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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재개발 반대 농성자에 ‘중형’…무엇이 정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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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12 19:5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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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오늘  기사 원문: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91941

 

용산참사 빚은 재개발 자체가 ‘무효’라는데
[기자칼럼] 대법원 재개발 반대 농성자에 ‘중형’…무엇이 정의인가?
 
2010년 11월 12일 (금) 14:37:37 류정민 기자 ( dongack@mediatoday.co.kr)
 

“안타까운 일이 발생한 데 대해 총리로서 책임을 느끼며 다시 한 번 유족 여러분들께 깊은 유감의 뜻을 표한다.”

정운찬 전 국무총리가 지난해 12월30일 정부 책임을 통감하면서 ‘용산 참사’의 엉킨 실타래는 풀리는 것처럼 보였다. 경향신문은 12월 31일자 1면에 <눈물…분노…용산, 345일만의 승리>라는 머리기사를 실었고, <345일 만에 ‘용산의 눈물’은 닦였지만>이라는 사설을 실었다.

정말 그런 줄로 알았다. 한국 현대사에 깊은 상처로 기록될 2009년 1월 20일 바로 그 사건, 서울 용산 남일당 건물을 화염으로 휩싸이게 한 바로 그 사건, 5명의 철거반대 시민과 1명의 경찰특공대의 생명을 앗아간 '용산참사‘는 그렇게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줄 알았다.

   
  ▲ ⓒCBS  

 

한겨레는 12월 31일자 3면에 <345일전 그날만큼 추운 날…가족들은 그저 울기만 했다>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눈물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기쁨의 눈물’이라고만 하기는 어렵다. 그들을 ‘폭도’로 내몰았던, 그들을 향해 다양한 형태의 폭력을 쏟아냈던 이들을 향한 원망과 또 허탈의 눈물은 아니었을까.

용산참사는 어떤 사건이었을까. 경향신문은 사설에서 이렇게 기록했다.

“용산참사는 우리 사회가 현재 겪고 있는 불도저식 국정운영의 구조적 문제와 모순 덩어리들이 모두 투영된 종합판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누차 지적했듯이 용산참사의 본질은 재개발로 삶의 터전을 잃고 쫓겨나게 된 철거민들의 항의 시위에 대해 경찰이 우발적 불상사에 대한 사전 대비책도 없이 무모하게 진압작전을 펼치다 빚어진 참극이었다.”

   
  ▲ 한겨레 11월 12일자 2면.  

 

용산참사는 그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재개발 광풍’이 한국사회에 사라지지 않는 한 또다른 '용산참사'는 언제든지 되풀이될 수 있다. 평생을 모은 재산이, 땀 흘려 일궈낸 삶의 터전이,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짓밟히고 훼손될 수 있는 상황이 '용산참사'를 낳은 것이다. 

용산참사의 진정한 해결은 정부 최고위층의 사과와 금전적인 보상으로 마무리될 수는 없다. 무엇보다 용산참사가 발생한 원인, 진상규명이 우선이고, 무분별한 ‘재개발 광풍’을 근본적으로 개선할 법적 제도적 정비가 뒤따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정운찬 전 국무총리의 사과가 있기 전까지 너무나 많은 폭력이 있었다. 남일당 건물에 올라갔던 그들을 향해 ‘폭도’라는 손가락질도 있었다. 재개발 폐해를 지적하고 생존대책을 촉구하는 이들의 저항은 ‘폭도’라는 간단한 두 글자로 설명할 수 없다.

용산참사는 그래서 더욱 상징적이다. 더는 그런 참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성찰의 기회가 됐어야 했다. 용산참사 유가족의 눈물을, 그들의 개인적인 일로 치부하는 ‘외면’이야말로 어찌보면 가장 폭력적이다. 

그런데 용산 유가족이 다시 눈물을 흘리고 있다. 지난해 12월 30일 언론이 기록했던 그 사건 이후 언론의 관심에서 조용히 멀어진 이후 1년, 또다시 ‘용산의 눈물’이 쏟아졌다. 

11일 대법원의 확정판결은 법의 이름으로 자행된 또 하나의 폭력이다. 자신의 가족을 동료를 이웃을 화염 속에 떠나보내야 했던, 그 참극의 한복판에 서 있어야 했던 용산 농성현장 철거민 9명에게 최고 4~5년의 징역형을 확정했다.

   
  ▲ ⓒ진보정치 정택용 기자  

 

대법원 판결은 경찰에 대한 면죄부로 결론이 났다. 대법원은 여전히 용산 참사의 가해자를 철거민으로 규정지었다. 상식을 뒤집었다. 누가 보더라도 경찰의 무리한 강제진압 때문에 빚어진 참사임이 명백한데도 대법원은 '상식적인 판단'을 뛰어 넘었다. 경찰의 강제 진압은 경찰 내부에서도 신중하지 못했다는 증언이 나올 정도였지만, 대법원은 경찰에 ‘면죄부’를 주었다.

이춘석 민주당 대변인은 “공권력에 의한 과잉진압은 이로써 면죄부를 받았다. 국민을 테러범처럼 진압하는 행위도 보호받아야 할 권리인가. 그곳에는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들은 가난한 국민이고, 우리의 평범한 이웃이었다”고 말했다.

한겨레는 11월 12일자 사설에서 “법의 얼굴을 한 국가폭력 문제, 사회적 약자를 쫓아내는 잘못된 주거 정책, 인간보다 물질을 우선하는 전도된 가치관 등 용산참사는 우리사회의 구조적 모순이 응축된 사건이었다”면서 “참사가 일어난 지 1년 10개월이 지난 지금, 우리 사회의 모습을 되돌아보면 가슴이 답답해진다”고 지적했다.

용산참사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지금도 전국 곳곳은 재개발을 둘러싸고 몸살을 앓고 있다. 누군가는 개발업자와 철거반원의 폭력과 협박에 떠밀려 삶의 터전을 떠나고 있고, 또 누군가는 이에 맞서 ‘외로운 저항’을 이어가고 있다. 

그들의 사연을 ‘그들만의 이야기’로 치부하면 ‘재개발 광풍’은 또다른 희생자를 낼 것이다. 언제 우리 이웃이, 아니 내가 ‘외로운 저항’의 주인공이 될지 모른다. 언론이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이다. 그런데 그 관점이 대법원 판결을 뺨친다. 

동아일보는 12일자 사설에서 “경찰이 불법 과격 폭력시위를 제때 진압하지 못할 경우 국민은 안정되고 평화로운 삶을 이룰 수 없다”고 주장했다. 문화일보 12일자 사설 제목은 <'사회적 약자'가 불법행위 면죄부일 수 없다>다. 오갈데 없었던 시민들은 물론 강제 진압에 동원된 경찰까지를 화마의 희생자로 삼은 '폭력적 진압'이 정당하다는 주장이다. 또 다른 폭력이다. 대법관들은 자신들의 판결이 바로 이런 주장을 정당화시키고 있다는 것을 똑똑이 새겨두어야 할 것이다. 

용산참사는 왜 일어났는가. 용산 일대에 대한 재개발 과정에서 이에 반발하는 시민들을 강제 진압하는 과정에서 일어났다. 그렇다면 바로 그 용산 재개발 과정은 정당한 것이었을까? 용산재개발 사업에 대해 법원은 최근 ‘중요한 판결’을 내렸다. 서울신문 11월 4일자 9면에 실린 <고법 "용산참사 4구역 개발 무효">라는 기사의 일부분이다. 

"'용산참사'가 발생한 서울 용산 국제빌딩 4구역의 재개발 계획이 무효라는 항소심 판결이 나왔다. 용산 4구역은 지난해 1월 재개발 반대 시위를 하던 세입자들과 진압에 나섰던 경찰 등 6명이 희생당하는 참극이 일어났던 곳. 대법원에서도 무효 판결이 날 경우 무리한 재개발 추진이 참사를 초래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 서울신문 11월 4일자 9면.  

 

서울고등법원 행정5부(부장판사 김문석)가 배 아무개 씨 등 용산4구역 재개발 조합원 4명이 용산 4구역 재개발 조합(용산구 국제빌딩 주변 제4구역 도시환경정비사업조합) 측을 상대로 제기한 관리처분계획 무효 확인 청구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린 것이다. 용산 재개발계획의 절차와 내용에 모두 흠이 있다는 판결이다. 

용산참사를 빚은 해당 지역의 재개발 자체가 ‘무효’라면, 6명의 생명까지 앗아간 경찰의 강제 진압은 무엇을 위한 공권력의 행사였던가. 용산재개발이 무효과 된다면 죽은 이들은, 또 그 유가족들은 어디에 그 원통함을 호소할 것인가? 죽은자나 산자나 피눈물이 날 일이다. '용산참사' 이야기는 지금도 계속 진행되고 있다. 대법원의 이번 판결이 결코 그 끝이 아닌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