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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책위상황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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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9일 서울역 민주수호 범국민대회에서 유가족이 낭독한 편지글

작성일
2009.07.19 18: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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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 주소
http://mbout.jinbo.net/webbs/view.php?board=mbout_15&id=114

 

7월 19일 오후4시, 서울역 민주수호를 위한 범국민대회에서 권명숙(고 이성수 열사의 유가족)여사가 낭독한 편지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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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흔이, 상현이에게


사랑하는 상흔아, 상현아. 내일이면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반년이 되는구나.

그동안 계절이 두 번이나 바뀌었지만, 이 엄마는 아직도 상복을 벗지 못하고 있구나. 하기야, 어미가 무엇이 힘들겠니. 한참 뛰어놀아야 할 너희들이 상주가 되어 반년 동안 영안실을 지키고 있는데... 어미는 아버지를 잃은 너희들의 얼굴을 보며 하루에도 몇 번씩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는지 모른다.


엄마는 아직도 그날만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진단다. 저녁에 집에 들어와 상흔이 네 얼굴을 쳐다보며 딱 닷새만 엄마 잘 챙기고 있으라는 말을 남긴 아버지가 그렇게 먼 길을 가실 줄 누가 알았겠니. 난생 처음 본 주검이 아버지의 불에 탄 시신이라니, 그것도 갈가리 난도질당한 시신이라니, 이 끔찍한 현실을 너희들에게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래서 이 어미는 아직도 네 아버지를 땅에 묻지 못하고 있단다. 슬프고 억울하고 한이 맺혀 네 아버지를 도저히 보내드릴 수가 없구나.


상흔아, 상현아. 누구처럼 많은 것을 탐하던 것도 아니고, 더 이상 발붙일 땅 한 뼘 없어 하늘로 쫓겨 올라간 것이 그만 마지막 길이 될 줄 누가 알았겠니. 단 하룻밤 새 우리 가정이 송두리째 뿌리 뽑혀버릴 지 누가 알았겠니.


고맙게도 너희들은 또래에 비해 어른스럽더구나. 힘든 마음들을 감추며 오히려 엄마를 위로하고 꿋꿋이 자리를 지켜주는 게 얼마나 대견스러운지 모른단다. 하지만 그런 너희들을 바라보는 어미의 마음이 반드시 편한 것만은 아니란다. 어린 나이에 너무 많은 짐을 지고 그 나이에 누려야 할 것들을 꾹꾹 누른 채 어른이 되어가는 너희들을 볼 때마다 억장이 무너지는 것을 어찌하겠니.


엄마가 제일 무서운 게 뭔지 아니? 엄마는 너희들이 ‘테러범’의 아들, ‘도시방화범’의 아들로 평생 낙인찍히는 게 제일 무섭고 두렵단다.

그래서 이 어미는 너희들에게 평생 멍에가 될 그 무서운 낙인을 지우기 위해서 아버지 영정을 들고 백방을 헤맸단다. 청와대도 가보고 국회도 가보고 시청도 가보고 구청도 가봤다. 그 무서운 검찰청, 경찰청에도 가보지 않았겠니.


그런데 아직까지 그 누구도 답이 없구나. 기껏 한다는 말이 네 아버지가 불질러 스스로 죽었으니, 자기들은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말이란다. 그러기를 벌써 반년이구나.


아들들아, 미안하게도 이제 엄마는 더 이상 울 힘조차 없단다. 그동안 우리 가족을 도와주시던 분들에게도 너무 많은 짐을 지우는 것 같아 송구스럽기 짝이 없구나. 그래서 엄마는 이제 마지막 결심을 했단다.


아직까지 나 몰라라 우리를 외면하고 있는 대통령이 똑똑히 보실 수 있도록 돌아가신 아버지의 관을 매고 내일 청와대로 가려고 한단다. 아버지의 장례를 지내주든지 아니면 어미까지 죽여 달라고 할 생각이란다. 끝끝내 하기 싫었던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이 어미의 마음을 이해해주려무나.


상흔아, 상현아. 조금만 더 힘을 내자꾸나. 돌아가신 아버지의 누명을 벗기고 부디 하늘나라로 편히 가실 수 있도록 조금만 더 힘을 내자꾸나. 사랑한다, 아들들아.


2009년 7월 19일

엄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