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하유설 신부님)

부활주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저는 지난 4 월 29 일, 용산참사 100 일을 맞아 열렸던
'범종교 추모기도회'를 생각합니다.
그 날은 나에게 매우 특별한 기억이 되었습니다.
마침 나는 매우 피곤하고 지쳐있었는데,
행사가 진행되면서 새로운 마음이 느껴지기 시작했고,
행사가 끝났을 때에는 전혀 다른 기분이 되어 있었습니다.
새로운 힘과 기(氣),에너지 등으로 기뻤고
밤에는 잠을 이룰 수 없을만큼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 마음의 변화, 대체 그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서울역 광장에 사람들이 모인 이유는 바로 "치유"때문이었습니다.
병든 자들이 예수님께로부터 치유를 받았듯이
우리도 각자 서로 다른 부분적인 상처들을 치유를 받기 위해 모인 자리였습니다.
유가족들을 위로하고, 유가족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여기며,
유가족과 끝까지 함께 있겠다는 약속의 자리였습니다.
흘러간 노래도 불러가며 정의를 외치고 합당한 보상을 요구했습니다.
개인과 사회의 치유를 위해 모인 자리였습니다.
가난한 사람들 편에 서 있는 사회,
억눌린 사람을 배려하는 사회.....
새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한 새로운 연대를 생각하며 만든 자리였습니다.
'범종교 추모기도".......이것은 정말로 새로운 일이었습니다.
'부처님 오신날'을 맞이하여,
모두 각자의 종교의식으로 고인들을 추모한 것은 매우 아름다운 의식이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우리가 죽으면 하느님을 만나고 하느님처럼 될 것입니다.
우리는 고인들의 영혼을 하느님께 맡겨 드렸습니다.
어렵게 돌아가신 희생자들, 그분들은 모두 하느님 안에 살아 계시며
부활하여 새 생명으로 들어가신 분들입니다.
이리가 양떼를 놀라 흩어지게 하듯이
공권력은 우리를 흩어지게 하려고 마구 거친 행동을 합니다.
삯꾼이 나서서 이리를 쫓아주지 않고
아무 상관없다는 듯 그냥 양들을 버리는 것처럼,
우리들 중에도 어렵고 힘든 일 앞에서 두려움에 도망치는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또한 착한 목자도 만납니다.
예수님께서는 착한 목자이시며
가난하고 억눌린 사람들을 돌보십니다.
용산의 희생자들도 착한 목자셨습니다.
가족과 정의를 위해 목숨을 바쳤습니다.
죽음은 끝이 아닙니다.
죽음을 통하여 새로운 부활, 생명이 시작됩니다.
100일 추모행사에서 확인한 것은
희생자를 위해 모두 같은 마음으로 기도를 했고,
그러기 위해 4개의 종단이 같은 자리에 모였다는 사실입니다.
희생자들의 마음은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우리안에 새롭게 하여 서로 연대하는 가운데 정의를 추구하고,
새로운 사회의 창출로 이어가야 합니다.
이 자리는 그런 의미입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이며 희생자들의 마음입니다.
매 미사 때마다
새로운 사회, 새로운 생명을 건설하도록 더 깊은 노력을 하겠다는 다짐을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