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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기획연재 2]입 닥치고 시키는 대로 하는 게 'MB식 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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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14 20: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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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 닥치고 시키는 대로 하는 게 'MB식 법치'

[용산 국민법정 2] 용산참사는 '국가폭력'과 '제도적 산물'의 산물

 

- 조국(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용산 철거민 사망 사건 국민법정 준비위' 발족 기자회견이 9월 14일 오후 용산철거민참사가 발생한 서울 용산구 한강로 남일당빌딩 부근에서 열렸다. 오는 10월 18일 개최될 예정인 '용산 국민법정'은 국민참여재판 방식으로 법조인, 노동자, 농민, 빈민, 여성, 청소년, 장애인 등 각계대표 9명(여성 4인 이상)이 재판부를 구성하고, 50여명의 국민배심원이 심리와 평경에 참여한다. 판결문은 각 피고인과 관련 기관에 발송할 예정이다. 국민법정 준비위 위원장은 방송통신대 강경선 법대 교수, 부위원장은 법무법인 한결 차병직 변호사가 맡았다.
ⓒ 권우성
용산국민법정

 

 

정부는 G20 회의 개최 유치 성공을 계기로 한국의 국제적 위상이 높아졌다고 자축하고 있다. 그리고 이명박 대통령은 '국격'(國格)을 높여 선진국으로 진입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이를 이루기 위한 핵심방안으로 '법질서 수준의 업그레이드'를 들고 있다.

 

법학자로서 법질서를 지키자는 일반론에 대해 반대를 할 생각은 없다. 예컨대, "교통법규를 잘 지키자"는 제안에 누가 반대를 하겠는가. 그러나 대통령과 정부가 강조하는 법질서 준수에는 다른 측면이 있다. 과거 대통령 자신은 얼마나 법을 잘 지켰는지, 또 정부 고위직 인사들은 얼마나 법을 잘 준수하였는지는 별도의 문제로 놓더라도, 용산참사는 현 정부의 법치론이 어떠한 결과를 낳는지를 보여준 극명한 사건이기에 이 사건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먼저 민주주의 사회에서 국가만이 '물리적 폭력'은 합법적으로 독점한다. 따라서 주권자 시민은 그 공권력이라는 이름의 '폭력'이 언제든 오?남용될 수 있음을 직시하고 경계하고 감시하고 통제해야 한다. 그리고 '법의 지배'란 시민은 존재하는 법질서를 무조건 준수해야 한다는 것을 뜻하는 원리가 아니다.

 

이는 국가권력의 행사는 법의 통제를 받아야 하며, 실정법의 내용은 헌법정신과 기본적 인권의 요청, 그리고 시민의 법의식에 부합해야 할 것을 요구한다. 즉, 진정한 '법의 지배'는 실정법이 '합법성'(legality)을 갖출 것 외에 '정당성'(legitimacy)까지 갖추어야 한다. 그리고 '법의 지배'는 법집행의 방식과 절차 역시 공정해야 함을 요청한다. 백무산 시인의 시 구절을 빌어 말하자면, '법의 지배'는 국가가 "법대로 테러"하는 것을 허락한 것이 결코 아니다.

 

'법의 지배'는 '법대로 테러'가 아니다

 

용산참사를 촉발한 도심재개발의 근거 법률인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법'을 예로 들어 보자. 이 법은 재개발지역에서 생활을 영위하는 전세권자, 임차인, 지상권자 등은 재개발조합으로부터 정당한 보상을 받지 못하더라도 일정한 시한이 도래하면 바로 쫓겨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를 거부하면 보상금 더 받으려고 법도 무시하며 무작정 생떼를 부리는 사람이라는 비난이 퍼부어진다.

 

용산참사가 발생한 바로 그날에도, 박장규 용산구청장은 농성을 하던 세입자들을 "떼잡이들"이라고 비난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재개발에 반대하여 정당한 보상을 계속 요구하게 되면 철거업체 소속 '용역깡패'가 들이닥치고, 이어 경찰은 체포에 착수한다.

 

전세권자 등의 재산권, 주거권 등을 위태롭게 하면서 재개발조합과 시공 건설업체의 재산적 이익만을 편향적으로 보호하는 이러한 법률의 개선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으면서 전세권자 등에게 법을 준수하라고 강요하는 것이 진정한 '법의 지배'가 될 수 없다. 한국 정부가 비준한 국제인권규범은 '강제퇴거는 중대한 인권침해'라고 규정하며, 당사국에 대하여 강제퇴거를 금지·예방하는 다양한 조치를 취하고 강제퇴거의 위협에 놓여있는 사람들에게 재정착을 위해 노력할 것을 촉구하고 있지 않던가.

 

다행히도 지난 6월 서울서부지방법원은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법'의 문제조항에 위헌소지가 있다고 보고 위헌법률심판제청을 했다. 정부와 여당이 용산 참사 앞에서 '법의 지배'를 운운하려면, 즉각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법' 개정안부터 내놓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선거용으로 '뉴타운 지정 공약'을 내걸고 재개발을 부추겼던 오세훈 서울시장 등 정치인들은 깊이 반성해야 한다.

 

단순무식, 강경일변도 법집행 결과의 참혹함

 

다음으로 용산 재개발구역에서 철거민들이 불법적으로 건물을 점거하였다고 하더라도, 이들을 진압하는 방법과 절차가 모두 정당화될 수는 없다. 서울중앙지방경찰청 정보계 경찰관의 법정증언에서도 드러났듯이, 경찰은 농성 철거민과 시공사 간의 교섭 자리를 단 한 번도 마련하지 않고 바로 경찰특공대를 투입하여 진압하였다.

 

재개발을 둘러싼 분쟁이 한두 번 있었던 것도 아니고, 용산참사 이전에도 수많은 재개발 관련 분쟁이 있었고 당시에는 이해관계인 간의 협상을 몇 번이고 선행(先行)하였는데 이번에는 그리 화급하게 진압작전에 들어가야 했는지, 화염병 등 다량의 인화물질이 건물 안에 있음을 알고 있으면서도 왜 소화장비도 준비하지 않았는지 등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그리고 이러한 진압과정에서 무전기를 꺼놓았다는 김석기 당시 서울경찰청장의 발언은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다. 이상의 점을 외면하면서 농성자들이 새총과 화염병을 던져 경찰이 공무집행했을 뿐이라고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정부의 태도는 한심하기 그지없다.

 

이러한 단순무식, 강경일변도의 법집행의 그 결과는 무엇인가? 17년간 돼지갈비집을 운영해온 71세의 할아버지 이상림씨를 포함한 농성자들에게는 "도심 테러리스트"라는 무시무시한 낙인이 찍혔고, 이씨 등 농성자 5인과 경찰관 1인이 불에 타서 사망했다. 그리고 이씨의 아들 이충연씨 등 9명은 특수공무집행방해치사상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이에 비하여 경찰 지휘부에게는 공무집행 과정에 위법이 없었다며 무혐의 처분이 내려졌다. 불이 누구의 행위에 의하여 일어났는지는 이후 재판 과정에서 제대로 밝혀져야 하겠지만, 지금까지 발생한 비극과 진압과정에서의 문제점만으로도 책임 있는 당국자는 유가족 앞에서 통절히 사과해야 한다.

 

용산참사, 서투른 법집행이 낳은 야만적 결과

 

한편 '국격'을 높이는 것은 어떻게 가능한지에 대해서는 문제를 제기하고자 한다. 실정법에 대하여 무조건 복종하면 국가와 사회의 품격이 높아진다는 주장은 가당찮은 주장이기 때문이다. '법의 지배'는 시민에게 "입 닥치고 법 지켜!"라고 강압하는 원리가 아니다. '법의 지배'는 표현의 자유 행사를 통하여 기성의 법과 체제를 자유롭게 비판하는 것을 허용한다.

 

이러한 비판이 허용되지 않는 국가와 사회야 말로 품격 없는 국가, 품격 없는 사회다. 박원순 변호사에 대한 민사소송 등 최근 비판자와 반대자에 대한 각종의 소송이 진행되고 있다. 법학자의 시각에서 볼 때 이러한 소송이야 말로 우리가 사는 국가와 사회의 품격을 훼손하는 행위이다. 미네르바 사건, 정연주 전 KBS 사장 사건 등의 경우 다행히도 1심 재판에서 무죄판결이 내려졌지만, 이러한 소송이 진행되었다는 것 자체가 국제적 웃음거리였음도 상기시키고 싶다.

 

저명한 철학자 아비샤이 마갈릿은 <품위 있는 사회>에서 사회 구성원을 물리적으로 학대하지는 않지만 제도적으로 모욕하는 '규제하는 사회'와 "제도가 사람들을 모욕하지 않는 사회"인 '품위 있는 사회'를 구분한 바 있다. 그리고 그는 '품위 있는 사회'는 "구성원들이 자기가 모욕당했다고 간주할 만한 근거가 있는 조건에 맞서 싸우는 사회"라고 규정하였다. 생각건대, 용산의 농성철거민의 생존권을 외면하는 재개발을 추진하고, 이에 반대하던 철거민들을 '도시 테러리스트'로 규정하고 강경진압한 것이야말로 '제도적 모욕'이다. 그리고 장례도 미루고 8개월 이상 이러한 모욕에 맞서 싸우고 있는 사람들이야 말로 '품위 있는 사회'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용산참사는 21세기 대한민국의 온갖 문제가 집약적으로 표출된 사건이다. 그리고 법질서 준수로 선진국으로 진입하겠다는 정부의 호언과 성급하고 서투른 법집행이 어떠한 야만적 결과를 낳았는지 보여주는 사건이다.

 

시민들이 '풀뿌리 법정'을 만들 수밖에 없었던 이유

 

 

10월 18일(일) 오후 1시에는 용산참사의 진실을 드러내기 위한 '국민법정'이 열린다. 법원의 명령도 무시하고 검찰은 수사기록 2600여 쪽을 제출하지 않았다. 이러한 법원명령 무시는 천성관 당시 서울지방검찰청장의 판단에 따른 것이다. 법학자로서 이러한 상황에서 공정한 재판은 무망(無望)하다고 보지 않을 수 없는 바, 시민들이 '풀뿌리 법정'을 만든 심정과 이유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이 '법정'의 설립은 실정법상의 근거를 가지고 있지 않으며, 그 재판결과도 법률적 효력을 갖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기존의 사법체계가 실정법의 틀에 갇혀 용산참사의 진실을 온전히 드러내지 못할 때 주권자는 실정법의 틀을 넘어 문제를 제기하고 근본적 해결책을 꿈꾸지 않을 수 없다. 이 점에서 '국민법정'은 미래를 선취(先取)하려는 주권자의 법의식의 산물이라고 평가한다.

 

이번 '국민법정'은 대통령과 정부, 그리고 여당이 용산참사를 계기로 자신의 법치관(法治觀)과 행태를 반성하고 관련 법제도의 개선에 나서도록 촉구하고 압박하는 중요한 사건이 될 것이다. 이를 계기로 우리 모두가 진정으로 법치를 이루고 국격을 높인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를 고민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