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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2월3일(화) 용산 범대위 대변인실 기자 브리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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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03 15: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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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3일(화) 용산 범대위 대변인실 기자 브리핑 자료>>



1. 용산 철거민 희생자 유가족 검찰 규탄 기자회견

- 기자회견문 참조



2. 1월19일 용산현장 상황에 대한 진상조사단 조사결과


“경찰의 허위보고로 인한 경력 및 특공대 투입 정당화”

“19일 용산은 테러 상황이 아니었다”


진상조사단은 2월 3일 중간 조사 결과 보고서를 통해 경찰의 주장과는 달리 참사 당일 현장이 경찰특공대를 조기에 투입해야 하는 준 테러 상황도 아니었을 뿐더러 진압 과정에서 과잉행위가 없었다는 경찰의 주장도 거짓이라고 밝혔다. 또한 진압 작전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현장 상황을 과장해서 허위보고한 용산경찰서장과 이를 보고받고 경찰특공대 투입을 최종 결정한 김석기 서울청장에게 참사의 직접적인 책임이 있다고 결론지었다.


진상조사단에 따르면 김석기 청장은 20일 진압작전에 대해 “보고만 받았다”는 자신의 해명과는 반대로 19일 오후 열린 대책회의에서 경찰특공대 투입 등 진압계획을 최종 승인한 것으로 밝혀졌다.


또 당일 현장 상황이 “화염병이 난무하고 새총으로 골프공 등을 무작위로 투척한 점으로 미뤄 시내 중심에서 ‘테러’라고 할 만큼 과격했다.”는 김수정 차장의 주장과 반대로, ▲행인?차량을 상대로 새총 발사 및 투척행위 없었으며 ▲주로 경력을 상대로 (골프공, 벽돌) 투척 행위를 했기 때문에 실제로 한강로 방향으로 날아온 것은 적었으며 ▲화염병이 사용된 경우는 극히 드물며 ▲특히 염산이 든 박카스병은 목격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진상조사단은 밝혔다.


진압 과정에서 경찰의 과잉행위를 증명하는 조사 결과도 발표됐다. 시너와 같은 인화성 위험 물질이 있었는지 사전에 파악하지 못했다는 김 차장의 해명과도 달리 경찰은 진압 작전 수립 단계에서 이미 인화 물질의 존재를 파악하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특공대가 건물에 진입하기 전에 위해용품 반납 후 자진 퇴거토록 설득 및 경고 방송을 했다는 경찰의 주장과 반대로, 이날 현장에 있던 철거민들은 설득이나 대화를 종용하는 경찰의 방송을 전혀 듣지 못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진상조사단 김랑희 위원은 조사 결과 발표를 마무리하며, “6명의 목숨을 앗아간 이번 용산참사의 원인은 화재가 아니라 경찰의 과잉진압이다. 사회에서 벌어지는 갈등은 대화와 소통을 통해 긴 시간을 갖고 해결해야 하는 것이며, 경찰력의 투입은 최소한이어야 하고, 최후의 수단이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경찰은 3시간의 인내밖에 보이지 않았다. 모두들 화재의 원인이 무엇이냐에 초점을 맞추고 있을 때 많은 철거민들은 우리가 왜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며 다시 피눈물을 흘리고 있다.”며 경찰을 강력 성토했다.


* 첨부: 진상조사단 조사 보고서, <농성시작 3시간 만에 경찰특공대가 투입될 만큼 농성현장 주변이 위험했을까?>


3. 고 이상림씨 유족들의 본가 출입금지 건에 대한 입장


- 경찰은 고 이상림씨의 본가가 참사현장 근처에 집이 있다는 이유로 유족들의 본가 출입을 막고 있는 상황

- 유족들은 현재 사건발생 후 15일동안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음.

- 경찰은 참사현장 근처라서 유족들의 출입을 막는 것이 아니라 철거지역이고 가택 출입이 자유로울 시, 이전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서 막고 있는 것이 아닌가 판단됨.


4. 2월4일(수) 주요일정


- 유가족 청와대 규탄 기자회견 및 항의방문(11시, 청와대앞))

- 부검결과 의견 발표 및 사인의혹과 관련한 진상조사단 기자회견(11시, 느티나무홀)

- 촛불추모제(19시, 청계광장)


* 일부 언론에서 고인의 명예를 훼손하고 철거민들에 대한 악의적 보도와 확인 안된 내용을 사실인양 왜곡 보도하는 행태가 지속되고 있습니다. 범대위 대변인실에서는 더 이상 이런 보도행태를 묵과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고 판단하여 오늘부터 조선일보의 취재를 ‘거부’합니다. 또한 문화일보도 악의적인 보도와 왜곡보도가 위험수위에 달하고 있어 공정보도를 촉구하는 마음에서 더 이상의 음해성 기사를 싣지 말 것을 ‘경고’합니다. 한편, 문화일보 기자의 순천향대병원 장례식장 출입제한 문제에 대해서 논의하기로 하였으니 이 결과는 추후 알려드리겠습니다.

모쪼록 언론의 소임이 진실추구와 공정보도에 있음을 다시 강조 드리며, 고인들의 명예를 지키고 철거민들의 아픔을 함께 할 수 있는 언론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유족 기자회견문


검찰은 처음부터 용산참사를 철거민들의 잘못으로 몰고 갔습니다. 경찰이 망루 내부를 절단하면서 불꽃이 튀었을 가능성이 제기되었고, 발전기 누전에 따른 문제도 제기되었지만 검찰은 수사하지 않았습니다. 경찰특공대의 무리한 진압으로 망루 내부가 아수라장이 된 상황에서 1차 화재가 발생했지만, 더 강경한 진압으로 다시 2차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제대로 된 수사 한번 해보지 않았습니다. 결국 검찰 수사본부는 화재 원인을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철거민들이 던진 화염병이 망루 1층에 고인 시너에 불붙어 일어난 것으로 결론 내렸다고 합니다. 즉, 철거민들이 불을 질러 6명이나 죽었다는 겁니다.


27명의 검사와 100여명의 넘는 수사인력이 동원되어 열흘이 넘게 조사한 결과가 고작 화염병이 발화원인이라는 검찰의 ‘주장’외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무전기록에도 남아 있는 용역반의 실체에 대해서는 진압현장에 용역은 없었고 지휘관의 착오일 뿐이라는 말도 안되는 경찰의 변명을 수용했습니다. 연행된 많은 사람들에게 멍 자국이 남아 있고 일관되게 연행과정에서 폭행당했다고 진술했지만 검찰은 조사도 하지 않고 일을 덮어 버렸습니다. 반면 누가 뿌렸는지, 어떤 액체인지도 모를 동영상을 제시하며 시너를 뿌리는 장면이라는 식으로 사건을 호도했습니다. 그리고 철거민들의 자주적인 조직인 전철연을 테러조직인냥 매도하고, 철거민 6명을 구속하고 온갖 자금의혹을 제기하며 전철연에 대한 마녀사냥을 자행해 왔습니다.


무엇보다 말도 안되는 것은, 김석기 청장 내정자가 이 사건에 직접개입하지 않았다는 검찰의 발표입니다. 사건 전날 저녁 김석기 서울청장이 직접 두 차례 대책회의를 주제하여 진압계획을 승인했으며, 사건 당일 작전시작과 마무리 보고까지 받았는데도 서울청장이 개입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더 개입해야 하는 것입니까? 서울청장이 물대포쏴라, 특공대 투입해라는 식으로 현장보고를 받고 일일이 지시했어야 한다는 것인가요? 서울청장이 그런 식으로 개입한 사례가 단 하나라도 있다면 제시해 보기 바랍니다.


게다가 검찰은 용산 철거 참사와 비슷한 외국 사례를 수집해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참사에 경찰 최고 책임자가 처벌된 사례는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검찰이 찾는 외국 사례는 경찰의 실수로 참사가 일어났어도 책임자가 처벌받지 않은 사례인 것이 뻔해 보입니다. 이것은 김석기 청장 내정자에 대해 면죄부를 주기 위한 절차에 다름 아닙니다.


검찰의 잘못된 수사 때문에 저희 유가족들은 엄청나게 큰 상처를 받고 있습니다. 당일 무리한 강제진압으로 참사를 불러온 경찰과, 온갖 폭력으로 철거민들을 괴롭혀 왔던 삼성, 포스코, 대림 등 건설자본과 용역반조차 아무런 책임이 없고, 철거민들의 잘못으로 참사가 발생했다는 검찰의 주장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강제진압, 살인진압으로 사람을 죽이고 그것으로도 모자라 유가족들의 동의도 없이 부검을 했습니다. 불에 탔지만 구타의혹까지 있는 시신을 일방적으로 부검을 했습니다. 그러더니 이제 우리 철거민들을 살인자로 몰아갑니다. 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고인들이 어떻게 맘 편히 세상을 뜨겠습니까. 


다시 한번 눈물로 호소합니다. 참사의 희생자인 저희 철거민들을 오히려 참사의 책임자로 몰아붙이는 잘못된 검찰 수사를 바로잡아야 합니다. 검찰은 고인들의 명예를 회복하고 모든 수사자료를 있는 그대로 공개해 주기 바랍니다. 그리고 철거민들을 범죄자로 만드는 편파왜곡수사 중단을 촉구합니다. 그렇게 못한다면 더 이상 사건을 왜곡하지 말고 수사본부를 당장 해체 하십시오.


철거민을 살인자로 만드는 검찰 수사 중단하라

검찰은 유족 앞에 사죄하고 수사본부 해체하라!

김석기, 원세훈을 구속 처벌하라!

용역과 건설자본 비리 즉각 수사하라!



2009.02.03


용산참사 철거민 희생자 유가족 일동


<첨부자료> 진상조사단


 농성시작 3시간 만에 경찰특공대가 투입될 만큼 농성현장 주변이 위험했을까?


1. 19일 농성현장조사 배경

용산농성 현장의 진압은 농성 만 하루 만에 경찰특대가 투입되어 6명의 사망자를 낳는 결과를 빚었다. 이를 놓고 많은 언론들은 2005년 6월 54일간 계속된 오산 세교택지개발지구 철거민들의 농성을 해산하는 과정과 비교하는 기사를 실었다. 이것은 경찰특공대가 컨테이너를 이용해 진압하는 방식은 같으면서도 다른 결과를 초래했기 때문이다.

경찰권 발동은 최소화하는 것이 시위 진압의 기본 원칙이며,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고 안전을 위해 노력하는 신중함이 필요함에도 많은 사람들은 왜 이렇게 빨리 진압작전을 진행했는지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되었다. 이것에 대한 경찰의 답변은 다음과 같았다.


▷ 1월 20일 연합뉴스 인용

김수정 서울지방경찰청 차장(치안감)은 20일 오후 용산경찰서에서 가진 브리핑에서 "19일 오후 7시 김석기 청장과 차장, 기능별 부장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대책회의에서 특공대 투입을 청장이 최종 승인했다"고 밝혔다.

김 차장은 또 특공대 투입을 처음 건의한 인물은 백동산 용산경찰서장이라고 말했다.

그는 "어제 저녁 회의에 앞서 낮 12시30분에는 나와 기동본부장, 용산경찰서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1차 현장대책회의가 있었는데 그 자리에서 용산서장이 특공대 투입을 요청했다"며 "청장이 회의에 없는 상황에서 나온 아이디어로 추후 이를 청장께 보고하고 건의해서 투입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차장은 "특공대는 일반 경찰관보다 고도로 훈련됐다. 어떤 위험이 있더라도 능히 지혜롭게 대처할 것으로 기대했다"며 "도심지였고 하루 종일 화염병을 투척하고 있어서 일반 시민에게 심각한 피해를 줄 수 있다고 판단해 일찌감치 특공대를 투입했다"고 조기 진압작전 개시 이유를 밝혔다.

또 "조기 작전개시를 하려면 폭력성과 위험성을 많이 보는데 예전에 없던 화염병이 난무하고 새총으로 골프공 등을 무작위로 투척한 점으로 미뤄 시내 중심에서 `테러'라고 할 만큼 과격했다"고 강조했다.

김 차장은 경찰의 `과잉진압' 논란에 대해서는 결코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시너 70여통이 있었는지 사전에 파악했는지에 대해 "하얀 통이 있기는 했지만 그게 시너인지는 몰랐다"고 말했고, 위험물질이 소모된 뒤 진압에 들어가도 늦지 않았다는 지적에는 "현장에서 예측은 했지만 시너를 자신들에게 뿌리는 등 자살행위까지 할 줄은 예상 못했다"고 했다.


▷ 1월 21일 YTN 보도 인용

국회는 후임 경찰청장으로 내정된 김석기 서울경찰청장을 출석시켜 용산 철거민 참사의 책임 여부와 사고 경위 등을 따져 물었습니다.

민주당은 경찰의 무리한 진압으로 참극을 빚었다며 김 청장의 사퇴를 촉구했고, 한나라당은 불법 시위에 따른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며 옹호했습니다.


민주당은 6명의 사망자를 낸 용산 참사의 중심에 김석기 서울경찰청장이 있었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철거민들의 점거가 불과 하루밖에 지나지 않은 상황에서 경찰특공대까지 투입된 것은 후임 경찰청장 내정자인 김 청장이 과잉 충성한 결과라며 공세를 폈습니다.

[녹취:김유정, 민주당 의원]

"점거농성장 진입계획서에 보면 서울청 차장, 청장 서명 다 있어요. 이게 보고만 받았다고 강변할 수 있습니까?"

[녹취:김석기, 서울경찰청장]

"보고만 받았습니다."

[녹취:김유정, 민주당 의원]

"그럼 누가했습니까? 서울지방경찰청장 서명을?"


특히 경찰특공대 투입의 위험을 경찰이 사전에 알고 있었음에도 무리하게 밀어부쳤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녹취:강기정, 민주당 의원]

"용산서를 비롯해 특공대 내부에서도 서면으로 특공대 진압 시 매우 위험이 크다는 보고가 있었다는 증언이 있어요."


반면 여당인 한나라당은 철거민 시위의 불법성을 부각시켰습니다.

화염병을 사용해 무고한 시민의 피해가 우려됐던 상황인 만큼 경찰의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며 김 청장을 적극 감쌌습니다.

[녹취:장제원, 한나라당 의원]

"집단적 폭력성 시위가 계속되었을 경우 과연 진압이 타당했는가 아니면 진압을 안하고 계속적으로 설득이 가능했는지?"

[녹취:김석기, 서울경찰청장]

"화염병, 염산병, 시너 난무해 도저히 묵과 못하는 상황이어서 검거 이전에 설득을 많이 했습니다."


김수정 서울지방경찰청 차장의 브리핑과내용은 상당수 거짓으로 밝혀졌으며, 김석기 서울경찰청장은 보고만 받았다며 책임을 회피했다.

21일 민주당 김유정 의원이 경찰로부터 제출받은 '용산 4구역 관련 상황 보고'. 문건에 따르면 경찰은 19일 오전 5시30분 철거민들이 용산 한강로 남일당 건물에서 농성을 시작한지 3시간30분만인 오전 9시에 대테러 진압용 특수부대, 즉 경찰특공대 2개 제대에 대한 출동지시가 내려졌다. 또 시너가 있는 줄 몰랐다는 답변과 달리 사전에 매우 자세히 시위물품의 종류 및 규모를 파악하고 있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이처럼 경찰 자신들의 신속했던 진압작전을 숨기려고 했었던 경찰의 태도를 미루어 생각해보면 19일 현장의 상황이 경찰이 발표했던 것처럼 경찰특공대를 투입할 정도로 '테러'에 준하는 상황이었는지, 다른 한편 해산명령을 하기에 앞서 철거민 농성자들에 대한 설득과정이 충분했는지 의심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에 진상조사단은 농성현장과 맞은편에 위치한 상가주민과 뒤편에 있는 상가주민을 대상으로 19일 당시 상황에 대해 조사하였다.


2. 19일 농성현장조사 대상


전철연 회원 (1인)

용산 4구역 상가세입자 철거대책위 (2인)

한강로 주변 상가 (6인)

남일당 빌딩 뒤편 상가 주민 (4인)

시민 (4인)


3. 조사내용


1) 19일 현장에 대한 전반적인 목격

- 벽돌, 골프공, 화염병, 염산병, 구슬 투척과 관련한 내용

- 화재와 관련한 내용

- 인명, 차량 피해에 대한 내용

- 영업과 관련한 내용

- 경찰과 용역에 대한 내용


2) 19일 농성현장에 대한 느낌

- 시민과 차량에 대한 의도적인, 무작위적인 공격으로 보여졌는지

- 경찰의 대응, 경찰특공대 투입에 대한 의견


4.  조사내용을 근거로 한 19일 상황 (인터뷰 요약 첨부자료)


- 농성자들이 남일당 건물로 진입하고 난 이후 건물 밖 용역들과 대치하면서 벽돌이나 골프공 투척

- 망루를 설치하기 시작하면서 경찰의 살수가 2방향에서 진행 (풍산권투체육관 옥상과 대로인 한강로 쪽)

살수는 아침부터 낮까지 지속적으로 진행 (오전 7:00경 ~오후 1:00경으로 추정)

살수를 하는 곳으로 농성자들이 돌을 투척

- 오전 10:30~11:00 경 약국 골목의 동막골에 화재발생

- 오후 1:00 이후 소강상태 유지


5. 서울경찰청의 '한강로 3가 남일당 빌딩 전거 농성장' 진입계획 문서와의 비교


1) 경력투입 법적근거

망루설치를 저지하는 경력?용역뿐만 아니라 도로(행인)에 화염병?박카스(염산)병 및 벽돌 무차별 투척하고 방화를 시도하는 등 무고한 시민들에 대한 위해와 주변 교통흐름을 방해하는 등 공공의 안녕에 직접적인 위험을 초래하고 있으며


→ 행인?차량을 상대로 새총 발사 및 투척행위 없었다.

주로 경력을 상대로 투척행위 (골프공, 벽돌)를 했기 때문에 한강로방향으로 날라온 것은 적었다.

화염병을 보지 못한 경우가 많고 목격한 경우도 극히 적은 양

특히 염산이 든 박카스병은 목격하지 못했다.

행인?차량의 피해상황 목격하거나 듣지 못했다. ( 골프공에 맞은 듯한 차량이 1대 있었으나 언제인지 정확히 알 수 없다.)

1차례 화재발생은 방화가 아니라 경찰의 물대포를 저지하다 일어난 일으로 추정된다.


2) 진입대책

진입작전 전 위해용품 반납 후 자진퇴거토록 설득 및 경고 방송


→ 19일에 경찰의 설득이나 대화를 요구하는 방송을 듣지 못했다.

 "제일 의아한 것은 경찰이 왜 협상을 안했는가 이다. 여기서 방송으로 저 위에 사람들에게 확성기로 이야기를 한다던가 해야 하는데, 그런 것이 한번도 없었다. 자기네끼리 속닥속닥해가지고 했는지는 모르지만, 공개적으로 요구사항이라던가 그런게 없었다." (인터뷰 내용 중)


3) 19일 상황개요

 9:00경 경찰특공대 2개제대 출동지시

10:45현재 옥상에 새총 2대 설치, 돌?쇠 등 경력 및 주변 차량을 향하여 투척 중

10:50현재 건너편 옆 빌딩에 화염병 투척, 주변 가정집(공가)과 약국에 화재발생


→ 경찰보고에도 새총과 화염병이 등장한 것은 10:45 이후임에도 9시경 경찰특공대 출동지시가 내려졌다.

약국은 화재가 난 흔적도 없었으며 목격한 사람도 없었다. 화재가 난 곳은 공가인 상가 1채였다.


6. 농성자들의 투척행위와 그 피해상황 증거로 제출한 증거사진, 영상과 관련하여


- 앞 유리가 파손된 승용차는 용산서 경비과장의 차량으로 추정된다. 경찰은 12:10경 용산서 경비과장의 차량 유리창이 새총으로 발사된 유리구슬에 의한 타격에 파손되었다고 보고했다. 이는 오전까지 진행되었던 경찰의 살수를 저지하기 위해서 철거민이 저항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것이라 추정된다.


- 한강로를 지나는 차량 앞으로 떨어진 화염병은 20일 새벽 진압작전 중에 일어난 상황이다. 20일 새벽은 19일 오전상황과는 달리 한강로의 차량통제가 뒤늦게 되었다. 19일 오전에는 남일당 건물주변을 통제함과 동시에 한강로 교통도 통제한 것으로 보인다.


"왕복 3차로 정도만 통행시켰다. 한강대교 방향으로 2차로, 서울역쪽으로 한차로만 시켰으니 막혔다. 서울역방향으로 처음에는 2차선 통행시키다가 나중에는 1차선만 시키더라." (인터뷰 내용 중)


그런데 강한 저항이 우려되는 실제 진압작전이 진행되기 전에는 교통통제가 안되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6시께 진압이 시작됐는데도 주변 차량을 전혀 통제하지 않더라. 지나가는 승용차들이 멈춰서고, 경찰들이 진입하고 위에서 화염병을 던지는 모습을 운전자들이 쳐다보느라고 사고가 날 뻔했다. 한강로에서 뒤따르던 차량이 급정거를 하기도 했고, 건물 가까이로 온 살수차를 향해 던진 화염병이 일반 승용차 근처에 떨어지기도 했다."

경찰이 미숙한 것인가, 시위대의 폭력성을 알리기 위해 일부러 그런 것인가.

"둘 다인 것 같다. 경찰이 진입하고 화염병이 떨어지는데 시민과 차량 통제를 안 한다는 것은 이해되지 않았다" (한겨레21 제746호 칼라TV팀의 증언 중)


서울경찰청의 '한강로 3가 남일당 빌딩 전거 농성장' 진입계획 문서의 1월 20일 상황보고 내용에는 5:50경 양방향 전면 통제라고 기록되어 있으나 실제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으로 보여진다. 문서상에는 '안전'이라는 단어가 반복적으로 나오지만 실제에서는 이루어지지 않아 과연 농성자들의 안전뿐만 아니라 시민들의 안전도 지켜지지 않은 진압작전이었다.

진압이 이미 시작된 이후에, 안전의 의무를 다하지 않은 경찰의 작전으로 위험이 초래된 것을 농성자들의 과격시위의 근거로 제시하여 경찰특공대 투입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7. 19일 용산은 '테러'의 상황이 아니었다.


농성건물 주변의 상인 인터뷰를 통해 알 수 있었던 사실은 경찰의 주장처럼 '테러'와 같은 위협적인 상황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여 진다.

농성자들이 벽돌이나 골프공을 투척한 시점은 경찰의 살수가 진행되거나 용역의 접근이 있을 때였다. 그렇기 때문에 살수를 멈추고 용역의 접근이 없었던 오후 시간에는 투척행위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투척된 물품의 대부분은 돌과 골프공 이였으며, 화염병의 사용은 극히 제한적 이였던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염산병의 투척은 이루어지지 않은 것으로 보여 진다. 화재는 오전 10:30~11:00 경 1건, 차량 유리가 깨지는 피해가 1건 있었으며 그 밖의 다른 피해는 없었다. 이러한 피해도 경찰과의 대치 상황에서 비롯된 것이지 의도적이었다고 볼 수 없다.

증언자의 대부분은 농성자들이 일반시민과 이동하는 차량에 '무작위'로 위해를 가하는 행동을 없었으며 경찰의 통제 하에 통행이 이루어졌다고 하는 등 조기 진압을 뒷받침해줄 만한 사실이 발견되지 않았다.

오히려 영하의 기온에 경찰의 살수가 장시간 지속되었으며, 화재진압을 해야 할 상황에도 지속적으로 농성자들에게 살수를 하는 행위는 시민의 안전을 우선으로 하는 경찰의 행동으로 볼 수 없다.

그리고 같은 날 오후시간에는 물리적 충돌이 없었던 것으로 보아 '하루 종일 화염병이 난무'했다고 하는 김수정 서울지방경찰청 차장의 말은 전혀 사실과 다른 새빨간 거짓이었으며 오히려 대화와 타협을 시도했어야 하는 상황으로 판단된다.



<첨부자료>


? 조사내용 요약


1. 한강로 주변 상가


• 현대자동차 (윤○○)

- 19일 8:50 출근 (차가 매우 막혀서 평소보다 늦게 도착)

- 풍산권투체육관 옥상에서 경찰이 망루 쪽을 향해 물대포 살수(자신이 위치한 곳에서 5-6명 정도가 보였음)

  약국이 있는 골목입구에서 경찰로 보이는 사람(용역하고 구별을 할 수 없음) 올라가려하니 옥상에서 돌을 던짐 (골프공을 던졌다는 이야기는 듣기만 함)

  이런 상황이 오전 11-12시경까지 반복적으로 이루어짐

- 화재가 난 것은 보지 못함

- 한강로 대로변에는 전경차와 기자차량이 주차되어 있었음. 소방차는 기억이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음

- 호프집 튀어나온 유리창을 옥상에서 돌을 낙하하여 깨뜨림

- 12시경 외근을 나갔다가 5시에 다시 사무실로 돌아옴

- 별 다른 상황은 없었음

- 농성이 위협적으로 느껴지거나 영업에 방해되는 부분은 없었음. 단 사람들이 인도에 너무 많아서 오후에 셔터를 일부 내리기는 하였으나 정상영업을 하였다.


• 현대자동차 (최○○) - 녹취기록 있음

- 19일 7:40 출근

- 장안약국 앞의 소방차와 풍산권투체육관 옥상에서 망루를 향해 살수 진행

화염병이 소방차를 향해 던져짐 (1회- 19일에 화염병이 투척되는 것을 본 것은 단 한차례뿐이었다.)

도로 쪽에서 소방차가 접근하자 그 접견을 막기 위하여 소방차를 향해 벽돌을 투척하였으나 일부러 도로 쪽을 향해 던지지는 않음

경찰이 통행을 막아 지나가는 행인은 없었음

- 사람들이 건물로 접근하려 하자 장안약국 골목으로 돌을 낙하시킴 (용역인지 경찰인지 분간할 수 없음)

용역들이 망루를 설치하는 건물 앞에 있었음(한강로 방면)

- 약국골목 모서리 건물에 (동막골로 추정) 화재가 오전 중(10-11시)에 있었음 (연기가 나는 것만 보았음)

화재 중에도 망루쪽을 향한 살수는 계속되었음(아침부터 낮시간까지 살수가 지속)

날씨도 너무 추웠고 살수도 많이 되어 좀 더 기다렸으면 어땠을까, 진압이 성급하지 않았는지 생각함

- 외근 (1-2시경) 나갔다가 복귀 (5시 좀 넘어서)

- 오후에는 소강상태

- 저녁시간에(어둑해질 쯤) 용역들이 건물로 접근하려 하면 옥상에서 돌을 낙하 (용역은 10명 안팎)

- 7:30- 8:00 경 퇴근

- 옥상에서 던져진 물품은 화염병 1개와 돌만 보았음

물대포를 쏘는 것을 막기 위해 화염병1개와 돌을 던진 것과 용역의 접근을 막기 위해 옥상에서 돌을 낙하시키는 것 외에 시민들을 위협하는 상황은 없었음

살수와 경찰접근을 막으려고 던졌지 시민들이 있는 곳으로 의도적으로 던진 것은 없었다고 생각함 (한강로 대로로는 던지지 않음)

피해상황에 대해 들어본 적 없음

- 행인들이 다치거나 차량에 피해가 가기 때문에 조기진압을 해야 한다는 기사를 봤을 때 신뢰할 수 없었음. 왜냐하면 그런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에


• 화장품가게 (이○○) - 녹취기록 있음

- 19일 오전 10:30분 경 영업시작

- 오전 11-12시경 약국 골목 모서리 건물 (동막골로 추정)에 화재

화염병을 던지는 것은 보지 못했지만 화염병으로 화재가 났다고 생각 (화염병인지는 모르겠지만 병을 보았음)

- 소방차가 약국이 있는 골목으로 진입하려 하자 저지하기 위해 새총을 이용하여 돌을 던짐(골목방향으로)

- 돌이 날라 오는 것을 봄

농성건물 옥상에서 한강로 건널목으로(정육점 앞) 돌을 던짐

- 풍산권투체육관 옥상에서 망루를 행해 살수

지속적으로 본 것은 아니나 볼 때마다 살수가 진행되었음

- 오후에는 소강상태 유지

가게 앞에서 경찰과 시민들이 매우 많았음.

영업을 할 수 없었음

- 8시에 영업종료

- 농성으로 인한 피해상황은 듣지 못함

- 돌과 화염병으로 생각된 병을 봄


• 축산물백화점 (정○○)

- 오전 8:40경 가게 문을 염.

- 철거민은 옥상과 4층에 있었고 경찰(40-50명가량)이 풍산권투체육관 옥상에서 남일당 빌딩 옥상으로 망루 설치를 방해하기 위하여 오전 내내 그리고 낮에도 계속 살수를 하고 있었음.

농성건물 주변에 전경기동대들이 둘러싸고 있었음

용역을 본 것 같은데 위치는 기억이 안남

- 오전 10:30경 남일당 건물 안에 철거민 노동자들이 있었는데 건물 3층에서 용역직원들이 불을 질렀음

용역들이 건물 아래층에서 피운 불로 인해 검은 연기, 유독가스가 매우 심하게 상당히 오랫동안 발생하여 위층에 있던 농성자들이 매우 위험하겠다고 생각

길 건너편에서도 냄새를 직접 맡았음 (1시간가량 지속)

오전 11:30경 소방차가 진입하자 농성 건물 옥상에서 돌, 화염병, 골프공들이 10여개 정도 날아와서 진입하지 못함 

체육관 옥상에서 건물안쪽을 향해 살수하여 화재를 진압

- 오전 10:30~11:00경 약국 골목길에서 연기가 올라와서 체육관 옥상에서 연기 나는 쪽으로 살수의 방향을 바꿈

금방 꺼짐

- 경찰은 오전 내내 남일당 건물 옥상에 엄청난 양의 물을 쏘아댐. 물대포에 맞아 쓰러지는 사람도 보았음

- 도로 쪽에 위치한 물대포가 접근하여 물을 쏘아대자 물대포 차량을 향해 벽돌과 골프공을 투척하기는 하였으나 이와 관계없이 대로를 향해 투척행위를 하지 않았음.

주로 약국골목에서 경찰이나 용역이 위치한 곳으로 벽돌이나 골프공을 투척함.

- 오후에는 소강상태

통행은 경찰의 통제로 불편했지만 위협적인 상황은 없었음

소강상태일 때 협상, 대화를 진행하자는 요구를 경찰이 왜 하지 않았는지 이상하게 생각됨

경찰이 강압적인 진압을 한 것임.

- 퇴근은 12:00 경

- 영업 손실은 없었음

시민들의 피해상황에 대해 들은 것은 없었음

시민들 차량을 향해서 고의적으로 투척행위를 하지는 않았음.

대치상황일 때 본인은 남일당 건물 아래에 주차된 모닝차량을 발견하고 경찰에게 건물 밑에 차가 있으니 다른 곳으로 이동시켜야하는 것이 아니냐고 했더니 오히려 경찰은 누구차인지 모르겠다고만 대답할 뿐 모닝차를 다른 곳으로 이동시키려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음.


• 약국

- 19일 오전 10시에 영업을 시작

- 약국 골목에서 화재 있었음

- 오후 1-2시경 가게 문을 닫음.


• ○○매장

- 19일 오전 10시30분에 영업을 시작

- 오전에 매장 건너편에서 골프공을 목격

사람 쪽으로 날라 온 것은 보지 못하고 길가로 굴러온 것을 봄

- 약국 골목에서 화재가 났다고 들음

- 교통체증이 심했음

- 피해상황 들은 것 없음

- 오후 4시경 영업 종료


2. 농성 건물 뒤편 상가

• 시장골목 (2인)

- 19일 낮에 화재가 났음

소방차가 와서 금방 진압

- 시장골목 주변에 경찰들이 있었음


• 주민 4인 - 녹취기록 있음

- 19일 새벽 (5:30경)경찰차의 방송 소리에 잠에서 깸

- 용역들이(20-30인 정도, 현암, 호람) 상가골목에 있었음 (골목에서 불을 피우고 있었음)

용역들을 향해 새총으로 골프공 투척

용역들은 날라 온 골프공을 다시 농성자들을 향해 던짐

- 아침 9시경에 병력이 늘어나면서 통행을 통제

- 권투체육관 옥상에서 경찰이 망루를 향해 살수 (9:00 경부터 점심식사 때까지 살수 지속)

- 골목 끝 쪽에 있는 동막골 지붕에 화재가 발생(10시-10시30분 경)

화염병으로 불이 난 것을 본 것은 아니지만 화염병으로 불이 난 것이라고 생각했음.

주민들이 불을 끄기 위해 소화전을 끌어당기고 나중에 소방차가 와서 진압

체육관 옥상에서 살수를 하고 있는 경찰에게 불부터 끄라고 요구하니 물줄기를 화재 난 곳으로 옮겼다가 화재가 진압되자 다시 망루를 향해 살수

- 오전 11-12시 경 농성건물 3층에 용역들이 있었음

용역이 3층에서 레아호프 건물(이충연씨 운영)에 돌을 던져 유리창을 모두 박살냄.

- 낮에는 소강상태

용역이 보이지 않아 농성자들의 투척행위도 없음

- 19일 내내 경찰의 통행 제한으로 밖으로 나갔다가 다시 들어오는 것이 너무 불편하였으며, 이로 인해 경찰의 제한선 밖으로 나가지 아니하고 그 내부에서 남일당건물 주변으로 얼마든지 통행이 가능한 상태였음.

배달도 다니고 치과도 다녀왔고 아이들도 유치원, 학원을 다니는 등 자유롭게 돌아다님

- 경찰과 용역에게 투척행위는 이루어졌지만 시민들에게 위해를 가하는 행동은 전혀 없었음

주로 돌, 골프공이 길가에 떨어져 있었고 구슬이 몇 개 있었으며 병 깨진 것은 보지 못함.

농성건물 옆 사거리에 주차된 트럭이 있었는데(꽃집앞) 19일 저녁에 이동했을 때까지도 아무런 피해도 없었음

- 19일 낮부터 새벽에 진압작전이 있을 것이라는 소문이 있었음


• 주민 1인 - 녹취 기록 있음

- 새벽에 경찰의 방송 소리에 잠을 깸

- 5:00 경 남일당 옆 주차장에 주차한 차를 이동시킬 당시 건물 옥상에서 농성자들이 4층, 5층에 있던 쓰레기들을 아래로 떨어뜨리고 있었으나, 농성자들에게 잠깐 차를 빼겠다고 하자 투척 행위를 멈춤

- 당시 차량에는 아무런 피해가 없었음

- 체육관이 있는 쪽 골목으로 주차해두었는데 나중에 보니 앞 유리창이 깨져있었음, 골프공에 맞은 것으로 추정되나 언제인지 정확히 알 수 없음. 다만 그 골목으로 용역들이 집단적으로 대기하고 있었기 때문에 용역들에게 돌이나 골프공을 투척하다가 의도와 달리 차량에 맞아 깨어졌을 가능성이 많다고 생각함.

- 새벽에 용역들을 향해 골프공을 던짐

- 낮에는 소강상태


• 전철연 (1인)

- 19일 오전 11~12시경 현장에 도착

- 통행이 많은 시간에는 경찰이 물대포를 살수를 해도 최대한 한강로 쪽으로 투척 등이 이루어지지 않음

- 대로가 아니라 옆 골목쪽(철거진행 된 곳)의 경찰과 용역을 향해 돌과 화염병을 던짐

- 19일 낮 경찰이 살수를 진행한 곳 근처(옆골목 철거 된 곳)에서 화재가 발생

상가의 차양 등 비닐물질에 불이 붙음

화재가 난 상황은 구체적으로 모름

소방차가 1번 정도 출동했던 것 같음


• 용산 4구역 철거대책위 (2인)

- 주로 건물 4층에서 식사 준비 등을 하고 있었으므로 밖의 상황은 구체적이지 않음

- 벽돌, 화염병 투척은 있었지만 염산병은 없었을 것, 본인들은 실제로 보지 못했음

- 용역들이 옆 골목에서 불을 냈다는 소리를 들음

그러나 바로 진화하지 않고 시간을 지체하면서 옆으로 번져갔음

시간이 흐른 뒤 소방차 출동


• 시민 (3인)

- 19일 2:30 경 현장 도착

- 19일 낮 시간에는 투척 등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음

- 낮부터 새벽 경찰의 진압이 있기 1시간 전까지는 건물주변으로 통행이 가능했음. 진압 1시간 전부터 건물주변을 통제하였고 진압 30분 전에는 언론사 차량을 옮기도록 하고 전경차로 차벽을 만듦


•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노순택

- 19일 오후에 현장에 도착했으나 저녁까지 아무 일이 없어 경찰의 진압을 예상하지 못하고 귀가

- 20일 새벽에 현장에 도착

- 경찰의 진압작전이 시작되었는데 차량통제를 하지 않아 위험해보였고 경찰의 안전을 무시하는 행동이 이해되지 않음.