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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깊은 우물이었을까?

작성일
2009.01.19 16:3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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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mbout.jinbo.net/webbs/view.php?board=mbout_7&id=110
우리가 길을 가고 오는 동안

오후 여섯시, 현대 중공업 경비들이 쏘아댄 거센 물줄기에 한바탕 폭우라도 쏟아진 듯 온통 젖은 땅을 밟고 젖은 몸으로 차에 오르는 사람들이 있었다. 서울에서, 경주에서, 대구에서 승용차로 혹은 대형 버스를 대여해서 영남 노동자 대회에 참가한 사람들이 다시 그들이 떠나온 도시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거친 물줄기의 공격에 그나마 온기를 피워 올리던 장작불도 꺼져버리고 동조 단식단의 노상 숙소도 망가져 버렸다. 간간이 타들어가던 담뱃불 말고는 온기라곤 찿아볼 수 없는 어두운 굴뚝 아래서 사람들이 헤어지며 인사를 나누고 있다. 다른 지역에서 참가한 사람들을 찿아 다니며 인터뷰를 하는 동안 다시 현대 중공업 경비들이 물을 쏘아 대고 있다. 취재 수첩이 다 젖어 버렸다. 채 젖지 않은 다른 종이를 꺼내 기록을 해보려 했지만 수성펜이라 쓰는 동시에 바로 다 번져 지워진다. 녹취기도 카메라도 제 구실을 하기엔 이미 너무 많이 젖어 버렸다. 할 수 없다. 더 이상 젖지 않는 유일한 기록수단, 나의 뇌만이 젖지 않았다. 아니다, 집회 참여 느낌을 묻는 나의 말에 그저 먹먹하다고만 한 노동자의 말처럼 나도 너무 먹먹하다. 먹먹한 뇌, 무엇을 기록하고 기억할 수 있을까?


이 글을 쓰는 지금, 서울로 간 사람들은 무사히 도착했을까? 집회를 마치고 차로 고작 삼십분정도 걸리는 집까지 오는 동안 나는 차안에서 얼마나 한기에 떨었던가. 두터운 솜파카는 깊이 물을 빨아들여 속옷까지 흠뻑 젖어 있었다. 서울까지 갈려면 꽤 오랜 시간이 걸리는데 젖은 옷 때문에 몸의 체온이 급격히 떨어질 것이다. 한 며칠, 호되게 감기 몸살 할 일이 뻔하다. 경비대들이 던진 쇠조각에 깨져버린 카메라 렌즈를 안타깝게 바라보던 한 기자의 얼굴이 눈에 어린다. 얼굴을 맞지 않은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고 하던 주변 사람들의 위로는 그에게 위로가 되었을까? 주변의 위로에도 깨진 카메라만 하염없이 만지던 그의 손길은 안타깝다. 경비대들에게 맞아 머리에 피를 흘리며 호송차에 실려 병원으로 간 노동자의 피는 멎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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