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내리실 역은 용산참사역입니다’ ‘작가선언’ 문인들 고백 ‘헌정문집’ 발간
“우리 모두 꽝꽝 얼어붙은 주검 옆에서 고통받고, 부끄러워하며 오랫동안 아파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다음 우리가 내릴 역, 또 그 다음 역은 언제나 용산참사역일 것이다.”(윤예영 시인 ‘지금 내리실 역은 용산참사역입니다’ 중)
올 1월의 용산참사를 기록하고 지금까지 눈감아온 위정자들을 고발하는 문인들의 헌정문집이 나왔다. 제목은 <지금 내리실 역은 용산참사역입니다(실천문학사)>. 424쪽의 문집에는 ‘작가선언 6·9(작가선언)’ 회원들이 쓴 시와 에세이가 담겼다. 작가선언은 지난 6월 민주주의 회복을 촉구하는 시국선언에 나선 문인 192명으로 구성된 모임이다.
이들은 시국선언 이후 6개월 동안 용산참사에 대한 ‘망각의 시간’을 ‘기억의 시간’으로 바꾸는 작업을 해왔다. 용산참사가 오늘날 한국 사회의 가장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상처라는 데 뜻을 같이하고 사건을 조명했다. 1980년대 문인들이 광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면 2009년 문인들은 용산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자기 고백이었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씨는 “시를 읽는 일이 한가롭다는 생각 때문에 용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좋은 시는 절박하고 또 정치적이다. (중략) 새해 벽두에 가장 참혹하고 치명적인 시는 시집이 아니라 용산에 있었다(‘용산, 참혹하고 치명적인 시(詩)’ 중)”고 말했다.
문집 곳곳에는 용산참사의 해결 없이는 민주주의를 이야기할 수 없다는 고민과 메시지가 녹아 있다. “오늘, 대한민국 사람들이 용산의 죽음을 이토록 무심하게 대한다면, 용산의 죽음에 대해 아무 행동도 하지 않는다면, 대한민국에서 누구도 정의를, 민주주의를 입에 올릴 수 없다.”(공선옥 소설가 ‘지금 당장 용산으로 달려가야 한다’ 중)
생존권을 요구하는 철거민을 ‘사람’이 아닌 ‘테러리스트’로 보는 공권력의 시각에 대한 비판도 담겼다. “경찰은 그들을 적으로 생각하였다. 20일 오전 5시30분, 한강로 일대 5차선 도로의 교통이 전면 통제되었다. 경찰 병력 20개 중대 1600명과 서울지방경찰청 소속 대테러 담당 경찰특공대 49명, 그리고 살수차 4대가 배치되었다. 경찰은 처음부터 철거민을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았다.”(이시영 시인 ‘경찰은 그들을 사람으로 보지 않았다’ 중)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저자 조세희씨는 추천사에서 “오늘 바로 이 땅에서 행복해하는 사람은 도둑이 아니면 바보일 것”이라며 “이 책은 이성의 힘으로 캄캄한 죽임의 시대를 증거하려는 젊은 작가들의 생생한 양심의 기록”이라고 말했다. 작가선언은 8일 저녁 용산참사 현장 레아호프에서 ‘다시, 이것은 사람의 말’이라는 제목으로 출간기념회를 연다. 헌정문집의 판매수익금은 용산참사 추모기금으로 쓰일 예정이다.
<김지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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