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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 엄마들의 한, 묻히지 않아 다행입니다”

작성일
2010.09.27 14:5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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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이사람]

 “용산 엄마들의 한, 묻히지 않아 다행입니다”

DMZ영화제 작품상 ‘용산 남일당…’ 만든 오두희씨
 
 
한겨레 김경애 기자
 

 

 
» 오두희씨
 
철거민과 1천끼 밥 나누며 동행
폭력진압 채증위해 카메라 들어
보통여자 투사 만드는 현실 담아

그는 ‘길 위의 신부 문정현’의 분신으로 불릴 만큼, 지난 30년간 언제나 싸움의 현장에 있었다. 하지만 늘 그늘진 곳에서 궂은일을 도맡아 하고는 조용히 사라져 ‘얼굴 없는 배후’란 별칭이 따라다닐 정도였다. 그저 ‘평화바람 활동가’로만 불리길 원하는 그가 최근 인터뷰를 자처하고 나섰다. 그것도 얼마 전 도피하듯 어렵사리 안식월 휴가를 얻어 떠난 필리핀 세부에서 전화를 했다.

“진짜로 상을 받았나요? 믿기지가 않네요.”

지난 13일 파주에서 폐막한 ‘제2회 디엠제트(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한국 경쟁부문 최우수상과 전체 상영작 관객상을 동시에 받은 <용산 남일당 이야기>의 연출자 오두희(53·사진)씨는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정말 다행이에요. 용산 철거민 여성들의 한맺힌 이야기가 묻히지 않아서요. 지금도 곳곳에서 삶터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처절하게 싸우고 있는 철거민들의 현실을 알릴 수 있어서요.”

난생처음 만든 장편 다큐로 덜컥 대상까지 받은 그이지만 개인적인 영예보다는 꾸밈없이 진실을 보여준 출연진 23명을 비롯 용산참사 희생자들의 아픔을 먼저 떠올린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2009년 1월20일 국민 6명이 공권력의 진압작전 중에 불타 죽은 참혹한 사건이 터지자, 문정현 신부와 함께 군산에서 유랑단의 꽃마차를 이끌고 올라온 그는 1천 끼가 넘는 한솥밥을 먹으며 은박 돗자리 한겹에 의지해 선잠을 자며 철거민들과 동고동락했다.

“처음엔 ‘큰 신부님’(동생 문규현 신부와 구별해서 부르는 애칭)이 수술에서 회복되지도 않은 어깨에 캠코더를 들고 힘들어하시기에 도와드리려고 대신 찍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경찰과 용역회사 직원들이 자꾸 천막을 부수고 현수막을 떼어가면서 시비가 붙고 철거민들을 잡아가니까 ‘현장 채증용’으로도 찍게 됐죠. 그러니 다큐를 만들겠다는 생각도 못했고 딱히 촬영법이나 편집기술을 배운 적도 없었죠, 물론.”

애초 한달 예정으로 현장에 들어갔던 문정현 신부는 해를 넘겨 올 1월 장례를 치를 때까지 300일 넘도록 매일 저녁 7시 남일당 참사현장에서 생명평화 미사를 봉헌했고, 남일당 속보는 ‘3분 또는 5분짜리 영상뉴스’로 인터넷과 유시시(UCC)에 올랐다. 그렇게 쌓인 테이프만 200여개, 어느덧 미디어팀의 최고령 작가란 이름을 얻은 그는 전문 다큐감독들의 권유에 용기를 얻어 지난 3월부터 꼬박 3개월 동안 편집에 매달렸다. 애초 ‘용산 남일당 23×371’이란 제목으로 지난 6월 인권영화제에서 첫선을 보인 다큐는 기대 이상의 반향을 얻으며 입소문이 난 끝에 이번 국제다큐영화제에 출품까지 하게 됐다.


“흔히 예상하는 투쟁기나 단순한 증언록이 아니라 평범한 아주머니와 할머니들이 국가폭력과 거대한 여론조작에 맞서 싸우며 점차 투사가 돼가는 과정이 생생하면서도 너무나 일상적이서 몰입과 공감을 끌어낸다고들 하더군요.”

하지만 정작 그 자신은 예상치 않은 후유증에 시달렸다. “편집하느라 1년치 영상을 되돌려보면서 무자비한 공권력과 무관심한 대중들에 대한 분노가 새삼 치솟아 힘들었던” 그는 홀연히 필리핀으로 떠났다.

전주에서 태어나 전북대에서 원예를 전공한 그는 1980년대 초부터 노동현장 활동을 하다 88년 익산 노동자의 집 실무자로 문정현 신부와 인연을 맺은 이후 군산미군기지·매향리·소파(SOFA)개정연대회의·여중생범대위·새만금·부안 핵폐기장 반대운동 등 20년 넘게 지치지 않고 싸워왔다.

“남일당 이야기가 처음이자 마지막 작품일 것”이라는 그. 하지만 부당한 권력에 맞서 억울한 눈물을 흘리는 이들이 있는 현장이 있는 한 그는 또다시 카메라를 들 것이 분명하다.

김경애 기자 ccandori@hani.co.kr, 사진 평화바람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