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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권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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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칼럼] 용산참사 남일당성당에서 본 베네딕토16세와 M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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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15 01:4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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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칼럼] 용산참사 남일당성당에서 본 베네딕토16세와 MB

최덕효(대표 겸 기자)

용산참사 현장 남일당 건물에 가면 심심찮게 들을 수 있는 생음악이 있다. 문정현 신부가 노천미사나 열사 추모집회에서 부르는 ‘전철연가’가 그것인데, 여기서 문 신부는 6개월이 되도록 철거민 5명과 경찰 1명이 숨진 용산참사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정치권을 매섭게 비판한다.

“청와대 쥐박이 용산참사 오리발 강부자 고소영 명박시발법 지랄통 아~하아~ 9공이 10공 10공이 3공 조중동 앞에서 짝짜궁 양키놈 앞에서 짝짜궁 저놈의 금뺏지들 싸그리 쓸어서 새만금 방조제에 처박아 버리고 우리네 전철연 벌떡 일어나 세상을 바꾸자 세상을 바꾸자”
(원곡인 김호철 작 ‘1노2김가’를 문 신부가 개사했다. 문 신부는 때에 따라 ‘전철연’ 대신 ‘국민’을 넣기도 한다. 원곡 말미에는 "우리네 노동자가 국회에 들어가 정치를 합시다”라고 나온다.)

문 신부의 개사곡이나 원곡이나 시점만 다를 뿐, 이 땅의 위정자들은 죄다 미국 앞에서 꼼짝 못하는, 그렇고 그런 금뺏지들에 불과하니까 이를 극복하기 위해 이 땅의 노동자민중들이 일어나 직접민주주의로 세상을 변혁시키자는 내용은 대동소이하다.



△ 용산참사 현장에서 매일 저녁 7시(일요일 외)에 드리는 노천 추모미사


지난 9일 이명박 대통령이 로마 교황청을 방문해 교황 베네딕토 16세와 면담하자 국내 언론들은 제2의 추기경이 서임될 수 있을 것인지를 두고 호들갑을 떨었지만, 필자는 5·18광주민주화운동 이후 단일 사건으로는 가장 큰 인명피해가 난 용산참사 현장에 문 신부를 비롯 ‘천주교 정의구현 전국사제단’이 집중하고 있는 만큼, 카톨릭 수장인 베네딕토 16세가 이와 관련한 입장을 보이지 않을까하는 쪽에 관심이 있었다. 그러나 결과는 역시 실망이었다.

면담 보도는 단지 "교황이 이 대통령에게 한국의 가톨릭재단 학교들이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정부 차원에서 협조해 달라고 요청했으며 이 대통령은 관심을 갖고 살펴보겠다고 답했다"는 것과 아울러 교황의 조국인 폴란드와 “에너지-방위산업 협력을 강화키로 합의한 것”을 자랑스럽게 전하고 있었다.

교황이 당해국의 수장에게 대형 인권침해 문제인 용산참사를 거론하지 않은 채, 국내 사학 비리를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개방형이사제를 도입하는 등 기존 사학의 무소불위의 권한을 조율하려던 그간의 국내 사학법 개혁 시도를 못마땅하게 여긴 보수수구세력들의 요구에, 카톨릭학교를 언급하며 편승하려는 듯한 모습에서 교황이 사회정의를 기피하는 대신 마치 정치권과 비즈니스 세계를 오가는 로비스트와 같은 이미지로 다가온다.



△ 해방신학에 대한 탄압으로 신부직을 포기하고 평신도가 된 레오나르도 보프


앞서 필자가 베네딕토 16세에 대해 ‘역시 실망’이라고 적은 것은, 그가 예전에 중세기 때 악명을 떨친 이단 심문관과 같은 역할을 톡톡히 해낸 이력과 무관하지 않다. 그는 라틴아메리카 해방신학의 기수인 레오나르도 보프 신부가 1984년 ‘교회의 권력과 은총’이란 책을 통해 가톨릭교회의 문제점을 지적하자 당시 신앙교리청 장관 ‘라칭거’로서 보프를 소환 심문하는 등 해방신학 탄압에 앞장섰던 인물이다. 이 일로 보프 신부는 결국 신부직을 포기하게 된다. 베네딕토 16세는 해방신학 외에도 낙태, 피임, 동성애, 여성사제 서품, 사제 결혼, 종교 다원주의에 반대하는 보수주의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

용산참사 현장을 찾는 사람들은 언제부터인가 남일당성당이란 명칭이 자연스럽게 들린다. 참사현장을 지키는 문정현 신부와 이강서 신부(서울대교구 사회사목부 빈민위원회 위원장)가 노천 추모미사에서 각기 보좌신부와 본당신부를 자처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 나라 어느 곳이나 재개발지역이면 철거민들에게 일상적으로 가해지는 용역깡패들의 폭력 또한 평등(?)하게 받아 안으며 미사를 봉헌하는 신부들의 친민중적인 평소 발언에서, 문득 베네딕토 16세의 즉위식을 보며 보프 신부가 행한 말이 썩 어울려 보인다.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고통을 나눌 수 있는 교황을 희망하며, 바티칸보다는 리우의 판자촌에서 더 많은 기적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기 바란다.. 유럽인들은 브라질 성당에 와서 기도를 할 필요가 있다. 내 꿈은 교황이 브라질을 방문해 빨간 티셔츠를 입고 토지없는 농민운동(MST) 회원들과 함께 행진하는 것을 보는 것이다."





최근 국제사회는 남미 좌파벨트의 급성장에 주목하고 있는데, 이들 나라는 한국과 달리 종교 분포에서 카톨릭 비중이 절대적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미 좌파 정권이 자리를 잡은 아르헨티나(92%), 브라질(80%), 우루과이(66%), 베네주엘라(95%), 칠레(89%), 볼리비아(95%), 쿠바(85%), 에콰도르(95%)가 그렇고, 차기 좌파 정권이 유력한 페루(90%)도 마찬가지다.

이들 나라에서 해방신학은, 글로벌한 시장 만능주의를 경계하며 자본으로부터의 정치 사회적 해방을 추구하는 신부들이 피억압 계층인 노동자(농민)민중속으로 들어가 헌신적으로 연대해 지역공동체를 꾸려냄으로써 토착화됐다. 혹자는 해방신학을 마르크스주의와 동일시하기도 하지만, 이는 해방신학이 성서의 종말론적 구원신앙을 전제로 한 상황 분석의 이론적 도구에 사회주의를 채용한다는 점에서 커다란 차이가 있다.

대조적인 점은, 해방신학의 영향을 받아 국내에서 1987년 ‘6월민주항쟁’까지 활발하던 민중신학이 이른바 개혁정권과 민중신학자들의 부침으로 급속히 퇴조한데 반해, 남미 국가들에서는 해방신학의 영향을 직간접으로 받은 두터운 층의 민중들이 좌파 정치세력과 결합하여 나름대로 민중적인 권력을 창출하는데 성공하고 있다.

여기에는 보프 신부 외에도 교황청을 상대로 한 구스타보 구띠에레즈와 돔 헬더 까마라 대주교 같은 해방신학자들의 노력에도 힘입은 바 크다. 바오로 6세 재임기간 중 열린 제2차 바티칸공의회(1962 ~1965)의 갱신이 끼친 영향도 빼놓을 수 없다. 공의회는 사회교리에서 교회의 정치적 무관심을 비판하면서 세상에 대한 책임을 강조했다. 특히 교회가 ‘세계의 정의’에 대해 관심을 가질 것과 ‘가난한 이들의 우선적 선택’을 역설함으로써 카톨릭교회는 흔쾌히 남미 민중들 편에 섰다. 흔히 자본, 권력과 공생관계라며 비난의 대상으로 전락하기 쉬운 교회가 남미에서는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되고 있는 것이다.



△ 엘살바도르 한 마을 벽에 그려진 오스카 로메로 대주교


한편, 바오로 6세에 이어 교회개혁으로 구·신교 일치운동을 전개한 요한 바오로 2세와 달리 요즘 오스카 로메로 대주교에 대한 시복(諡福)조차 보류되고 있는 교황청에서는 지난 시기 엄혹했던 신앙교리청 장관 ‘라칭거’ 추기경의 이미지와 함께 역사적 반동이 진행중인지 모른다. 엘살바도르 민중을 대변하다 암살당한 로메로마저 그런 대우를 받는다면, 오늘 베네딕토 16세가 한국의 정의로운 사제들이 올인하고 있는 용산참사 문제에 대해 MB에게 단 한 마디도 건네지 않은 건 특별한 일이 아니다.

최근 용산참사 현장 집회에는 야4당 공조 차원에서 금뺏지를 단 민주당 인사들이 종종 참여한다. 그런데 문정현 신부가 "9공이 10공 10공이 3공" 노래를 부를때면 "민주당 사람들이 지난 과오를 사과라도 좀 해야 모양새가 될 텐데.."라는 생각이 든다. 용산참사 앞에서 "죽은 사람은 있어도 죽인 자는 없다"며 진상규명을 외치고 있지만, 기실 이라크 파병을 강행한 노무현 정권 아래서 한미FTA협정이나 비정규악법 등으로 노동자민중들이 무려 23명이나 '죽인 자가 없이' 열사가 되었다는 기막힌 현실이 결코 남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12일 용산참사 유족들은 문제해결을 외면하는 MB를 상대로 시신을 메고 청와대로 갈 것이라고 최후통첩했다. 최근 MB는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자신의 집 한 채를 제외하고 3백억이 넘는 모든 재산을 사회에 기부한다고 발표했는데, 그에게 유독 용산참사 유족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면 이율배반이 아닐 수 없다. MB의 기부행위가 진정성을 인정 받으려면, 무엇보다 6개월간 장례를 치르지 못하고 있는 유족들의 고통부터 헤아리는 것이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도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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