 날’이 다가왔음에도 한국의 기독교인들은 인류가 직면한 위기 상황을 인식하지 못하고, 이러한 파국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권력’과 ‘자본’을 향한 욕망을 당연시 여겨서, 더더욱 많은 권력과 돈을 벌게 해달라고 교회에서


버젓이 기도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는 기독교의 ‘역사’와 ‘교리의 형성과정’을 제대로 통찰하고 ‘신과의 나’와의 올바른 관계를 맺을 생각은 하지 않고


‘주여 믿습니다!’라고 크게 소리치는 사람(목소리 큰 사람)이 예수를 잘 믿는 것으로 조장되는 해괴한 분위기 속에서


신도들이 길을 잃고 헤매고 있는 결과이다.
이렇다 보니, 세계 기독교총연합회 회장이 “한국의 기독교는 양적으로 많이 성장했으니, 이제 질적으로 성장해야한다”고


핀잔을 줬을 정도이지만 독선에 빠져있는 한국의 기독교인들은 자신이 빠진 함정을 살필 여력이 없다.    
이러한 위기의 시대. 이러한 인류사적 위기까지를 헤쳐나 갈 수 있는 올바른 믿음을 견지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이 모든


혼탁한 역사와 권력과 자본의 어우러짐이 왜곡된 믿음의 형식으로 인간의 영혼을 좀먹고 있는 이 혼란 속에서, 신과


나의 사적인 관계의 회복에 전념해야할 것이다. “예수님. 당신이 저의 구주임을 인정합니다”는 말만 주문 외듯이


중얼거리며 집단적인 굿판을 벌이는, 우상화된 예수에 대한 믿음이 아니라, 예수가 행하신 삶, 행하라 이르신 삶을


자신의 사적인 공간에서 ‘추호도’ 거짓 없이, 어떠한 희생이 따르더라도 사는 삶이 어우러진 믿음이 필요하다.


쓸 만큼 쓰고, 살만큼 살며 온 갓 문명의 편리를 누리면서, 온화함과 경건함만 풍기는 믿음은 그 자체로 위선적 믿음이다.


인간사의 갖은 갈등을 불러일으키고, 지구생태계를 파괴시키는 ‘현대물질문명에 적응한 삶’ 자체가 경박한 삶인데,


겉으로만 온화하게 보인다고 해서 그것이 온화한 믿음이 되겠는가.
저 멀리 우리를 외면하고 예수께서는 황야로 길을 떠나고 있다.
위기의 시대. 우리는 예수가 그리했던 ‘비움’과 ‘낮춤’과 ‘나눔’의 삶을 일상에서 실행하는 삶. 철저히 자신을 버려


‘마음을 가난하게’ 만들어 온전히 하늘의 뜻을 담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예수께서 걸어간 길을 따르는 방법이고, 올바로 예수를 믿는 방법이 아니겠는가. 




  10. 한국의 천주교회


반면 카톨릭의 경우에는 16세기 종교개혁을 맞기 전까지 자본과 권력 지향적인 탐욕적 양태를 보여 오기는 했지만,


이는 전적으로 그 당시 ‘카톨릭조직’의 관성적 문제였지, 일반 신도들의 문제는 아니었다. 카톨릭 조직은 실질적으로는


유럽 농토의 3분의 1을 소유하며 면죄부 판매 등을 통해서 자본을 축적하고 있었고, 각국 왕과 힘겨루기 과정에서의


우위를 통해서 막대한 권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또한 절대왕정기의 식민지 개척 시대에 총칼로 무장한 군인들을


따라나서 문화적 영적인 식민지를 개척하는 야만적 행보를 보인 씻을 수 없는 과오가 있기도 하다.


하지만, 이율배반적으로 이들 카톨릭 조직은 신도들에게는 철저하게 ‘나눔’과 ‘비움’을 삶 속에서 실천하는


‘경건한 믿음’ 강론했다.


특히나 상업 활동이 활발해지고 사람들의 정신이 자본에 물드는 상업혁명-산업혁명기에 마저 카톨릭은 개신교와는 달리


돈을 멀리할 것을 공공연하게 공표했다. 특히나 카톨릭은 개신교가 권장하는 ‘이자놀이’(돈 빌려주고 받을 때 이자를


쳐서 받는 행태)에 대해서는 단호히 대응했는데, 이는 ‘이자놀이가 하나님의 고유권한인 시간을 사고파는 것’이라는


문제의식 때문이었다. 비록 카톨릭 지도자(주교-교황)들은 그리하지 않았지만, 신도들에게 이러한 비움과 나눔을


강조한 결과는 시간이 지나면서 커다란 역사의 반향을 일으키게 되었다. 자본-권력 지향성이 최소화된 ‘신도들’의


의견은 당연히 카톨릭 조직의 구성에 영향을 미쳤고, 이를 통해서 로마교황청을 중심으로, 자본중심적 사회의 폐해로 인해


직면한 인류사적인 문제에 대해 실질적으로 고민할 실천적 기회를 부여했기 때문이다. 그 교황-추기경의 이해의


결과는 다시 이 고도의 관료제 조직을 통해서 가장 밑에 있는 신도들에게 실천적 활동을 조직적으로 독려할 계기를


만들어 냈다. 이렇자 카톨릭 조직은 비록 고도로 조직화된 관료조직이기는 했지만, 채움과 높임의 욕망을 통해 세속적인


목적으로 ‘세력화’, ‘정치화’되는 것을 최소화할 수 있었으며, 기독교에 비해 ‘비자본적’ ‘비권력적’ ‘비국가적’


‘비보수적’인 모습을 띌 수 있었던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문제로 교회 운영의 문제로서 기독교의 장로교회는 그 교회의 운영을 결정하는 장로가 지역의


유지(권력 있는 자, 자본 있는 자)이기에 자연스럽게 ‘자본적’ ‘권력적’ ‘보수적’ 성향을 띄는 것에 반해서,


천주교는 (우선 형식적으로) 자신의 사적인 가정생활을 하느님께 바치는 노력을 통해서 나눔과 비움이 연습된


신부들에 의해서 조직이 운영되는 이유로 상대적으로 덜 그럴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앞서 이야기 한 바대로


한국사회에서 기독교가 자본과 권력에 편승해서 해 놓은 죄악이 무수한데 반해서 천주교는 그나마 상대적으로


 


이러한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 앞장서 온 이유이다. 


물론 모든 기독교회가 그렇게 친자본적, 친 권력적 모양세를 띄고 역사의 퇴행을 가져오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극 소수의 교회가 이러한 사회문제에 대한 냉철한 이해를 통해 국가적으로 인류사적으로 닥친 현안에 대해서


나서는 적극적인 노력을 해보이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교회는 ‘친자본’ ‘친권력’적 기반 하에 사회구조적인


문제를 면밀히 살피지 않는 무턱 댄 구호성 활동을 통해서 사회의 부조리를 더욱 관성화 시키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국가의 문제와 인류사적 현안의 문제에 ‘조직적’으로 고민하고 따지고 그 ‘실천지침’을 서로 공유할만한


관료조직이 없는 이유로 ‘각자 알아서 개인플레이’를 함으로 인한 명백한 한계를 드러내게 된다.


이러한 기독교와 카톨릭을 만들어낸 역사적 배경은 이곳 용산 땅에서 빚어진 문제를 설명해 준다. 즉 대형교회


기독교 장로가 서울시장 재직시에 그의 간절한 염원에 의해서 하느님께 서울시를 받쳤지만, 대통령이 된 후로


그 (기독교의)하나님께 받쳐진 서울시가 사회적 강자에 의해서 사회적 약자가 짓눌림을 당해야 하는 현실이


버젓이 불러 일으켜지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이곳 용산 참사 현장에 천주교의 미사만 이뤄지는 이유를 설명해준다.





* 이는 카톨릭의 관료조직이 가진 한계 까지를 무턱대고 옹호하는 것도 아니고, 기독교가 전적으로 문제가 있음을


지적하는 것은 아니다. 몇몇 교회에서 총력을 다해서 이곳 용산 땅에서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지만 


기독교총연합회 등을 비롯한 주요 종교교단은 작년 촛불집회 등을 비롯한 민중의 투쟁을 강경히 진압할 것을


정부에 권고하지 않았던가? 하여 이는 대부분의 기독교조직의 문제를 제기한 것이지, 극 소수 나서서 사회적 아픔을


분담하려는 모든 교회를 비판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용산현장'에서 미사가 주로 이뤄지고 있음을 역사적 -


현상적으로 분석한 글이다.  


  


                                                                                    - 2009년 용산의 철거 예정 건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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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기 싫은 것을 "먹기 싫다"고 말해도 두들겨 맞지 않는 나라,


잘 못된 것을 "잘 못이다"라고 말해서 끌려가지 않는 나라,


자신의 양심에 따라 사는 것이 죄가 되지 않는 나라에 살고 싶습니다.




이곳 홈페이지에 들어와서 유가족과 세입자분들에게 힘을 실어 주십시요.


* 용산철거민 참사 범국민대책위원회 => http://mbout.jinbo.net/


* 촛불 미디어 센터 => http://cafe.daum.net/Cmedia


 


용산참사 유가족과 세입자대책위를 위해서 하실 수 있는 일.


 


1. 시간이 있는 분들은 오셔서 봉사활동 하실 수 있습니다.


   => 설거지, 청소, 선전전 등의 봉사활동.  


2. 돈이 있는 분들은 후원하실 수 있습니다.


   => 국민은행 295401-01-156716(이종회)


3. 물건이 있는 분들의 도움도 필요합니다. 


   => 서울 특별시 용산구 한강로 2가 224-1 / 용산참사현장 천막 / 우) 140-012


      (쌀, 된장, 배추, 김치, 김 등의 식료품 - 잡화등을 후원받습니다.)



 


       [ 글 / 둥글이  1234yz@daum.net


                             http://cafe.daum.net/my80go]


 


 

덧글 목록

가시미로 덧글수정 덧글삭제

2009.07.07 20:10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가톨릭 신자로써 조금 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던 글인것 같네요. 다만 용어의 쓰임에 대해서 한마디 하자면, 기독교라는 개념은 천주교, 개신교 등을 모두 포함하는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종교를 말합니다. 천주교 역시 기독교에 포함되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죠. 우리가 흔히 지칭하는 기독교는 개신교라는 용어로 쓰여져야 올바릅니다. 또한 카톨릭이란 표현 역시 가톨릭이라는 표현으로 바뀌어서 사용되어야 합니다.

둥글이 덧글수정 덧글삭제

2009.07.07 20:43

적절하신 말씀입니다. 제가 가톨릭보다는 기독교쪽에 가까운 사람이다보니 표현이 적확하지 못했네요. 좋은 지적입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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