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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노동자정치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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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정치신문 49호/정권과 자본주의체제가 저지른 용산철거민 집단학살

작성일
2009.02.02 13: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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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정치신문49호(통합 61호)입니다.



정권과 자본주의 체제가 저지른 용산 철거민 집단학살



“전국을 쫓아다니면서 개발하는데 마다 돈 내라고. 이래서 그 떼잡이들이에요. 이 사람들이 거기서 데모를 해가지고 오늘 무슨 사고가 났다 그럽니다. 좌우간 그 백만평 개발을 하고 있어요. 약 10% 정도 했어요. 눈에 보이는 건 10%도 안되요. ... 이 백만평 개발을 우리는 기필코 해 내야됩니다”(용산 학살이 벌어진 20일 박장규 용산구청장의 ‘한강로 개발계획’ 주민설명회 내용 중).

참사는 ‘비참하고 끔찍한 일’이라는 말이다. ‘용산참사’는 가치중립적인 표현이다. 자본과 정권, 조중동 등 언론은 용산참사라는 표현으로 용산에서의 철거민의 죽음이 우연적으로 발생한 일인 것처럼, 끔찍한 일이지만 마치 자연재해처럼 막을 수 없는 일이 갑자기 터진 것처럼 사태를 왜곡하고 있다.

여기서 더 나아가서 자본과 정권은 철거민들의 죽음의 배후에 ‘전철연’이 있어서 사태를 배후에서 기획하고, 철거민들이 화염병을 던져서 참사가 발생한 것처럼 돌려서 자신들의 야만적 살해와 잔인무도한 폭력을 은폐하고 위기를 빠져나가려 하고 있다. 마치 지난 해 광우병 쇠고기 수입반대 투쟁의 배후가 있고, 시민들은 누군가의 조종에 의해 움직이는 비자발적인 주체로 전락시키고 음모론을 확산시켜서 투쟁의 정당성을 훼손하려 하던 정권은 자신들이 저지른 학살극을 전철연을 마녀사냥 함으로써 벗어나려 하고 있다.

전철연은 철거민들의 자주적인 집결체이다. 용산 철거민들은 전철연이라는 배후조직의 음모에 의해 수동적으로 움직이는 단위가 아니다. 용산 철거민들이 곧 전철연이다. 전철연은 건설자본과 구청, 용역깡패에 맞서 철거민들의 생존권을 사수하기 위해 조직된 조직이다. 정권과 자본은 전철연과 용산철거민들을 분리시켜서 전철연의 음모와 배후 개입을 주장함으로써, 전철연에 폭력성을 덧칠함으로써 전철연을 폭도로 몰아가려는 비열한 작태를 연출하고 있다. 자본언론과 경찰은 생존의 벼랑 끝에 몰린, 살기 위해 몸부림치다가 처절하게 불속에서 죽임을 당한 70대, 60대, 50대 나약한 철거민들을 테러리스트로 규정하여 이들을 진압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공권력을 사용했고 따라서 학살은 정당하다고 강변하고 있다.

용산에서의 철거민의 죽음은 자본과 국가권력의 공모에 의한 명백한 학살이다. 그것도 군포 여대생 사건처럼 개인이 아니라 국가권력에 의해 저질러진 참혹한 집단학살이기 때문에 더 경악할 수밖에 없는 사건이다. 그런데도 학살자들과 그들을 비호하는 언론은 당당하고 뻔뻔하고 파렴치하다. 저들은 마스크와 모자를 뒤집어쓰고 고개를 떨구지도 않는다.

조중동 등 파렴치한 언론은 끔찍한 군포 여대생 살인사건을 부각시키고, 살해범의 얼굴을 공개하여 논란을 확산시킴으로써 용산 살해극에 쏟아지는 분노와 사회적 관심을 돌리려고 하고 있다. 그것도 군포 여대생 살해사건의 근본적 원인과 사회적 해결책을 제시하기 보다는 선정적인 형태로 살해자의 병적 심리만을 부각시킴으로써 비참한 살해사건을 정치적으로 활용할 만큼 교활하고 영악하다.


우연적 필연으로 벌어진 용산학살

용산 철거민 학살은 우연적 필연이다. 어떠한 필연적 과정도 수많은 우연적인 형태로 발생한다. 뉴타운, 신도시 개발, 재개발, 도시정비 사업이라는 다양한 이름으로 서울시에서만 1000여 곳에서 철거가 자행되고 있는데 하필 용산에서 철거민이 학살당한 것은 겉으로 보면 우연적인 일이다. 노동자민중이 자본과 정권의 폭압적인 강제철거에 맞서 힘차게 투쟁했다면 용산 철거민 학살은 발생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노동자민중이 저들의 강제철거에 맞서 투쟁하지 못했을 때 용산철거민 학살은 언제든지 발생할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사건일 수밖에 없고, 앞으로도 또 다시 이러한 살해가 발생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그렇다면 왜 우연적인 형태로 발생한 처참한 용산 학살극이 필연적일 수밖에 없었는가?

최근 수년 동안 서울시의 ‘한강 르네상스 개발계획’에서 보듯 100층이 넘는 초고층 빌딩 건설과 수십 층의 주상복합 아파트 건설 등 용산에 재개발이 집중적으로 이뤄지고 있었다. “구청에 와서 생떼거리를 쓰는 사람은 민주시민 대우를 받지 못하오니 제발 자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용산구청 앞의 수천만 원짜리 대형 입간판에서 보듯 박장규용산구청장은 건설자본가 출신으로 건설자본의 이해에 맞춰 폭력적으로 철거민들을 탄압해 왔다.

박장규용산구청장은 철거민들이 학살당한 20일에도 한강로 개발계획 주민 설명회에서 철거민들이 철거현장마다 쫓아다니며 생떼거리를 쓰는 ‘떼잡이’들이라고 매도할 만큼 인면수심의 철면피다. 이는 단순히 박장규의 무도한 인격의 문제만이 아니라 용산구청이 무고한 사람의 죽음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만큼 건설자본과 깊게 유착해 있다는 것, 건설자본의 이해가 용산지역 개발에 첨예하게 걸려 있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용산구청은 이전에도 구청직원과 용역깡패를 동원해서 철거민 투쟁을 잔인하게 탄압해 왔고, 세입자들의 동의 없이 재개발 사업을 승인해줬다.

박장규의 말대로 용산에서는 건설자본에 의해 백만평 개발이 이뤄지고 있고, 지금은 그것의 10%도 안 된다. 백만평 개발의 10%도 안 되는 상태에서 용산에서 철거민 학살이 벌어졌는데 만약 철거민 학살극이 이대로 무마된다면 앞으로도 수없이 많은 철거민들의 참극과 생존권 파탄이 비일비재하게 발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용산에서의 개발의 집중과 더불어 용산경찰서는 구청과 건설자본의 폭력의 대행자 역할을 충실하게 해왔다. 김석기 서울경찰청장의 직계이고 학살극의 현장 책임자인 백동산용산경찰서장은 테러리스트 철거민들이 시너를 자신들한테 뿌리는 자살행위를 했다면서 자신의 학살을 정당화 했다.

용산 철거민들에 대한 학살이 벌어지기 하루 전인 1월 19일에 오세훈 서울시장은 한강 르네상스 설명회를 가졌다. 한강 르네상스 계획은 삼성, 포스코, 대림 등 독점자본을 위해 용산 철거민 학살을 승인하는 학살계획서에 다름 아니다. 오세훈은 고작 몇 달 전에 동절기 철거를 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이 말은 동절기가 아니라면 언제든지 강제철거를 하겠다는 기만적인 말에 다름 아니다. 그런데 이 기만적인 약속마저도 지켜지지 않고, 용산철거민들은 잔인하게 학살당했다. 용산철거민 학살이 벌어진 뒤에도 오세훈은 한강 르네상스 계획을 떠벌이고 있다. 또 다시 죽음을 예고하는 학살계획서를 거리낌 없이 발표해대고 있다.

용산학살은 우연적인 형태로 발생했지만 경제위기를 맞아 건설경기를 부양한다면서 무차별적으로 개발사업을 하는 이명박정권과 오세훈서울시장, 경찰의 폭력과 용산구청의 무도함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용산의 학살극은 국가권력에 의한 직접적인 학살이지만 자본과 국가권력의 경제적, 사회적 차원의 직간접적인 학살은 계속돼 왔다. 2007년 2월에는 여수보호소의 화재로 9명의 이주노동자가 숨지고 20여 명의 이주노동자가 부상당하는 참극이 벌어졌다. 여수에서의 이주노동자들의 죽음은 남한 자본주의의 강제추방과 단속이 만들어낸 사회적 타살이다. 이미 노예적 노동으로 수천 명의 이주노동자가 저임금과 산재로 다치고 죽어나가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은 강제추방과 단속 과정에서도 죽임을 당하고 있다.

독점자본을 위한 한미FTA는 노무현정권과 이명박정권의 합작품이다. 한미 FTA 체결 과정에서 이명박정권은 미국산 광우병 쇠고기를 수입함으로써 민중들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 한국타이어에서 보듯 자본주의에서 노동자들은 자본의 이윤극대화를 위해 작업장에서 산재로, 직업병으로 수천 명, 수만 명이 죽어나가거나 고통 받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를 비롯해서 수십, 수백만의 노동자민중들이 생존권을 박탈당하고 가정이 풍비박산 나서 거리로 쫓겨나고 자살자가 속출하고 있다. 앞으로 공황이 깊어질수록 노동자민중의 생존권은 더욱 더 도탄에 빠질 수밖에 없다. 이것이 자본주의에 의한 사회적 타살이 아니면 또 무엇인가?

민주당은 mb법안 반대투쟁에서, 용산학살을 진상규명하고 투쟁하면서 마치 민중의 대변자인 냥 자처하고 있다. 일부 언론에서는 노무현은 철거민들을 진압하는데 최소한 시간여유는 주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 노무현과 이명박 차이는 딱 거기까지이다. 누군가가 참세상 기고에서 과잉진압이 문제가 아니라 진압자체가 문제라고 했다. 정확히 맞는 말이다. 친절하고 세심한 진압 따위는 없다. 과잉진압이 문제가 아니라 진압자체가 과잉과 폭력을 필연적으로 수반한다. 생존의 벼랑 끝에 내몰린 철거민들을 진압한다는 사실 자체가 잔인한 폭력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노무현정권 하에서도 개발이라는 명분으로 건설자본을 위해 철거민들에 대한 무차별적인 강제철거가 쉼 없이 자행되었고, 개사료를 처먹는 용역깡패들은 술 처먹은 상태에서 무차별적인 폭력을 행사하고 속옷만 입고 부녀자들을 희롱하며 강제철거에 앞장섰다. 노점상들은 용역깡패를 앞세운 구청단속반원의 횡포로 인해 전쟁과 같은 나날을 보내야 했다.

노무현정권 동안에 전철연 오산 수청동 철거민들은 망루에 올라가서 투쟁하다가 구속되어 일부 철거민들은 2005년부터 지금까지도 수감생활을 하고 있다. 오산 수청동 철거민 진압 과정에서도 노무현은 경찰특공대를 동원해서 철거민들을 강제진압 했다. 건설자본은 용역깡패를 동원해서 강제철거를 하면서 전기와 수도를 차단하고, 협박을 통해 철거민들을 내쫓고 주거의 터전을 마구잡이로 부수는 만행을 자행했다.


폭력정권과 토지의 사적소유가 살해의 주범과 배후

용산 철거민 학살은 이명박정권이 저지른 끔찍하고 잔인한 살해이지만 노무현정권에서도 일상적으로 벌어졌듯 자본주의 체제가 일상적으로 저지르는 잔인한 폭력의 한 부분에 불과하다. 서울시에서만 내년과 내후년에 철거 직전의 관리처분 인가가 집중되어 있고, 최대 13만 가구가 동시철거 될 예정이라고 한다. 이렇게 되면 수십만의 철거민들이 동시다발로 철거를 당하고 생존의 터전을 잃고 쫓겨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토지에 대한 극단적인 재산권만 주장하는 사람들, 부동산 투기로 인해 이윤을 챙기는 것과 관련된 모든 사람들은 이를테면 헌법 불합치 상태에 있다. ... 부동산 가격이 모든 국민의 안정적인 주거권 보장이 불가능한 상태로 뛰어 올라 있을 때, 정부는 기본권의 보장, 공공복리의 증진과 경제 민주화의 차원에서 이를 규제해야 할 의무를 행사해야 한다. 기본적으로 대한민국 대통령과 공직사회는 헌법을 준수해야 할 의무를 강하게 갖는 헌법기관이다. ... 헌법을 상기해보면 토지 및 주거권은 재산권의 범위에 포함되지만, 그 재산권 행사의 범위는 ‘모든 국민의 주거의 자유를 침해받지 않는’ 범위이며, 공공복리 증진과 경제 민주화의 범위 안에 있어야 한다”(프로메테우스 임세환기자, [칼럼]부동산공화국은 위헌이다 2009.01.28).

토지와 주택의 문제, 이를 통해 자행되는 강제철거는 폭력적인 자본주의가 체제가 낳은 모순의 산물이다. 그런데 이 같은 주장은 자본의 이해를 보장하기 위해 폭력을 본질로 하는 자본주의 정부가 ‘기본권의 보장, 공공복리의 증진과 경제 민주화 차원에서 이를 규제해야 하는 의무를 행사’하는 주체인 것처럼 묘사한다. 그리고 마치 헌법이 국민의 기본권을 지켜주는 보루인 것처럼 사태의 본질을 철저하게 왜곡하고 있다.

헌법은 여러 가지 수사로 자신의 본질을 은폐하고 있지만 사적소유권을 보호하는 것을 자신의 본질로 한다. 헌법이 제대로 지켜지는 것, 자본주의 국가가 헌법정신에 맞게 국민의 기본권을 지켜주어야지만 철거민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것처럼 인식해서 궁극적으로 반동적인 부르주아 체제를 옹호한다.

토지가격의 상승은 자본주의의 토지 사적 소유권이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일이다. 토지는 한정돼 있고, 자본가나 지주는 사적 소유권을 가지고 토지를 배타적으로 사용해서 토지가격의 상승의 혜택을 독차지 하게 된다. 자본주의 사적소유의 경제법칙으로 인해 발생하는 주택과 토지의 문제, 철거민의 문제를 헌법을 수호하고 법률을 개정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다는 주장만큼 망상이 없다.

“근대 대도시의 팽창은 도시의 몇몇 지역, 특히 도시의 중심에 있는 토지의 가치를 인위적으로, 때로는 엄청나게 상승시킨다. 그러나 이 토지위에 세워져 있는 건물들은 그 가치가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떨어지는데 그것은 이 건물이 이미 변화한 조건에 적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이 건물들을 철거하고 다른 건물로 바꾼다. 여기에서 무엇보다 먼저 철거의 운명에 처해지는 것이 도시 중심지에 있는 노동자의 주택이다”(엥겔스, 「주택. 토지 문제」두레, 37쪽).

자본주의는 상품생산이 지배적인 사회다. 자본주의에서는 인간의 거주공간인 주택조차도 하나의 거대상품이다. 주택상품은 건설자본의 이해뿐만 아니라 철강, 시멘트, 전기, 수도, 각종 기자재 등이 들어가는 상품이기 때문에 수많은 자본의 이해관계가 달려 있다. 자본주의에서 발생하는 대부분의 주택 철거는 주거환경을 개선하기 위해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주택이 상품으로 매매된다는 사실에서 발생한다.

자본은 새로운 주택상품의 판매를 위해 기존 주택의 내구연한과 상관없이 끊임없이 새로운 건물을 짓거나 기존건물이나 지역을 재건축하거나 재개발함으로써 새로운 상품을 만들어 낸다. 이 과정에서 주택에 대한 투기적 수요가 일어나서 새로운 주택의 토지가격도 엄청나게 오르면서 지주, 건물 소유주들에게 막대한 이익을 가져다준다.

용산은 서울이라는 거대 도시의 심장부에 있다. 게다가 이번 학살이 자행된 한강로 일대는 한강변을 끼고 있는 입지조건으로 말미암아 조망권이 좋아 토지 가격이 천정부지로 오르고 있고, 건설자본은 기존의 주택을 철거하고 거대한 건물을 세움으로써 막대한 개발이윤을 챙기려고 달려들었다. 이번 용산 재개발에 삼성, 포스코, 대림 같은 거대자본이 도시와 주택의 재개발 과정에서 나오는 막대한 이윤을 노리고 컨소시엄 형태로 참여했다.

도시 재개발은 노동자와 민중의 주택거주 환경을 개선한다는 허울 좋은 명분 아래 진행되고 있지만 개발 이득은 오로지 건설 독점자본과 건설 독점자본과 결탁해서 조합을 구성하고 있는 금융자본이나 지주, 주택 소유자들에게 일방적으로 돌아간다. 세입자나 소상인들, 심지어 일부 가옥주조차도 건축비용과 이윤으로 인한 주택 가격의 상승과 개발이익에 대한 기대감으로 땅값이 천정부지로 올라가면 이 비용을 감당하지 못하고 고작 1천, 2천 만 원 대의 보상금과 이주비를 받고 쫓겨나게 된다.

집 없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강제철거가 매일같이 전쟁처럼 벌어지고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주택은 넘쳐나고 있다. 자본주의 국가는 일반 국민들의 사소한 분쟁에는 개입해서 분쟁의 해결사를 자처하면서도 용역깡패의 미친 만행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때로는 뒤에서 용역깡패를 배후조종한다. 이것이 자본주의 국가권력, 민주공화국이라는 대한민국에서 2009년에 벌어지는 일이다. 용산철거민 학살은 자본주의 국가가 중립적이지 않고, 얼마나 철저하게 폭력적인지를, 국가의 본질이 무엇인지 적나라하게 고발하고 있다.

학살자를 처단하지 않고, 학살을 낳는 자본주의가 그대로 유지된다면 주택은 과잉인데도 철거민들은 늘어나는 자본주의 주택문제의 이율배반과 모순이 존재하는 한, 언제나 노동자민중들은 철거민으로 내몰릴 것이고, 그 과정에서 수없이 많은 노동자민중들은 길거리로 내쫓기고 그 과정에서 또 다시 학살당할 것이다.

‘용산참사’를 진상규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우리는 철저하게 용산학살을 진정으로 진상규명해야 한다. 그러면 거기에는 이명박정권과 폭력경찰, 건설 독점자본이 학살의 주범이고, 자본주의 체제가 학살의 배후로 버티고 있음을 목도하게 될 것이다. 민주당은 정치적 이해관계에 의해서 진상규명을 외치고 있지만 용산 학살의 진정한 진상규명 앞에서면 체제의 위협을 느껴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주택문제와 철거민의 생존권의 파탄은 자본주의 체제의 문제다.

“주택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사회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사회문제를 해결함으로써만, 즉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을 폐지함으로써만 주택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 주택난은, 유산계급이 가지고 있는 화려한 주택들의 일부를 수탈하고 그 나머지 부분에 사람들을 강제적으로 거주시킴으로써 곧 제거될 수 있을 것이다.”(같은 책, 93쪽).

주택문제와 철거문제는 자본주의 헌법의 가치를 옹호하고 국가에 대한 환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자본주의 체제와 투쟁할 때만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분명하다. 자본주의가 존재하는 한, 정권이 바뀌어도 철거는 계속될 것이고, 철거가 계속되는 한 철거민들의 절규는 끊이지 않고 또 다시 안타까운 죽음은 발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명박은 지금은 김석기경찰청장의 사퇴조차 거부하고 있지만, 투쟁이 거세진다면 도마뱀꼬리 자르듯 김석기 사퇴로 위기를 모면하려 할 것이기 때문에 김석기 경찰청장의 사퇴 요구에 그쳐서는 안 된다.

철거민의 문제는 노동자계급과 민중들의 생존권의 문제다. 철거민들 중에는 세입자라는 형태로 노동자계급의 일부와 영세상인들이 포함돼 있다. 용산학살은 자본주의 체제가 자행하고 있는 학살범죄의 일부이다. 노동자계급은 주택문제뿐만 아니라 실업과 정리해고 등 경제적, 사회적 폭력으로 생존권 파탄의 막다른 길로 내몰리고 있다. 노동자계급과 민중들의 주택문제와 철거의 문제를 해결하고 생존권의 파탄과 더 이상의 끔찍한 학살을 막기 위해서는 자본주의 체제를 박살내야 한다. 노동자계급이 중심이 되어 전체 민중과 연대하여 이명박을 비롯해 용산학살 사건의 학살자를 처단하고 학살의 진정한 배후인 자본주의 체제에 맞서는 투쟁을 전개해야 한다.


살인마, 집단학살자를 처단하라!

용산학살을 진상규명하라! 거기에는 자본주의 체제가 있다!

용산학살의 진짜 주범 이명박과 학살 배후 자본주의에 맞서 싸우자!<노/정/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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