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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영일
제목

용산참사 유가족들, 23일 저녁 용산현장에서 추모제 가져

작성일
2009.02.28 17: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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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참사 유가족들, 23일 저녁 용산현장에서 추모제 가져
경찰과 용산구청, 영정사진 짓밟고 현수막과 걸게그림 강탈

2009.02.25 17:27:31 - 이영일

지난 23일 저녁, 용산 한강로 남일당 건물 앞에서는 용산참사 추모대회가 열렸다. 100여 명 안팎의 적은 수의 시민들과 유가족, 철거민들이 삼삼오오 모여 촛불을 들었다. 이 자리에서 철거민대책위 소속의 유한나씨는 “유가족들이 30여일이 지나도록 끊임없이 촛불을 들고 꿋꿋하게 지켜가고 있다”며, “이 나라에 인권이 있는지 묻고 싶다”고 말문을 열었다. 자신은 사고 당일 고인들이 어떤 죽음을 맞았는지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며, 그것은 구조가 아니라 죽음이었다고 말했다.

그들은 가장 기본적인 생존권을 위해 망루에 올라갔지만, 끝내 죽음으로 내려왔다고 전했다. 그는 “오늘 월요일 오전 전경과 정보과가 합세해 현수막을 철거하고, 사진을 찍는 용역을 붙잡자, 팔과 다리를 비틀고 가슴이 찢긴 후 30분간 떨었다”고 전했다. 경찰 구조대는 어디 있었느냐며, 가진 자 만이 사람인 이 세상이 너무 슬펐다고 말했다.

그는 시민들이 가져다 준 땔감도 경찰의 보호아래 용산구청 직원들이 강탈해 갔다고 전했다. 이 과정에서 이를 저지하던 80세의 할머니가 방패에 팔을 부딪혀 멍이 들었으며, 다른 동료도 실신하여 쓰러졌다고 전했다.

그는 시민들이 모인 이유는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위해서 권리를 요구하기 위해 모인 것이라며, 현재의 잘못된 개발법이 계속 시행된다면 시민의 50-80%가 쫒겨나게 될 것이라며, 이 잘못된 개발법을 꼭 고치겠다고 말했다.

그는 28일 청계광장에서 있을 10만 민중대회를 꼭 잘 치루자고 독려했다.

또 기독교 대책위의 최영모 목사는 “다섯 분의 영령앞에 부끄럽고 죄송한 마음이라며, 하늘 아래 두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고 말했다. “한 쪽은 엄청난 추모의 행렬이 이어지고, 도 다른 한 쪽에서는 경찰의 살인폭력으로 희생당한 억울한 죽음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금요일 용산 현장에서 가진 추모집회에서 경찰이 유가족의 영정이 짓밟히는 폭력을 또 다시 자행했다”으며, 토요일에도 또 다시 경찰과 용역의 폭력와 폭행이 일어난 것은 안타까운 일이라고 분노했다.

그는 참사이후 지금까지 자유로운 촛불집회를 경찰이 한 번도 허락하지 않았다며, 내일은 기독교회관 앞에서 시국 기도회를 강행할 것이라고 전했다.

곧이어 천지인의 전 맴버인 엄광현씨와 그의 아내가 함께 앞으로 나와 기타와 아코디언을 연주하며, 쇼스타코비치의 왈츠, Rocking on Heaven's Door 등의 노래를 불렀다. 그는 작년 9월 이후 촛불 집회를 이어가기 위해 보신각 앞에서 거리공연을 계속해 오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진 자유발언에서 고 2학생인 ‘캔들보이’는 이 땅의 민주주의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 많은 분들이 모였다며, 비정규직 차별하지 말고, 가진 것 없다고 차별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80세의 한 노인은 300명이 조금 못되는 우리나라 국회의원들은 도데체 어떤 집단니냐며, 유모 국회의원이 전경에 맞아서 2주 진단을 받았는데도 사법절차 조차 진행하지 않고 있다며, 국회의장은 눈을 감고 있는 듯하다고 말했다.

없는 서민들이 밥 좀 먹고 살자고 거리로 나오는데, 경찰은 “당신은 불법집회를 하고있다”고 한다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며,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대한민국 헌법을 기억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촛불시민넷’이라고 밝힌 남성은 용산 참사현장에 처음 왔다면서, 이 자리오니, 경찰의 발표가 사기라는 것을 알겠다고 말하고, 몇 되지 않은 유가족들이 촛불을 들었다고 엄청난 수의 경찰이 막아서고 있다는 것은 저들의 발표가 사기고 조작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명박 정권이 물러나도 이 책임을 끝까지 물어야 한다며, 300만 400만이 거리로 내몰리는 상황에서 철거민의 정당한 생존권을 요구하자 목숨까지 짓밟는 정권이라면 노동자와 많은 서민들이 합세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덧붙였다.

이어서 사회자는 지난 주 금요일 참사가 일어난 지 30일 째 되는 날 문화 예술인들이 용산 현장에 모여, 25미터 걸게 그림을 그려 붙여놓았는데, 다음 날 용역, 용산구청, 경찰이 함께 뜯어냈다며, 저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우리들의 따뜻한 마음, 연대하는 마음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꿈꾸는 사람은 지지 않는다, 꿈이 없는 사람이 패배할 뿐이라며, “1달이 넘도록 장례조차 치루지 못하는 아픔과 울분을 가진 사람들에게 경찰이 고인들의 영정사진을 짓밟는 짓을 서슴지 않고 있다”고 분노했다.

기륭전자의 투쟁을 함께 해온 시인이라고 소개된 송경도 시인이 시를 낭독했다.


너희가 누구인지 그때 알았다.

모두가 잠든 새벽녘,

-중략-

국민의 밥상에 독이든 고기를 올려놓겠다고 했을 때,

자연을 죽이겠다고 했을 때,

교육의 장을 시장으로 만들겠다고 했을 때,

뉴타운을 지어 가난한 자를 몰아내기로 했을 때,

촛불을 콘테이너 산성으로 막고 귀 막았을 때,

인터넷을 재갈을 물리기 위해 압수수색을 했을 때,

미포조선 100미터 첨탑 위로 올라가는 음식물의 줄을 끊을 때,

용기만 있으면 죽어보라고 사주할 때,

열사들의 목을 치고, 890만 비정규직 노예목숨도 부족해,

-중략-

알았다. 너희는 만인을 죽음으로 내몬 살인정권이라는 것을,
더럽고 추악한 파쇼 정권이라는 것을,

이제 양심의 촛불에 다시 불을 당긴다.
더 이상 물러설 곳도 없어, 하늘로 하늘로 오르는 계단처럼,
망루를 쌓던 열사여,

-생략-

7시 경 시작된 집회는 9시경 마감하고, 집회 참가자들은 해산한 후 다시 용산 현장에는 30 여명의 유가족, 철거민, 자원봉사자들만이 남았다.

현장에 있던 ‘희망’이라고 밝힌 분은 “지난 토요일 경찰과 용산구청직원들, 용역들이 걸게그림을 떼어 갔으며, 월요일 오전 10시에는 플랭카드를 모두 자르고, 오후 2-3시에는 시민들이 가져다 준 쌓아놓은 뗄감을 모조리 가져갔다”고 전했다.

또 “미스터 김”이라고 밝힌 한 시민은 민중의 지팡이가 되어야 할 경찰이 국민의 세금을 먹으며 깡패짓을 하고 있다고 개탄하며, 이명박 정권은 노무현 정권의 부정부패를 그대로 물려받은 것 뿐이라고 했다. 그는 정부와 국회는 어떻게 하면 국민의 돈을 뺏어 먹을까 하는 고민밖에 하고 있지 않다며, 명백한 “사기집단”이라고 분노했다.

그는 이명박 정권이 촛불시위 때 그렇게 많은 시민들을 폭행했으면서도 폭행당한 사람들의 집계조차 내 본 적이 없으며, 언론인들도 병원까지 따라가서 어떻게 시민들이 다치고 치료받았는지 관심갖지 않았다며, 주류 언론인들은 ‘정권의 간첩, 스파이, 하수인’일 뿐이라며, 정권과 언론에 대한 깊은 불신을 나타냈다.

지난 몇 주 동안 참사현장을 들러 이곳을 지키고 있는 철거민들과 유가족들을 만났다. 이번 참사는 물질만능주의 경제정책의 파국을 보여준다. 물질 앞에서 생명을 하찮게 여기는 시대 풍조에 자신의 모습을 돌아볼 때이다. 그리고 유가족들과 철거민들을 지원하는 단체들도 진심으로 이들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스스로 민주적인 소통구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사고 책임자들이 유가족 앞에 사과하고, 구속자들을 석방해야죠”
유가족, 철거민들과 용산 현장을 지키는 자원봉사자 권모씨

참사 하루 전날 철거민들을 지원하기 위해 나왔다가 사고를 목격하고 이후 계속해 현장에서 철거민들을 돕고 있는 권모씨를 만났다. 조립식 판넬 제작일을 하는 권씨는 “놀고 있는 중에 도와주자”는 마음을 먹고 사고가 나기 하루 전 날 철거민들을 지원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 현장에 나왔던 것이 여기서 한 달을 머물게 되었다고 했다.

용산현장에서 철거민들과 유가족들과 함께 가족처럼 지내고 있는 그는, 또 다른 자원봉사자와 함께 주야로 돌아가며 철거민들을 지원하고 있다.

처음 어떻게 오게 되었나요?

민주노총 서울지역 본부에 아는 분이 이 분들을 지원을 해 주면 좋겠다고 해서, 오게 되었습니다.

사고 당시 상황을 설명해 주십시오.

사고 당시 경찰들이 길 건너편에 있는 현대자동차 대리점과 안경나라 상점 사이 골목에 철거민들을 몰아넣고, 앞 뒤로 샌드위치처럼 막고 있었어요.

저는 19일 오후에 도착해 밤을 새고 새벽까지 있었습니다. 저 안에 사람이 있는데 도와주도 못하고, 그 심정은 이루 말 할 수 없어요. 하지만 당시 용역들이 2-3겹으로 둘러싸고 있어서 꼼짝도 할 수 없었어요.

전철연 회원들은 망루에 불이 붙자 펄펄 뛰고 난리였어요. 그래도 용역 경찰들이 꿈쩍도 안 해요.

망루에 올라간 분들을 만나셨나요?
아니요, 저는 대치 상황 이후에 도착했어요. 이분 들은 19일 오전에 망루에 올랐고, 저는 19일 오후에 왔어요.

자원봉사자들은 얼마나 되나요?
처음에는 많았는데, 이후에는 두 명 밖에 없었어요.

가장 힘든 것은 무엇인가요?

비가 오거나 날씨가 추운 것이 제일 힘들지요. 그리고 지난 주 금요일 분향소를 건물 안 쪽으로 이동한 후, 계속 경찰이 꼬투리를 잡고 하루에도 3-4번씩 마찰을 빚기도 합니다.

정작 분향소를 이동하라고 지시한 범국민대책위(이하 ‘범대위’)는 그런 일이 생기면, 지원하지 못하고 있어요. 여기에는 고작해야 할머니, 할아버지, 여자 분들이 다예요. 오늘도 땔감을 빼앗아 가는 것을 막다가 맞은 사람, 팔이 부러진 사람들이 생겼어요. 할머니 한 분이 팔목을 다쳤어요. 이렇게 몸싸움이 계속 나면 몇 일을 버틸지 모르겠어요.

원래 분향소는 한 번 설치하면 손을 못 대게 되어 있어요. 그런데, 범대위에서 그런 결정을 하고, 철거민들과 유가족들이 반대했지만, 위에서 하는 지시니 ‘따르라’고만 했어요. 용산 경찰서 경비과장 조차도 몰랐다고 하더라구요

그들은 붕괴 위험이 있으니, '나와라'고 하고, 우리는 ‘그럼 건물 안에 있는 경찰들은 뭐냐, 파리 목숨이냐’고 대꾸했어요.

몸싸움이 나면, 급하게 전화하면, 전철연 중앙회도 범대위측도 “막고만 있어라”라고 하지 지원 나오는 사람들이 없어요.

전에는 여기를 지키는 철거민들과 유가족들이 천막에서 잠은 제대로 자고 했는데, 경찰이 상주하고 나서부터 이제는 잠도 충분히 자지 못해요. 이대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앞으로 어떻게 되었으면 좋겠어요?

사고 책임자들이 전철연, 유가족 앞에 사죄하고, 철거민 구속자들을 석방해야지요. 용역은 모두 불구속 석방이 되었어요. 유족 철거민들 모두 똑같은 심정이예요.

여기 계신 어머니들이 필요한 게 무엇일까요?
생수, 김치, 쌀, 세면도구 등 이예요.

(월요일 저녁 촛불집회가 끝나고, 분향소 근처에 있던 철지난 유인물들을 누군가 폐지 수집하는 어른에게 넘겨주고 있었다. 그리고 권씨는 “왜 그 유인물들을 치우냐?”고 이의를 제기했다.)

왜 그 전단지들을 치우려고 하는 거죠?

저도 모르겠어요. 아까운 전단지를 그냥 두면, 어머니들이 시간나면 용산역에 가서 거리 홍보도 하고 그러세요. 아무리 시간이 지난 전단지라도, 그 안에 유가족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잖아요.

http://migrantsinkorea.net/?document_srl=63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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