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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규현 신부님, 수경 스님 오체투지에 들어가시며 쓰신 말씀

작성일
2009.03.28 10:4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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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mbout.jinbo.net/webbs/view.php?board=mbout_6&id=162
용산참사 희생자들에게 사죄의 길을 갑니다. 미안합니다. 이명박 정권의 역주행 정치는 화에 화를 부르며 메마름의 사회를 만들고 있습니다.

 

 

소걸음으로 천리 길. 다시 느릿느릿 우보천리(牛步千里) 오체투지 기도의 길을 떠납니다. 생명의 기운으로 천지가 들썩이는 이 봄날, 우리도 추운 겨울 잘 이겨낸 애벌레처럼 다시금 길에 눕습니다. 겨울 지나 봄이 오면 눈물은 씻기고 고통은 위로받으리라, 절망은 희망이 되리라 했습니다. 허나, 그 모든 기대와 소망은 여지없이 난도질당하고 용산참사라는 야만적인 사건까지 더해 새해를 시작해야 했습니다.

 

비이성적인 개발주의 광풍, 돈에 눈먼 탐욕과 무자비함의 절정이자, 그로 인해 줄지어 파괴되고 죽어가는 모든 존재들의 비극을 상징하듯 이 대명천지에 우리 좀 살려 달라고 애처롭게 외치던 가난한 사람들이 불타 죽었습니다.

 

참담하고 또 참담합니다. 인간의 양심과 선함은 무엇이고, 사랑과 자비는 또 무엇입니까? 도덕은 무엇이고 지성은 무엇이며, 운동은 무엇이고 진보는 또 무엇입니까? 진리는 무엇이고 수행은 무엇이며, 천국은 무엇이고 정토불국은 또 무엇이란 말입니까?

 

용산참사 희생자들에게 사죄의 길을 갑니다. 미안합니다. 참으로 미안합니다. 상처 입고 고통 받는 모든 존재들을 위해 온몸 드리어 기도의 길을 갑니다.


이명박 정권의 역주행 정치는 화(火)에 화(火)를 부르며 메마름과 불임의 사회를 만들고 있습니다. 권력을 사유화하고 국민 알기를 사기업 부하 정도로 업신여기며 막 대하는 이 정권은, 국민들이야 누르면 누르는 대로 굴복하고 위축되리라 믿는 것 같습니다.

 

허나, 화무십일홍, 그 모든 것은 저들의 헛된 꿈일 뿐입니다. 하물며 하는 일마다 하는 말마다 국민 마음에 쾅쾅 대못질을 해대는 정권인 바에야 더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우리 국민은 유신 독재정권도, 국민을 학살하고 집권한 군사정권도 모두 물리쳐 왔습니다.

 

소걸음처럼 느리고 아스팔트에 나선 애벌레처럼 미욱하게 사람의 길, 생명의 길, 평화의 길을 간청합니다. 이번 오체투지 순례 길은 북녘 묘향산까지 향합니다. 남과 북이 극단적 불화와 불통, 불신의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상황이기에 더더욱 가기를 소망합니다.

 

딱 20년 전 1989년 8월15일, 당시 임수경 학생과 함께 남북 분단 이후 처음으로 판문점을 통과해 남으로 돌아왔던 때를 돌아봅니다. 남쪽으로 넘어선 순간 총구가 겨눠지고 감옥살이가 수순이었지만, 화해와 상생의 단초를 만들었다는 기쁨에 기꺼이 그 가시밭길을 올 수 있었습니다. 이제는 남에서 북으로 가보고 싶습니다. 이렇게도 갈 수 있고 저렇게도 올 수 있는 그런 소통과 화해, 상생의 길을 다시 간절하게 소망하고 소망합니다.

 

하여, 우리도 꿈꾸고 희망하기를 계속해야 합니다. 길을 막아선다고 포기하겠습니까. 사랑하고 헌신하기를 멈추는 그 자체가 이미 죽은 삶이기에, 우리 자신 산 사람이고자 한다면 이 길을 갈 것입니다. 온 생명이 눈부시게 피어나는 이 아름다운 계절, 스스로 대지에 몸을 누여 썩어가는 씨앗처럼 가렵니다.

 

 

<문규현 천주교 전주교구 평화동성당 신부>

 

 

 


 


전국토를 공사판으로 만들어서 일시적 경제 위기를 넘기면 청년실업, 비정규직, 빈부 대물림이 해결될까요? 삶의 방식을 바꿔야 합니다

 

 

누구에게나 꿈이 있습니다. 그 꿈의 궁극은 ‘행복’일 것입니다. 나도 행복해지기 위해서 출가를 했습니다. 하지만 행복하지 못했습니다. 부처님 가르침대로 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여 나는 ‘환계’(還戒)의 심정으로 오체투지의 길을 떠납니다. 저의 허물을 제대로 보고 참회의 기도를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건 ‘돈’을 찾아 헤매는 벌거벗은 욕망입니다. 모두가 죽겠다고 아우성입니다. 과연 그렇습니까? 지금 우리가 느끼는 위기는 모두가 강남에 최고급 아파트를 사고, 모든 아이들이 국제중, 특목고, 명문대에 진학해서 대기업에 취직해야만 해결될 성질의 위기입니다. ‘욕망의 위기’입니다. 이명박 정부가 전국토를 공사판으로 만들어서 일시적으로 경제위기를 넘기면 청년실업, 비정규직, 빈부 양극화, 빈부의 대물림 문제가 해결될까요?

 

지금 우리 사회는 ‘위기의식’만 팽배할 뿐 위기의 원인에 대한 ‘문제의식’이 없습니다.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금도도 없습니다. 진짜 위기는 바로 이것이 아닐까요. 진보와 보수, 여야, 대통령과 국민 모두가 서로를 속이고 있습니다. 청년실업 문제는 이명박 대통령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모든 대학이 모든 학생들에게 최고의 경쟁력을 갖추게 한다고 해도 결과는 현재 상태와 다를 바가 없을 것입니다. ‘더 벌어서’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 삶의 방식과 규모의 조정을 통해서 삶 자체를 재편하지 않으면 해결할 수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모든 국민을 ‘부자 만들어 준다’고 한 이명박 대통령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고 비판을 합니다. 낯간지러운 일입니다. 서로 속이지 않았습니까? 어차피 지킬 수 없는 약속이라는 걸 알았으면서 이제 와서 비판을 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비판받아야 할 점은 정직성입니다. 가진 자와 대기업의 도덕적 책무 이행과 양보를 전제로 다수의 국민에게 고통 분담을 호소하고 동의를 구해야 했습니다. 그것이 사회적 합의이고 국민 통합의 길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기는커녕 오직 돈을 풀어서 문제를 해결하려 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언론과 시민단체, 지성계와 종교계의 책무가 중요한데도, 이 대통령을 비판하는 것으로 자신에게 면죄부를 주기에 급급합니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안고 오체투지를 떠납니다. 많은 분들이 단 한 번이라도 오체투지를 경험해 보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지난해에 지리산에서 계룡산까지 오체투지를 통해 지렁이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면서 절절히 느낀 바는, 누구나 알고 있는 소박한 삶의 진실입니다. 사람이 별것 아니라는, 산다는 것이 별것 아니라는 새삼스런 자각이었습니다. 그러한 ‘해방 체험’을 공유하자는 것입니다.

 

좀 거창하게 ‘사람의 길, 생명의 길, 평화의 길’을 찾아서 오체투지를 한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만, 사실은 거창할 게 없습니다. 최소한 나의 행동이 상대로 하여금 눈살을 찌푸리게 하지 않는다면, 하나 더 가지기 위해 상대를 짓밟지 않는다면 세상은 지금보다 훨씬 아름답고 평화로워질 것입니다. 나는 세상의 모든 성현과 종교의 가르침이 여기에서 벗어나지 않는다고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그 믿음을 튼튼히 하기 위해 오체투지의 길을 나섭니다.

 

 

<수경 화계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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