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한국교회 인권선언
올 1월에 발생한 용산철거민 참사는 아직도 끝나지 않고 지속되고 있다. 또한, 쌍용자동차 평택공장 사태를 비롯한 비정규직의 양상과 미디어 법의 통과에서 나타난 불법과 공공영역의 사유화 문제 그리고 사회곳곳에서 일어나는 국가 권력의 폭력성은 심각한 상태이다. 이는 정의와 인권의 기준이 점점 간과되는 야만의 시대로의 회귀를 목도하게 하고, 공포와 불안감을 가져다 주고 있다.
“한 생명을 온 세상보다 더 소중하게 여기신” 주님의 뜻(마태 16:26)은 사라지고, “재물을 하나님으로 섬기는”(마태 6:24) 물질 우상화는 지속적 경제성장이란 속된 논리 속에서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있다. 권력과 재물은 인간의 탐욕과 이기심을 극대화시키는 도구로 사용되어 지구 생태계의 위기를 직면케 한다. 이런 때에 우리에게 시급한 것은 ‘긍휼과 진리가 같이 만나고, 의와 화평이 서로 입 맞추게 하는’(시편 58:10) 평화 세상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이에 우리는 한국 사회에 나타나고 있는 인권 쟁점들에 대한 입장을 세계인권선언 기념일(12월10일)을 앞두고 다음과 같이 밝힌다.
1. 용산철거민 참사에 대한 정부사과와 국가보상, 장례문제는 조속히 해결되어야 한다.
용산 4지구 철거민 5명의 사망사건은 분명 경찰의 과잉진압에서 비롯된 것으로서 이명박 대통령의 공식적 사과가 만시지탄이지만 있어야 한다. 재개발 과정에서 벌어진 철거민들의 생존권 요구를 대화와 타협 없이 무모하게 수십 명의 경찰 특공대를 투입시킨 결과로 인해 화재 발생과 6명의 소중한 희생자가 발생한 사건이기 때문이다.
11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희생자들에 대한 장례 절차를 밟지 못하고 있는 가슴 아픈 현실을 직시하면서, 우리는 정부 책임자의 사과와 국가 보상, 미공개 수사기록 3,000쪽의 공개, 유가족들의 생계 대책 등을 조속히 정부가 이행함으로써, 주검에 대한 국가적 국민적 예의를 하루속히 갖출 수 있기를 바란다.
2. 쌍용자동차 사태를 비롯한 비정규직 문제의 근본 해결을 위해 비정규직의 최소화, 동일노동 동일임금 정책의 확립을 요구한다.
평택 쌍용자동차 사태는 지난 5월 시작되어 77일간 노조의 처절한 투쟁이 있었지만 다행히노사 간 대화로 극적 타결이 되었다. 그러나 노동자들의 대량 해고로 겪는 일은 경제적⦁ 정신적 고통과 가족해체까지로 이어지고 있다. 그 외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비정규직 문제는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일이다. 구조조정의 일순위인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권 보장을 위해, 정부는 기업 회생을 지원하는 방안을 적극 모색하고, 노사분규로 인한 법적 처벌 등은 최소화 해야 한다. 또한, 정부 당국은 비정규직의 수를 줄이고, 동일노동 동일임금 등의 근본적인 대책을 조속히 마련해야 할 것이다.
3. 언론의 공공성을 상실케 하는 미디어 법은 폐기되어야 한다.
지난 7월 22일 여당의 날치기로 통과된 신문법, 방송법, IPTV 등 ‘미디어 법’에 대해서 헌법재판소도 대리투표, 재투표 등 위헌 소지가 있다고 판정했다. 그러하다면, 국회는 ‘미디어 법’이 국민 여론의 다양성을 확보하고, 공정보도와 언론의 공공성을 실현하고, 국민간의 소통을 이어갈 수 있는 방안을 법으로 보장해야 할 것이다. 일부 대형신문과 재벌 기업이 방송에 참여하여 정권 안보와 지속적인 집권을 위한 우호적 미디어 환경을 조성함으로써, 공적 기능을 사유화 하려는 것은 민주주의의 원칙에 반하는 것이다. 국회는 국민의 자유 신장과 민주주의 발전에 합당한 미디어 법을 새롭게 만드는 일에 적극 협력해야 한다.
4. 현 정부는 아프간 전투병 파병을 철회하고, 아프간 국민들이 진정 원하는 평화공동체 만들기에 적극 나서 주기 바란다.
아프가니스탄 주둔군은 유엔의 결의에 따라 지역분쟁 종식과 평화 수립을 위해 파견된 평화유지군이 아니다. 한국 정부가 아프가니스탄 지방재건팀(PRT)과 이를 보호하기 위해 전투병 300~350명 정도를 파병하려는 계획은 한국군을 실제로 다국적군에 편입시켜 점령군으로 만들 가능성이 높다. 한미동맹 관계가 한반도의 평화를 목적으로 해야지, 한국군을 세계 분쟁지역에 일어나고 있는 ‘불의한 전쟁’에 침략군으로 전락시켜서는 안 될 것이다. 그곳에 그리스도의 평화는 없기 때문이다. 국회는 이번 전투병 파병을 결코 비준해서는 안 된다.
5.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 인정하고, 대체복무제 허용하여 민간안보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지난 7월 모 대학 신과대학생이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결행했다는 이유로 현재 영어의 몸이 되었다. 이는 작년에 한국 정부가 유엔인권이사회의 회의에서 2009년 1월부터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와 대체복무제 관련 시행 법안을 마련하겠다는 국제사회의 약속을 파기한 결과이다. 한국 사회는 반세기 이상 종교적 양심에 따른 집총 및 군사훈련 거부로 인해 1만여 명의 젊은이들이 전과자가 되었고, 지금도 한 해에 500여 명이 실형선고를 받고 감옥에 가는 반인권적 현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부 당국은 2000년에 결의한 “국제인권 시민․정치적 권리규약”의 결의에 따라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하고, 대체복무제를 통한 다변화된 사회의 민간안전망을 구축함으로써 비폭력 평화, 복지사회를 지향하는 국가 공동체를 구현해 주기 바란다.
6. 국가정보기관의 민간인 사찰은 즉시 중단하고, 국가보안법은 조속히 폐지해야 한다.
최근 기무사가 모 정당의 회원인 민간인을 집중 사찰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는 1990년에 보안사의 민간인 사찰에 대한 양심선언을 떠오르게 한다. 이는 소위 공안세력들이 국가보안법을 앞세워 지속적으로 조작된 정국을 만들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본다. 이에 국가보안법 재정 60년을 넘긴 작금에, 반민주 반통일 반인권 악법의 상징인 국가보안법을 폐지시킴으로써 우리나라가 이념적 갈등을 극복하여 진정한 민주국가, 참 평화와 통일을 지향하는 국가의 초석이 만들어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국가보안법 폐지 없이 이 땅에 진정한 민주사회와 평화통일을 언급하는 것은 위선일 뿐이기 때문이다.
7. 사형제도는 폐지하고, 사형집행은 중단되어야 한다.
올해로 우리나라는 사실상 사형폐지국이 된 지 2년째가 된다. 헌법재판소에서는 사형제도의 위헌여부에 대해 오는 12월 말경에 최종 판결을 내릴 예정이다. 지난 20여년 동안 우리나라에서는 기독교가 중심이 되어 범종단들이 연합하여 사형폐지운동을 기본적 인권인 ‘생명권’ 보장 차원에서 전개해 왔으며, 사형제를 ‘사법 살인’이라고 주장했다. 18대 국회에서도 박선영 의원과 김부겸 의원이 사형제폐지법안을 제출해 놓은 상황이다. 현재 사형수 60명에 대한 집행을 일단 중지하여 ‘사실상 사형폐지국’을 유지하면서, 금번 18대 국회가 ‘인간 생명’에 대한 국민적 의식전환이 가능하도록 사형제 폐지법안을 통과시켜 주기를 촉구한다. 또한, 헌법재판소가 사형제 위헌 소송에 대해 지혜롭고, 상식적이며, 인간성을 느낄 수 있는 명판결을 간절히 바란다.
우리는 모든 사람들이 억압과 공포로부터 자유로운 삶을 살아가는 세상, 즉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때까지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명하신 선교 사명을 다해 나갈 것이다.
2009년 12월 10일
대강절 둘째주일
NCCK 인권주간연합예배 참석자 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