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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참사의 폭력과 죽음, 그 아픔을 제 것처럼 앓다

작성일
2010.09.27 14:5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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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참사의 폭력과 죽음, 그 아픔을 제 것처럼 앓다

 

 

ㆍ이영광 세 번째 시집 ‘아픈 천국’ 펴내
ㆍ희생자들 연상시키는 시, 낯선 한자어들로 시각화

이영광 시인(45·사진)을 그의 시보다 먼저 만났다. 용산참사의 끔찍한 폭력과 죽음, 그리고 그것이 그냥 지나가버리는 것을 지켜볼 수 없었던 작가들이 용산참사 현장에서 릴레이 시위를 벌일 때였다. 순해 보이는 처진 눈매, 덥수룩한 수염에 큰 몸집을 가진 그는 ‘사람 좋게’ 보였다. 그의 ‘사람 좋음’은 타인과 세상의 고통을 자기 것처럼 품어 안으려는 넉넉함에서 오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의 세 번째 시집 <아픈 천국>(창비)을 보니 그때의 생각이 틀렸다. 그는 넉넉했던 게 아니라 스스로도 아파 내장이 터질 듯 피를 흘리면서도 세상의 모든 아픔을 제 것처럼 앓고 있었던 거였다. 시인은 스스로 ‘통증의 세계관’을 가졌다고 말한다.

<아픈 천국>에는 그를 아플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던 현실 사회의 고통과 그의 뒤척임이 고스란히 담겼다. 연작을 이루고 있는 ‘유령’은 주변부로 밀려버려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것으로 취급당하는 존재들을 담았다. 그들은 늦은 밤 폐지를 수집하는 노인이거나, 취객에게 시달리는 대리운전 아줌마이거나, 또는 죽어도 죽음에 응분하는 애도와 인정을 받지 못하는 존재들이다.

“이것은 소름끼치는 그림자,/ 그림자처럼 홀쭉한 몸/ 유령은 도처에 있다…저렇게도 깡마르고 작고 까만 얼굴을 한 유령이/ 이 첨단의 거리를 배회하고 있다니/ 쉼없이 증식하고 있다니/ 그러므로 지금은 유령과/ 유령이 되지 않기 위해 몸부림치는 몸들의 거리”(‘유령 1’)

‘유령 3’은 용산참사 희생자들의 죽음을 자연스럽게 연상시키는 시로, 이번 시집에서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시다.

“朝刊은 訃音같다/ 사람이 자꾸 죽는다// 사람이 아니라고 여겨서/ 죽였을 것이다/ 사람입니다, 밝히지 못하고/ 죽었을 것이다…戰鬪的으로/ 錯亂的으로/ 窮極的으로, 사람이 죽어간다// 아, 決死的으로 / 總體的으로 / 電擊的으로 / 죽은 것들이, 죽지 않는다”

낯선 한자어로 전해오는 죽음의 소식들은 그 죽음들이 있는 그대로 살아있는 자들에게 받아들여지지 못하는 현실을 시각화해 보여준다. 문학평론가 이찬은 “현실상황의 잔혹함이 오히려 살아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제대로 재현될 수 없다는 다른 진실을 드러낸다”며 “2000년대 시의 문제틀이 빠뜨리고 있었던 국가폭력과 정치적 이데올로기, 물신화현상과 경제적 실용주의 같은 이 시대의 첨예한 사회현실을 다시 천착해들어가 ‘유령’의 ‘몸’이란 새로운 이미지의 창안을 통해 한국시 전체의 사회정치적 상상력을 다른 차원으로 도약하게 만든다”고 평했다.

그렇다고 이영광 시인이 그저 아파하는데만 머물지는 않는다. 그는 현실을 고통과 아픔으로 인식하지만 그에 대한 깊은 사유와 살고자 하는 건강한 의지를 놓지 않는다.

“실직과 가출, 취중 난동에 풍비박산의 세월이 와서는 물러갈 줄 모르는 땅…괴로워했으므로 다 나았다, 라고 말할 순 없을까.// 살 것도 못 살 것도 같은 통증의 세계관을 가지고 저 팽팽한 창밖 걸어가면 닿을까, 닿을 것이다, 닿을 수 있을 것이다, 환청처럼 야위는 하늘의 먼 빛.”(‘아픈 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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