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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인자
제목

[펌]독재와 학살은 늘 쌍둥이다

작성일
2010.12.18 13:15:49
IP
조회수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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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와 학살은 늘 쌍둥이다"

[길에서 책읽기] <폴 포트 평전>

 

 

전체 인구 700만 명 가운데 적어도 150만 명이 죽었다. 주로 숙청이었고, 일부는 내전이었다. 집단 농장의 강제 노동, 질병, 기아로도 많은 수가 죽었다. 1975년 4월부터 1979년 1월까지 거의 4년 동안 캄보디아를 지배했던 크메르 루주를 언급할 때 꼭 등장하는 잔인한 집단 학살의 규모이다.

 

 

그러나 크메르 루주만 그렇게 극악한 범죄 집단이었을까. 물론 아니다.

 

 

미국은 캄보디아에 론놀 정권을 세우면서 수많은 캄보디아 인민을 학살했다. 미군은 남베트남군과 함께 캄보디아를 침략했고, 1973년 단 6개월 동안 B-52 폭격기와 다른 폭격기로 25.7만 톤의 고성능 폭탄을 캄보디아 전국에 떨어뜨렸다. 심지어 하루에 B-52 폭격기가 81회 출격한 경우도 있었다. 이것은 베트남보다 30%나 더 많은 출격 횟수였다. 나중에는 반소 연합전선이란 지정학 정치를 실천하고자 크메르 루주가 정권을 잡는 것을 도왔고 폴 포트 정권을 지원하는 후견 국가 역할을 했다.

 

 

미국은 흑인 노예 사냥을 하면서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아프리카 원주민을 학살했다. 그리고 미국의 면화 농장에 잡혀온 흑인 노예들은 크메르 루주의 집단 농장에 수용된 캄보디아인들과 똑같이 비참한 노예 생활을 하다가 학살당하고 질병, 기아, 강제 노동 등으로 죽었다. 지금 이 시각에도 여전히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날마다 숱한 사람들이 잔인하게 죽어가고 있다. 이를 '부수적 피해'라고 부르는 상시 전쟁국가 미국이야말로 극악무도한 범죄 집단과 하나도 다를 바 없다.

 

히틀러의 나치 독일은 아우슈비츠와 같은 수많은 수용소에서 유태인들을 떼로 죽였다.

 

서구인은 이를 홀로코스트, 제노사이드라 부른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유태인들은 마치 히틀러에게서 배웠던 바를 충실하게 실천한다는 듯이 히틀러보다 더 잔인하고 끈질기게 21세기의 홀로코스트를 거리낌 없이 저지르고 있다. 그 대상은 물론 독일인을 비롯한 유럽 백인이 아니라 힘없고 가난한 팔레스타인 사람들이다. 가자 지구를 내려다 볼 수 있는 언덕에 모여 이스라엘 군이 팔레스타인 사람을 가자 지구라는 감옥에 가두어 놓고 집단 학살하는 모습을 보며 박수를 치는 유태인들은 소름이 돋을 만큼 히틀러의 모습을 떠올리게 만든다.

 

 

전 세계 금융과 식량, 에너지를 지배하는 유태인들을 대상으로 새로운 대규모 인종 학살을 예감케 하는 삽화가 아닐 수 없다. 나치 홀로코스트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전 세계에서 벌어지고야 말 유태인 학살을 미리 보여주는 불길한 묵시록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일이 다시 일어나서는 절대로 안되지만, 지금 이스라엘은 그런 길로 스스로 질주해 가고 있는 중이다.

 

 

이런 참사는 전 세계 도처에서 예나 지금이나 지칠 줄 모르고 끊임없이 일어난다. 스탈린 치하의 러시아에서, 오스만제국의 아르메니아에서, 일본 제국주의의 중국 침략에서, 마오의 중국에서, 르완다에서, 세르비아와 보스니아에서, 다르푸르에서,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우리는 광기어린 히틀러와 폴 포트의 얼굴을 본다.

 

 

일본의 동학 농민군과 의병 학살에서, 한국전쟁의 보도연맹 사건과 그 숱한 민간인 학살에서 일본 왕 히로히토와 부시의 잔영을 본다.

 

 

캄보디아의 수도 프놈펜 남부에 있던 투올슬렝의 S-21 교도소는 흔히 아우슈비츠와 비교된다. 여기서 수많은 도시민들이 잔인한 고문을 받고 '내부의 적'임을 자백하고는 또 끔찍한 방식으로 죽었다. 폴 포트의 혁명 동지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폴 포트와 그에게 충성하는 소수를 제외하고 크메르 루주의 지도부들 대부분도 투올슬렝과 전국에 걸쳐 존재한 고문실에서 살해되었다.

 

 

한 생존자의 증언은 인간의 본성에 대한 깊은 회의를 다시금 제기한다.

 

"고문관이 여인의 옷을 찢더니 여인의 복부를 가르고 뱃속에서 태아를 꺼냈다. 고개를 돌렸지만 여인의 고통에 찬 비명 소리를 피할 수는 없었다. 비명 소리가 잦아들어 흐느낌으로 바뀌었고, 한참 뒤 그 흐느낌은 자비로운 죽음의 침묵으로 바뀌었다. 살인마는 태아의 목을 쥐고 태연히 내 옆을 지나갔다."

 

 

이 S-21 감옥에서 사용하던 족쇄는 프랑스 식민주의자들이 쓰던 것이었다. 투올슬렝에서 자행되었던 물고문은 프랑스 군이 인도차이나에 처음 들어와 베트민과 캄보디아 공산주의자들에게 쓰던 고문 수법이었다. 프랑스 군은 알제리에서 고문시설을 짓고 무장게릴라로 의심되는 알제리 인민들을 고문한 다음 비밀 유지를 위해 살해했다. 그런 고문 시설 한 군데서 프랑스 군이 살해한 알제리 사람들만 해도 5000명이 넘었다.

 

 

폴 포트는 개인주의가 철저히 사라지고 오로지 집단만 있는 이상 '사회주의 사회'를 실천에 옮기려 했다. 가족도 없애고 친구 관계도 없앴다. 결혼도 앙카르(조직)의 허락을 얻어야 했으며 아기는 앙카르에서 키우는 앙카르의 자식이었다. 모든 토지 소유권을 없애고 사유재산을 일체 금지했다. 모든 캄보디아 인민들은 정치 경제 문화 사회 모든 면에서 평등해야 했으며, 그래서 심지어 모두 검은 색 옷을 입어야 했다.

 

 

밀림 속에서 자신들만의 고유 문화를 유지하며 살고 있던 무슬림 참족 같은 소수민족들은 캄보디아 사람들과 다르다는 그 까닭 하나만으로 문화 자체를 말살당하거나 검은 옷의 크메르 루주 집단 농장으로 들어가야 했다. 말이 좋아 문화의 말살이지 그것은 곧 참족의 집단 학살이었다.

 

 

폴 포트의 새로운 순수 사회주의란 자본주의의 도시를 없애고, 모든 캄보디아 인민들을 집단농장에서 농민노예로 일하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모든 사람은 일일 노동량을 강제로 할당받았고 이를 이행해야만 했다. 이행을 하지 못하면 곧바로 제제, 즉 숙청되었다.

 

 

당연히 이런 집단농장의 지시 명령 경제 아래 크메르루주 초기 식량 생산량은 절반 정도로 떨어졌다. 마을 공동체 단위로 대대로 적어도 식량만큼은 자급자족해왔던 캄보디아 농민들은 굶주림으로 죽어갔고 심지어 식인풍습까지 생겨났다.

 

 

크메르 루주는 자급자족의 국가를 추구했다. 그러나 그 자급자족 국가란 적어도 인구가 1500~2000만 명은 되어야 하는 부국강병 국가였다. 그리고 5~10년 이내에 농업의 기계화를 달성하고 이를 토대로 15~20년 이내에 근대 산업 국가의 기반을 마련함으로써 옛 크메르 왕국의 영화를 회복하는 하는 그런 민족주의, 국수주의의 사회주의 국가였다.

 

 

사회와 국가에 대한 단순 명쾌한 이데올로기와 광신은 종교에 대한 광신만큼이나 집단 학살과 짝을 이룬다. 국가는 늘 이런 국가주의의 광신을 불러 일으키는 아주 복잡하고도 힘있는 실체이다. 국가 안에 국가 권력을 견제하고 균형을 갖추도록 만드는, 다양하고도 수많은 그리고 힘있는 공동체가 없을 때 국가는 특히 곧바로 파시즘으로 치닫게 된다. 그리고 파시즘 독재는 늘상 학살과 짝을 이룬다.

 

 

자본주의 이전의 국가는 강한 자급자족의 마을 공동체들이 존재했다. 때문에 서구 중세의 국가는 일종의 지역 봉건 영주들의 연합체이자 상징이었다. 동양의 전제군주 체제 또한 이런 강한 자급자족의 마을공동체들이 기본 토대였다.

 

그러나 이런 자급자족의 마을공동체를 해체해버리고 들어선 자본주의 국가는 결국 아무런 걸림돌 없이 산업자본의 독재, 전 인민을 노예 노동자로 만드는 물신 독재의 길로 나아간다. 사회주의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이것은 지도자 개인의 문제도 문제지만, 자본주의 국가 자체의, 산업 국가 자체에 내재된 근본 충동이자 속성이다. 문제는 국가이다.

 

 

파리 유학생 살로트 소르, 나중에 폴 포트로 불리는 크메르 루주의 최고 지도자는 친절하고 사려깊은 교양인이었다. 그를 만나본 사람들은 폴 포트가 매우 부드럽고 신비로운 미소로써 만나는 사람을 설득시키는 능력이 있다고 증언한다. 자신의 동지들을 거의 모조리 죽여버린, 피의 학살자인 폴 포트가 말이다. 히틀러도 그랬다. 매일 아침 하나님께 기도하던 부시도 마찬가지였다.

 

 

기자다운 꼼꼼한 취재를 바탕으로 쓴 필립 쇼트의 <폴포트 평전>은 한 편의 악몽을 읽는 것만 같은 임사체험이었다. 읽는 내내 소름끼치도록 끔찍하면서도 도무지 책을 놓을 수가 없었다.

 

 

사회주의 혁명이란 현실에서 결국 이런 모습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었던가.

 

 

한국전쟁의 악몽이, 전국 곳곳에서 벌어진 좌우익 민간인 학살이 눈 앞에 현재의 모습으로 다시 나타났다. 선과 악은 바로 내 안에, 우리 안에 공존하고 있으며, 평화와 전쟁은, 그리고 학살은 바로 우리 이웃의 담장 너머에 있는 실체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명박 정권의 시장 만능주의 광신은 이제 도를 넘었다. 신자유주의의 원조인 미국에서조차 월가의 금융기관에 대해 규제를 강화하고 있는 마당에 미국보다 더 규제를 풀고 재벌에게 은행과 언론을 주자고 불도저처럼 밀어부친다. 이명박의 성장 지상주의 광신이 만든 뉴타운 개발 사업은 급기야 용산에서 사람들을 불태워 죽이고 말았다. 그런데도 이명박 대통령은 눈 하나 꿈쩍 않고 일말의 사과와 반성도 없이 '대운하'와 '법대로'만을 외친다.

 

 

이명박 대통령의 포클레인 삽질과 용산 참사는 폴 포트와 크메르 루주의 독재와 학살을 연상시킨다. 용산 참사 이후 대통령과의 원탁 대화에서 행한 이명박의 발언은 끔찍한 살인 독재자 폴 포트의 발언을 연상시킨다.

 

 

폴 포트의 발언과 이명박의 발언과 화성에서 여성들을 연이어 죽인 사이코패스의 발언이 다른 점이 도대체 무엇일까. 용산 참사가 다가올 끔찍한 학살의 전주곡인 것만 같아 불안하기만 하다.

 

 

 

박승옥 시민발전 대표    [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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