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자는 미국의 오 헨리. 각색은 한국 정부. 그러니까 1세기 전에 쓰인 <마지막 잎새>의 감동을 재현하고 싶었나보다. 그것도 ‘단군 이래 최대 행사’라는 G20에 걸맞은 감동 실화로. 잎새가 감으로 변했다. 가을철 대표 과일 감의 ‘생명 연장의 꿈’은 그렇게 이루어졌다.
알다시피 원작은 이렇다. 창문 너머 마지막 잎새가 떨어지면 본인 인생도 끝이라 믿는 폐렴 소녀를 위해 벽에 잎을 그려넣은 뒤 죽는 이웃집 할아버지. 눈물겹다. 2010년 서울에는 등장인물이 좀 많다. G20 정상들이 창문 너머, 바람에 흔들려 떨어지는 감을 보면, 혹여 금융 규제완화의 의욕이 떨어질까봐 감을 철사로 매달아주는 공무원들의 세심한 배려. 역시 눈물겹다.
하나하나 그 많은 감을 철사로 휘감은 덕에 서울 삼성동 코엑스 3층 주변 감나무에 달린 감은 비바람이 몰아쳐도 꿋꿋했다. 대신 원작의 감동 코드는 코미디로 바뀌었다. 사람들은 ‘감의 자유낙하를 허하라’는 피켓이라도 들 태세다. 미학자 진중권은 트위터를 통해 ‘완전히 돌아버렸나’라는 직설화법을 구사했다. 잎새 소녀처럼 폐렴에 걸린 것도 아닌데, 환자 취급하냐고 따지지 않은 것만으로도 각국 정상에게 감사할 일이다.
철사 줄이 녹슬어 끊어지지 않는 한 선진 조국의 국격은 위엄 있게 그 자리를 지킬 것이다.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하는’ 우리 정부의 세심한 감수성을 보여준 것만으로도 성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