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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켜지지 않는 약속’ 용산 철거민들 눈물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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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28 09:2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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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켜지지 않는 약속’ 용산 철거민들 눈물만…
박홍두·김형규 기자
  • 남일당도 사라지고… 용산참사 2주기를 앞둔 27일 전국철거민연합회 관계자와 희생자 유족들이 용산 남일당 건물이 철거된 자리를 찾아 착잡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용산참사 당시 강제 진압과정에서 철거민 5명과 경찰관 1명이 숨진 남일당은 지난 1일 철거됐다. | 박민규 기자 parkyu@kyunghyang.com


    “사흘 굶어 도둑질 안 하는 사람 없다던데, 정말 도둑질이라도 해서 먹고살아야 할 상황이에요.” 용산 4구역 철거민 정옥자씨(60)는 인터뷰 내내 눈물을 훔쳤다. 남편과 사별한 뒤, 지체장애가 있는 아들 한 명을 데리고 단칸방에 살고 있다. 정씨는 “생계가 아득하다”고 하소연했다. 정씨는 용산에서만 25년간 장사를 했다. 전세금 4000만원에 500만원의 시설비를 들인 작은 술집을 운영했다. 지금은 시급 5000원짜리 식당 일을 나간다. 몸이 예전 같지 않아 일주일에 채 사흘 나가기도 힘들다. 하루 일당은 5만~6만원. 한 달에 100만원 정도가 생활비로 떨어지지만 입에 풀칠하기도 힘겹다.

    철거민 김순옥씨(47)는 ‘전라도집’이라는 이름의 실내 포장마차를 17년 동안 운영했다. 보상금 3200만원과 이주비 1400만원을 받고 쫓겨났다. 서울 용문동 전셋집에서 만난 김씨는 “매달 적자니까 아들 명의로 대출을 받아 꾸역꾸역 메우기 바쁘다”고 말했다. “나이가 찬 아들 둘 역시 하루 벌어 하루 먹는 형편이라 장가 보낼 엄두가 안난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남편은 만성 폐질환으로 인한 호흡 장애로 장애 3급 판정을 받았고, 간경화까지 앓고 있다. 아들이 살림을 돕지만 남편 약값과 생활비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래서 김씨도 식당 일을 나간다. 하루 일을 마치고 나면 온몸이 쑤시고 팔이 저려 잠을 못 잘 정도다.

    용산참사 때 숨진 이상림씨의 며느리이자 이번 대법원 판결에서 징역형이 확정된 이충연씨의 부인 정영신씨는 “이제 남일당 건물을 봐도 눈물이 흐르지 않는다”고 했다. “남편과 시아버지를 생각하며 견뎌왔지만 사람이 죽었는데도 결국 제대로 된 보상이 없는 것은 너무하다”고 말했다.

    용산 재개발 4구역 23가구의 삶은 이처럼 녹록지 않다. 정부가 지난해 12월30일 참사 유가족 및 희생자들과 합의를 했지만 1년이 지난 그들의 삶은 나아지기는커녕 더 옹색해졌다. 정부가 약속했던 생계 대책은 아직까지도 지켜지지 않고 있다. 당시 정운찬 총리 등 정부 대표단은 유족과 철거민들을 찾아가 유감을 표명했다. 유가족과 정부 측이 벌인 협상 끝에 당시 정부는 23가구에 법정 영업보상비를 지급했고, 재개발 조합으로 하여금 사망자 5명의 유족에게 위로금을 지급하도록 했다. 올해 1월엔 희생자 장례식을 치렀다.

    딱 거기까지였다. 남일당 건물이 철거돼 재개발공사가 시작되면 생계대책으로 ‘함바(건축현장)식당 운영권’을 주겠다고 했는데 아직까지 약속은 지켜지지 않고 있다. 남일당 철거는 대법원 판결이 나오기 전까지 증거보전 등의 이유로 미뤄지다가 이달 1일에야 철거가 시작됐다. 하지만 재개발 공사가 언제 시작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지주 4명이 재건축조합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법원이 “관리처분계획 승인에 하자가 있다”며 무효 판결을 했기 때문이다.

    철거민 김순옥씨는 “정부와 협상할 때만 해도 올 6월이면 함바식당이 생긴다고, 생계대책이 해결된다고 해서 당연히 그런 줄 알고 있었다”며 “기다리다 못해 8월 말부터 식당 일을 나가기 시작했다”고 울분을 터뜨렸다.

    서울시가 구두로 약속한 재개발 임시상가 분양권도 상가 공사 자체가 이뤄지지 않아 보장받기 힘들게 됐다. 정부에 다른 생계대책을 요구하고 싶어도 선뜻 나서기 힘들다. 그동안 투쟁 과정에서 집행유예나 사회봉사명령을 받은 상태라 또다시 집회·시위를 하다 잡혀가면 징역을 살거나 벌금을 내야 한다. ‘용산참사 진상규명과 재개발제도 개선위원회’ 이원호 사무국장은 “정부는 장례식을 서둘러 치르기 위해 임시방편으로 생계 보장을 약속했다”며 “정부의 책임 있는 후속 조치가 뒤따라야 한다”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