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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헌국
제목

용산참사 앞에서의 삶의 고백

작성일
2009.10.10 21:49:43
IP
조회수
1,741
추천
0
문서 주소
http://mbout.jinbo.net/webbs/view.php?board=mbout_4&id=4836
아래의 글은 '호호아줌마'의 삶의 고백글입니다.

삶의 고백

한백교회 호호아줌마


앞니 하나가 깨졌습니다.
입을 닫고 있으면 그저 윗입술이 약간 함몰되었을 뿐 눈에 잘 띠진 않습니다.
그러나 입을 벌리면 영구가 따로 없습니다.
우습기도 하고 바보 같고 또 완전히 노인네 얼굴입니다.
귀가한 가족들에게 보여주었습니다.
깜짝 놀라 걱정을 합니다.
아프지 않았냐고 걱정들을 했습니다.

임플란트로 하기로 하고 임시 이빨을 끼웠습니다.
집에 있을 땐 치료를 돕기 위해 임시 이빨을 빼고 있습니다.
이빨 하나 쯤 이야 했는데 “어” 그게 그리 볼 게 아니었습니다.
우선 음식을 제대로 먹을 수가 없습니다.
간호사가 “거친 음식은 조심하세요” 할 때만 해도 “갈비 먹을 일 별로 없는데 뭐”하며 대수롭쟎게 여겼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위 앞니가 하나는 남았는데도 면발을 끊을 수가 없습니다.
저는 석 달 째 면발 끊는 건 물론이려니와 한식을 먹으면서도 양식 먹듯이 숟가락위에 젓가락으로 음식을 올려놓으며 먹고 있습니다.
음식을 빨아들이는 기능이 작동을 제대로 못하는 겁니다.
단지 앞니 하나 빠졌는데 말입니다.
아래 위가 맞는 한 쌍의 앞니가 있으니 아무 불편이 없으리라 생각한겁니다.
그런데 그 게 아니었습니다.
앞니는 두 개가 있을 때야 구실을 제대로 하는군요.

갑자기 장애인이 된 듯합니다.
비감이 듭니다.

임시 이빨을 끼워도 마찬가지입니다.
눈 가리고 아웅!
그저, 영구 같지만 않을 뿐 먹을 때는 뺀 것 보다 더 불편합니다.
임시이빨이 힘을 전혀 못 쓰기 때문입니다.
음식을 끊는 구실은 여전히 못하고 자칫 부피 있는 음식을 먹을라 치면 임시 이빨이 덜그럭 입안에서 빠지니까요.
무니만 이빨인 게지요.
특히 말하는데 불편하기 짝이 없습니다.
일단 발음이 제대로 안되고 길게 하면 말이 꼬이기 일쑵니다.
임시 이빨 때문에 혀가 제대로 말을 만들지 못하는 겁니다.

아, 이빨 하나 빠졌는데 이다지도 불편하다니!
그 많은 입 속의 24개나 되는 이빨 중에 단 한 개가 빠졌을 뿐인데 말입니다.
이대로 오래 간다면 정말 장애인이 되겠구나 싶었습니다.

그 순간,
퍼뜩 용산이 떠 올랐습니다.
아! 용산은 빠진 내 앞니다!
우리 입 속의 빠진 앞니다.
우리 4개의 앞니 중 빠진 하나의 앞니다!
빠졌지만 기둥을 세워 새로 맞추어 넣어야 할 우리의 앞니다.

용산 미사에 디닌 지 반 여년,
추적추적 검은 비 내리던 6월 20일, 그 토요일 저녁의 참담함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물론, 그 전부터 이곳에서의 폭력은 일상화되어 있었지요.
뜯고 부수고, 꺾고 비틀고, 누르고 찍고.
폭력은 항상 비겁하게도 사람들이 없는 아침 시간에 휩쓸고 지나갔고 다음날 유족의 검은 저고리 위의 흰기브스를 보고야 우린 짐작할 뿐이었습니다.
길을 따라 길게 늘어 선 차벽들은 웅웅거리고 그 모습만으로도 섬뜩한 방송차의 경고 방송은 미사와 함께 시작되었습니다.
그 소리는 어찌나 큰지, 아이고 하느님이 우리의 기도를 들으실 수나 있을까 싶었습니다.
그렇쟎아도 큰 길 가라 매연에 숨이 콱콱 막히는데 전경차는 무리지어 하루 종일 매연을 내 뿜어, 단식하시는 신부님들의 목숨이 염려스러운 날들이 계속되고 있었지요.

그러던 그 날, 6월 20일. 저녁
용산은 이미 시작 전부터 극도의 긴장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유족들은 소리 없이 영정을 든 체 길바닥 물속에 앉아 있었고 추적추적 내리는 비속에 제의 차림의 신부님은 입을 굳게 다문 체 유족 옆을 서성이고 계셨지요.
미사참석자 보다 몇 곱절은 더 많던 전경들은 겹겹으로 열 지어 군화 발 척척척, 비 젖은 땅을 울리고 구호를 외치며 위협했습니다.
솔직히 경고방송 소리에 신부님의 강론 말씀도 흔들렸습니다.
갑자기 겹겹이 둘러 싼 전경들 벽 안쪽에서 퍽퍽퍽 소리와 함께 비명소리가 터졌습니다.
이제 폭력은 시선이 겁나지 않게 된 게지요.
신부님들은 제의를 벗었고 미사를 중단했습니다.
전경들의 벽 바로 뒤에서 저는 몇 번 소리만 질렀을 뿐 아무 것도 한 게 없었습니다.
나이를 생각해서 나서지는 말라던 아이들의 당부가 아니더라도 소심한 내가 하는 일이란 게 미사에 참석하는 것 뿐, 나는 채증하는 카메라에 고개 숙여 피했고
젊은이들은 바퀴벌레라고 비웃었지만 머리에서 발끝까지 그 시커멓게 몸을 부풀린 전경들의모습에 솔직히 공포를 느꼈으며 척척척 발맞추며 소리치는 구령에 위협을 느꼈습니다.
여전히 전경들 벽 안 쪽에서 일어나는 일이 걱정되었지만 속으로 그냥, 신부님들더러 가시라 가시라 떠밀었을 뿐. 발길을 돌렸습니다.
그래도 뒤가 염려되니 주저주저, 흘깃흘깃, 이게 제 모습이었습니다.
부끄러웠고 미안했고 그리고 이 모든 것들에 참담함을 느꼈습니다.
신부님은 실신하고 엠블란스는 달리고 유가족의 부러진 팔은 또 부러지고.

이건 도저히 사람이 사람에게 할 짓들이 아니었습니다.
내가 먼저 쓰러져 버렸습니다.
검은 용산을 마주할 힘을 잃었습니다.
보고 싶지가 않았다는 편이 옳습니다.
용산은 피하고 싶은 고통이었습니다.
며칠을 앓는다 핑계를 대었고 그리고 비실비실 다시 용산으로 왔습니다.
세워야 할 내 앞니가 거기 있었으므로.

이빨 깨진 지 석 달
처음에 볼 때 마다 걱정하고 위로하던 가족들이 이젠 영구같은 내 모습에 웃지도 걱정도 않습니다.
엄마 늙어 보인다고 안타까와하지도 않습니다,
“엄마 언제 해 넣지?” 묻는 일도 없어졌습니다.
그냥 제 모습이 되어버린 겁니다.
그냥 일상이 되어 버렸지요.

용산도 그렇게 여름이 가고 더위도 가고. 더위도 가면서 차벽도 갔습니다.
전경들도 가고 위협방송도 사라졌습니다.
그 옆을 버스들은 무심히 지나고 미사 중에도 행인들이 핸드폰을 귀에 댄 체 유유히 옆을 지나갑니다.
일견 긴장이 풀어진 듯도 보입니다.
그래도 절대 그냥 두지 않겠다는 듯이 한차례씩 폭력은 또 휩씁니다.
용산역을 나와 남일당이 보이는 모퉁이를 돌라치면 긴장이 됩니다. 행여나 또 폭력이 휩쓸었을까봐서요.
아침마다 신문을 펼칩니다.
행여나 밤새라도 해결이 되었나하구요.

남일당 골목 사이로 우뚝, 하늘 높이 서 있는 주상복합의 실루엣이 꿈결 같습니다.
쳐다보면, 남일당이 현실인지 환상인지 언뜻 헷갈립니다.
아마도 저들은 이러노라 보면 우리가 빠진 앞니 용산에 익숙해져 거울을 보지 않은 체 살아가리라 생각하나 봅니다.

그러나 틀렸습니다.
우리는 이제 서로 마주 보게 되었습니다.
서로 마주 보기만 하면 앞니가 빠진 건 금방 알아버립니다.
그리고 그 빠진 앞니가 바로 내 앞니인 줄도 우린 깨달아 버렸습니다.
우리는 이제 빠진 용산의 앞니가 세워지지 않으면 내 앞니도 힘을 쓰지 못함을 알아버렸습니다.
우린 이미 큰 폭력이 휩쓸수록 다음 날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모습을 보았고
부러진 유가족의 팔도 붙었고 폭력으로 갈갈이 찢겼던 신부님의 저고리가 예쁜 퀼트 저고리로 완벽하게 새로 태어나는 것도 보았습니다.
하루도 빠짐없이 미사와 예배는 계속되고 우리가 이렇게 용산엘 나오는 한, 머지않아 우리의 빠진 앞니 용산은 반드시 튼튼히 다시 세워지리라 믿습니다.

임플란트 값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의사선생님이 대폭 깍아 주었습니다.
가족 적용가랍니다. 훨씬 가쁜 해졌습니다.
그러고도 의사선생님은 많이 못 깎아주어 미안하데네요.
세상에서는 이런 거래도 있더군요.

남일당 뒤 높은 주상복합건물을 바라보며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저 중에 두어 층, 아니 어쩌면 단 한 개 층만 내 놓아도 문제는 끝일텐데!
이 좁은 땅위에 저 만큼 올라가면 정말 거 굉장하쟎아!
그럼 쬐끔만 나눠도 되쟎아요?
나눠서 몫이 적어져 싫거들랑 그럼,
이명박 대통령님!
한 층만 더 지으라고 그러세요!
그럼 별 지장 없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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