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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태 칼럼] 정의란 강자의 이익이다

작성일
2010.11.22 22: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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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신문 2010.11.22 기사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449863.html

 

[김형태 칼럼] 정의란 강자의 이익이다
 
 
 
한겨레  
 
 
» 김형태 변호사
 
목백일홍에 분홍빛 작은 꽃들이 수없이 매달려 있던 지난 봄날. 훈련소 가는 아들 녀석은 마당가 그 나무 아래서 제 여자친구와 작별의 포옹을 했다. 이제 그 연분홍빛 봄도, 짙푸른 여름이며 가을도 다 가고, 잎 떨어져 앙상한 가지만 하얀 속살을 드러내고 서 있다. 엊그제 휴가 나온 녀석의 모자에는 작대기가 두 개나 붙어 있다. 오래전 중위 계급장 달고 군생활 할 땐 눈에 보이지도 않던 일병 계급장이 이제는 내게도 새삼 자랑스럽다.

“수고론 우리의 길이 다하는 날, 플라타너스. 너를 맞아줄 검은 흙이 먼 곳에 따로 있느냐?” 시인 김현승은 이렇게 물었다. 아들 녀석도, 살아있는 모든 것들이 걷고 있는 수고로운 삶의 길, 수고로운 이병, 일병의 길을 걷고 있다. 어제 한 아버지가 찾아왔다. 그 아들도 꽃피던 지난봄 군에 갔다. 하지만 여리디여린 성격에 커다란 상처를 입고 그만 군병원 창문에서 스스로 몸을 던졌다. 일기에는 여러 장에 걸쳐 “사각사각, 뿌드득뿌드득, 빠각빠각”이라는 글자들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군은 이 처절한 아우성에 눈감았다. 그 일병은 만 스무살 꽃 같은 나이에 수고로운 삶을 마쳤다. 그가 5주 훈련을 마쳤을 때 이미 병원에서 군생활 적응이 어렵다는 판정을 내렸다. 그런데도 그를 가족들에게 돌려보내지 않고 그린캠프라는 곳에 따로 떼어내 심리적 압박을 더했다. 그의 죽음에 정면으로 책임진 이는 아무도 없다.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의 소재가 되었던 김훈 중위의 죽음도 그렇다. 영구미제 사건이다. 아버지는 그 전에, 바로 아들이 소대장을 하던 전선을 책임졌던 별 셋의 군단장이었다. 그는 군단장으로 위에서 내려다보던 군대와, 아들을 잃은 아버지로서 올려다보는 군대가 전혀 다른 모습이라 했다. 일병도 이병에게는 강자다. 강자일 때 약자들의 처지와 고통을 헤아려주는 게 현실에선 쉽지 않아 보인다.

“정의”를 팔아 밥 벌어먹은 지 수십년. 정의가 무언지 점점 모르겠다. 정의란 강자의 이익이라는 소피스트들의 주장에 한 표 던지고 싶다. 아닌 건 아니라며 독배를 마신 소크라테스도 있긴 하지만, 기나긴 역사에서 강자들은 늘 자신의 이익을 정의라 선포했다.

용산참사 대법정은 여기가 우리 사회가 마지막으로 기댈 공정한 곳이니 결과에 승복하라고 했다. 이 사건의 본질은 대자본이 수조원대 개발이익을 위해 공권력을 동원해 평범한 서민들과 말단 경찰관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거다. 재판부는 강자인 자본과 공권력의 편에 섰다. 하긴 거대자본이나 정치권력의 이해가 걸린 사건치고 강자의 이익을 거슬러 결론이 내려진 적이 거의 없긴 하다. 경찰 진입 당시 망루 안에는 발전기용 세녹스 가스가 가득 차 있었다. 삶의 터전에서 억울하게 쫓겨나지 않고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망루에 올라간 할아버지, 아저씨, 아줌마들이, 그 반대로 저 죽으려고 화염병을 안으로 던졌을까.

망루 안으로는 던지지 않았다는 진압경찰들 증언도 여럿이다. 불과 2m 위쪽에서 화염병이 던져졌다면 이를 못 보았을 리 없다. 망루 정면 동영상을 보면 불똥이 4층 지붕 처마밑에서부터 모서리를 타고 아래로 흘러 1층에서 불이 났다. 4층 바닥에서 3층 계단을 통해 아래로 화염병을 던졌다는 판결과는 전혀 다른 양상이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도 당시 꽉 차 있던 세녹스 가스에는 옷의 정전기 1000분의 1만으로도 불이 날 수 있다고 했다. 검찰이 공개를 거부했던 수사기록에서 경찰 지휘부들은 당시 망루 내 상황을 알았더라면 진압을 계속하지 않았을 거라며 과잉진압을 시인했다. 공명심에서 무리한 진압을 한 것 같다는 진술까지 나왔다. 그런데도 재판부는 이를 정당한 공무집행이라 판단했다.

더 할 말이 없다. 역시 정의란 강자의 이익인가 보다. 그래서 약자들은 함께 모여 강자가 되는 수밖에 없는가 보다. 그래서 역사는 영원히 싸움의 연속인가 보다. 그래서 우리의 삶이 참으로 수고스럽다.

이 수고로운 삶이 끝나는 날 우리를 맞아줄 검은 흙이 먼 곳에 따로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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