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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용산참사, 국민법정이 필요한 이유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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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14 09: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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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용산참사, 국민법정이 필요한 이유

 

- 김종철 (연세대 교수, 헌법학)

 

 

 

철거민 점거시위에 대한 경찰 진압과정에서 경찰관을 포함하여 6명이나 희생된 용산참사가 발생한 지 10개월째를 맞았다. 그러나 장례조차 치르지 못하여 망자의 유혼이 구천을 떠도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그 와중에 망자들과 뜻을 같이했던 철거민은 공무집행방해에 대한 형사책임을 추궁당하고 있는 반면 인명손실을 초래한 강제진압 관계자에게는 아무런 조치가 없다. 경찰은 진압작전의 정당성을 강변할 뿐이고 검찰은 경찰관계자를 무혐의처리하는 한편 관련 수사기록의 공개를 거부하고 있다. 정부와 서울시는 직접당사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사후처리를 위한 유족과의 협의마저 거부하고 있다. 이처럼 형평을 상실한 법현실은 국민들이 국가에 대해 회의하게 하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

인권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 자유민주국가에서 공권력이 개입되어 인명이 살상된 사건은 있어서는 안되는 매우 중대한 사고이다. 공권력 발동은 원인이 되는 불법행위의 성격 및 사회적 영향 뿐만 아니라 권력행사로 얻게 될 공익의 성격과 정도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과잉되지 않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은 법치국가의 기본이다. 따라서 “참새를 잡는데 대포를 쏘아서는 안된다”는 법격언처럼 공권력은 국민의 자유와 권리가 가장 적게 침해되는 방향으로 적절한 방법을 사용하여 발동되어야 한다.

형평성 상실한 경찰·검찰·정부

경찰관 직무집행법령이 ‘필요최소성’의 원칙과 ‘직권남용금지’를 직무수행의 기본원칙으로 삼고 있는 것도 이러한 헌법정신을 구현한 것이다. 불법여부를 떠나 철거민의 농성은 인질극과 같이 다른 이의 생명이나 신체를 담보로 하는 것이거나 국가중요시설에 대한 점거와는 성격이 다르다. 특히 이번 사건은 발생 초기에 특공진압이라는 극단적 수단을 사용하여야 할 만한 사안인지 의문일 뿐만 아니라, 특공진압에 필수적으로 예상되는 위험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하여 그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최대한 주의를 기울일 의무에 충실하였는지를 엄밀히 조사해야 할 사안이다. 인화성 물질이 있음을 인지한 상황에서도 적절한 대비없이 초강경 진압을 졸속으로 시도했다는 정황은 정당한 공무집행으로 볼 수 없다.

한편 검찰은 경찰의 강제진압과정에서 인명이 살상된 사건을 맡아 직권남용 가능성에 대해 엄정하게 조사해야 할 법적 의무가 있다. 그런데 정작 검찰은 형사사법절차에서 요청되는 최소한의 수사기록제출명령마저 거부하고 있다. 기소독점권을 가진 검찰이 경찰에 대한 제대로 된 수사를 방기하고 법원의 명령도 거부함으로써 공권력의 형평성을 의심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나아가 경찰권과 검찰권의 최종 책임자인 대통령의 무대응이 사태를 악화시키고 있다. 대통령은 “국민의 자유와 복리 증진을 위해 노력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한 행정권의 수반이다. 그 소속하에 있는 경찰과 검찰은 국민이 직접 대면하는 공권력의 첨병이며 이들에 대한 신뢰의 상실은 공권력전체의 신뢰위기로 전이된다. 국민들의 신뢰가 공권력으로부터 멀어지면 모든 국가정책은 그 실효성을 기대하기 어렵게 된다. 이것은 단순히 한 정권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질서의 기본에 관한 것이다. 대통령은 자유민주국가의 권위를 회복하기 위하여 용산참사의 책임소재를 분명히 해야 할 헌법적 의무가 있다.

헌법파괴 심판할 국민적 권리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공권력자의 직권남용 및 직무유기를 목도하고 있을 뿐이다. 이런 현실은 그들에게 권력을 위임한 국민의 직접행동을 요구하고 있다. 헌법전문과 제1조가 밝히고 있듯이 개인의 안전, 자유, 행복의 보호자로 국가를 창설한 것은 우리들 국민이다. 정파적 이해관계에 얽매여 국가권력이 헌법과 법률이 명령하는 직무를 유기하거나 남용하는 사태에 대하여 주권자인 국민은 스스로의 법정을 세워 헌법정신을 바로 할 정치적 권리를 가진다. ‘용산 철거민 사망사건 국민법정’은 법적 구속력을 가지지 못할지 모르나 진실과 정의를 애써 외면하고자 하는 헌법파괴자들에게 이 땅이 자유와 민주의 요람이라는 주권자의 준엄한 의지를 실현하는 공론장이 될 것이다.

<김종철 연세대 교수·헌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