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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소식/언론 기사] 경찰특공대 진술내용 번복 "적개심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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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25 13:4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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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세상]
경찰특공대원들도 "발화원인 화염병은 추측진술"
제 1 제대장 진술조서 번복 "안 본 부분도 봤다는 식으로 써서"


참세상 김용욱 기자 batblue@jinbo.net / 2009년09월25일


용산 철거민 망루 진압에 투입된 경찰특공대원들도 망루 화재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화염병을 보지는 못했다고 증언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 한양석)는 24일 용산 철거민 고공 망루 진압과정에서 철거민 5명과 경찰특공대 1명이 사망한 사건의 심리를 당시 투입된 경찰특공대원들을 증인으로 불러 열었다.

재판에 검찰 쪽 증인으로 나온 특공대원 6명 모두 화재가 난 당시 상황을 가장 가까이서 본 사람들이다. 이들은 전부 발화원인으로 화염병은 보지 못했다고 증언했다. 특히 검찰에 화염병을 봤다고 진술한 대원들도 불똥 같을 것을 봤거나 시너 냄새가 나 추측으로 화염병이라 진술한 것이라고 증언했다.

한 특공대원 '적개심 때문에'... 진술 내용 번복하기도

이날 심리에서 검찰과 변호인단은 특공대 진압작전의 문제와 발화원인을 투고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

증인으로 나온 특공대 1제대 소속 안 모 대원은 "망루 안에 진입하고 나서 화염병은 하나도 보지 못했다"며 "발화가 어디서 시작한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같은 1제대 권 모 대원은 "불길은 봤지만 화염병은 못 봤다. 화재가 어떻게 났는지 모른다. 시너 냄새가 나서 그냥 화염병으로 추측했다"고 밝혔다. 1월 20일 경찰특공대 1제대는 컨테이너를 타고 망루에 진입해 농성자들을 검거하는 임무였다.

최 모 1제대 팀장은 "한 개의 불빛을 보고 화염병이라 진술했으나 지금 생각하면 불빛이 맞다"고 진술을 번복했다.

1제대를 지원해 불이 나던 2차 진입에 함께 한 이 모 5제대 대원도 처음엔 화염병이 원인이라고 주장했지만 "제 발 옆에 떨어진 화염병의 불이 그렇게 크게 번지진 않았다. 왜 불이 크게 번진지는 모르겠다. 발 옆에 떨어진 불이 원인이라고 확언을 못 드린다"고 증언했다. 그는 '불이 왜났는지 봤느냐?'는 질문에 "짐작했다"고 답하고, 큰불의 발화지점이 어디서 시작했는지는 모른다고 말했다.

신 모 특공대 1제대장도 "화염병을 던졌기 때문에 불난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농성자가 시너를 부었다고 입력돼 있어 머릿속에 정리된 것을 가상해서 진술했다. 본 것이 아닌 생각이다"라면서 "정확히 본 부분을 진술했어야 하는데 직원 장례식도 있고 해서 안 본 부분도 봤다는 식으로 썼다"고 진술조서를 번복한 이유를 밝히기도 했다. 신 모 제대장은 "지금 생각해 보니 열풍이 밀려들어와서 넘어졌고 주변이 불바다가 됐다. 피신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안에서 (불길이)일었는지 밖인지 모르고 추측하고 살을 붙여서 한 것"이라고 밝혔다.

정 모 2제대 소속 팀장도 '화염병이 떨어졌다'고 진술했다가 '물방울 같은 불똥이 떨어졌다'고 진술을 번복했다. 정 팀장은 '다 죽어'라는 말을 들었다고 진술했지만 '다 죽어'라는 단어에 대해 느낀 의미에 대해서도 진술을 번복했다. 그는 처음엔 '다 죽으라‘는 의미로 얘기했다가 ’다 죽으니 피하라는 뜻‘이라고 바꿨다. 그는 "그때 그렇게 느꼈다고 한 건 적개심을 느껴서 그랬다. 대원들이 우당탕 나오는 상황에서 들었는데 지금은 다 피하라는 것으로 느껴진다"고 진술을 번복한 이유를 들었다.

한편, 재판의 증언과 증거 신빙성을 확보하기 위한 현장검증은 증인심문 일정 등을 고려해 다음 달 12일 오전에 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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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
용산 진압 경찰특공대 "시간 더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망루를 짓기도 전에 경찰기동대가 출동했다. 특공대 입장에서도 정보를 파악할 수 없었다. 시간적 여유가 없었던 거다." 김형태 변호사


"망루 내부를 파악하고 작전을 진행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아예 모르고 들어간 건 것도 아니다. 하나라도 더 알았으면 좋았겠지만…." 경찰특공대 제1대대
대장

경찰특공대가
철거민이 망루를 완성하기도 전에 출동한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내부에 시너가 어느 정도 있었는지 농성자가 얼마나 있었는지도 파악하지 못하고 망루에 진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용산 참사 재판 과정에서 경찰특공대의 사전 준비 미흡과 무리한 진압 작전이 재점화됐다. 용산 참사 농성자 9명에 대한 재판을 진행하는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판사 한양석)는 24일, 용산 참사 당일 투입된 경찰특공대원을 증인으로 소환했다.

진압 작전의 위험성

피고인 철거민 변호인단은 경찰특공대에게 진압 작전 강행에 무리는 없었는지를 집중적으로 추궁했다. 특히 망루 진압을 실패한 이후 곧바로 2차 진압을 진행한 것을 두고 "중단했어야 했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당시 경찰특공대는 망루 진압을 시도했으나 농성자의 강한 저항으로 진압을 포기하고 철수했다. 하지만 철수 8분 만에 다시 진압을 시도했다 화재가 발생했다. 이 참사로 농성자 5명과 경찰특공대원 1명이 사망했다.

이날 증인으로 출석한 경찰특공대 제1제대 대장 A씨는 "2차 진압을 하기 전 망루에서 기름을 붓는 것을 봤지만 진압 작전을 해도 무리가 없을 거라는 판단에 진압 작전을 재개했다"며 "망루 안에 대량 시너가 들어있다는 보고는 받지 못했다"고 증언했다. 그는 "농성자 진압이 목적이었기 때문에 대원에게 망루 내부를 살펴보라는 명령은 내리지 않았다"며 그 이유를 설명했다.

1차 진압 작전에 참여했던 1제대 팀장 D씨도 "안전하게 진압하는 게 목적이었기 때문에 주변을 못 봤다"고 진술했다.

2차 진압은 윗선의 명령에 의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 대해 1제대 대장 A씨는 "특공대장이 지시해서 다시 들어간 것은 아니고 내가 현장에서 스스로 판단해 지시했다"며 독자적인 판인이었음을 확인했다. 제1제대는 당시 컨테이너로 망루가 있던 남일당 건물 옥상에 진입한 제대다.

하지만 피고인 변호인단 김형태 변호사는 "망루 안에 시너가 있음에도 이를 못 봤다고 하는 건 이해가 가지 않는다"며 "무엇보다도 안전을 생각했다면 무리하게 진압하는 게 아니라 망루 안에 시너를 먼저 빼내는 걸 생각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 ⓒ노순택
사전 준비 미흡


사전 준비가 미흡했던 것도 드러났다. 경찰특공대는 진입 당시 농성자의 숫자, 망루 내부 구조, 화염병 유무, 시너 양 등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A씨에 의하면 경찰특공대는 19일 저녁 전체 대원을 소집한 뒤 용산 현장과 관련한 브리핑을 진행했다. 그는 "항공사진과 영상 등으로 주변 건물과 남일당 건물 위치 등을 설명했다"며 "하지만 망루 내부가 어떤 구조인지, 화염병 유무, 시너 양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실제 이날. 증인으로 출석한 경찰특공대원 B씨는 "브리핑에서 화염병이 있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다만 '위험하니 안전하게 작전을 수행하라'는 말만 들었다"고 밝혔다. 또 다른 대원 C씨는 "다른 일이 있어 브리핑을 듣지 못했고 동료에게 이야기를 들었다"고 증언했다.

증인으로 참석한 1제대 팀장 D씨도 "브리핑은 받았으나 다른 일 때문에 브리핑 도중에 나왔다"며 "용산 현장은 직접 가서 살펴보지 못했고 사진으로만 확인했다"고 밝혔다.

작전 준비 시간 부족

당초 경찰특공대는 컨테이너 1대가 아닌 2대로 진압 작전을 실시할 계획이었다. 망루 지붕을 뜯어낸 뒤 컨테이너를 이용해 진압하려 했던 것. 하지만 컨테이너가 1대 밖에 지원되지 않아 부득이하게 이 작전은 실행되지 못했다.

경찰특공대 제1제대 대장 A씨는 "시간이 더 있었다면 컨테이너가 지원됐을 것"이라며 "2개로 진압을 시도했다면 좀 더 안전했을 것"이라고 증언했다.

A씨 증언에 의하면 경찰특공대가 사건을 접하고 작전을 진행하기까지 채 24시간도 걸리지 않을 걸로 드러났다. 절대적으로 시간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던 것.

경찰특공대가 처음 용산 현장 상황을 접한 건 19일 오전 8시 30분. A씨는 "당시 회의를 하고 있는데 경찰특공대장에게 용산 현장으로 출동하라는 전화가 걸려왔다"며 "즉시 2개 제대와 그곳으로 출동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그는 "현장을 돌아 본 뒤 복귀했다가 오후께 경찰특공대장과 함께 용산 현장 주변을 항공 촬영하는 등 사전답사를 했다"며 "당시 특공대장은 '출동할지 모르니 준비하고 있으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이후 20일 새벽 경찰특공대가 출동했다. A씨는 "망루 안을 파악하면 좋았겠지만 시간이 있다고 해서 안의 구조를 볼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고 증언했다.

하지만 김형태 변호사는 "망루를 짓기도 전에 경챁특공대가 출동하고 이후 24시간도 되지 않는 시간에 진압 작전을 실시했다"며 "결국 특공대 입장에서도 정보나 사전 준비가 부족했을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했다.

증인 출석한 특공대원 "망루 내부 상황 모른 채 진압 작전 실시"

기사입력 2009-09-25 오전 11:3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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